김홍우(khw***) 2019-01-13 19:38:28
씻어 말리는 중인 것은 바로 ‘돈’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다 환영 받는 돈이기에 또 그 만큼 누구나의 손을 다
많이 거치게 되기 때문에 온갖 종류의 사람들 손에서 손으로 날마다 건너 다니고 있는 것이니 만큼 자꾸만 더
더러워지면 더러워졌지 깨끗해 질 일은 전혀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인데 사실은..
저 어렸을 적.. 그러니까 60년대 초 중반 즈음이던가.. 어머니가 부뚜막에 10원짜리 50원짜리 지폐를 죽 늘어놓고
말리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더러운 돈을 물로 씻었기 때문입니다. 제 희미한 기억으로는 아마도 어찌어찌 하다가
후두두 하수구 근처에 떨어진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대부분 집들의 마당에 수도꼭지가 있었고
그 아래로 하수도 입구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쌀, 밥, 반찬 찌꺼기 등 여러 가지 버려진 것들이 늘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었고 여자들은 거기에 쭈그리고 앉아서 밥을 할 보리쌀 정부미 쌀을 씻곤 하였지요.
“더러워져서 씻어 말리는 중이다...”
물론 하수구 근처에 떨어졌던 것이니까 더러워는 졌겠지만 그 보다는
그 뒤에 이어하신 말씀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납니다.
“에이그 돈처럼 더러운 것도 없지..”
분명히 지폐의 지면에 뭐가 묻어서 더러워졌다는 것과는 전혀 뉘앙스가 다른 말이라는 것을 열 살 이전 어린아이였던
저도 느낄 수 있었는데 거기에 알 듯 모를 듯 어머니의 가느다란 한숨 소리가 섞여져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가 어머니가 혼자되신지 몇 해 즈음이 지났던 때였고.. 그만큼 힘이 든 날들을 지내고
계셨던 것이었겠지요... 남편은 하늘나라로 가고 오그르르 남아서 엄마만을 바라보고 있는 철없는 눈동자의
어린 삼남매... 쯧, 이제는 벌써 반세기도 훨씬 넘어버린 즈음에 나를 포함한 그 삼남매의 모습들이 마치 제 삼자의
시선으로 보았던 것처럼 머릿속 지난 영상으로 남아있습니다.
허허.. ‘더러운 돈’이라.. 그 후에도 가끔씩 어른들이 내 뱉듯이
“에잇 더러운 돈!! 에라이 칵 퇘퇘!!”
하면서 돈을 향해 침을 뱉는 듯 한 모양들을 해 보이는 것을 여러 번 보았지만 그러나 그렇게 구박 받고 천시 받는(?)
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길바닥에 내 팽개쳐지거나 쓰레기통에 던져지는 것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허허.
그래서 돈은 ‘미움 받고 사랑 받는 존재’라고 하는 것일까.. 돈을 둘러싼 애틋하고 안쓰럽고 또 한 많은 사연들이
넘쳐나지만 그럴수록 더욱 더 돈을 가지려고 하면서 벌어지는 새로운 사연들의 생산은 갈수록 높아만
지고 있으니 과연 역설이라면 역설이겠습니다.
쯧 하수구에 떨어져서 오물이 묻은 지폐라면 물론 “에잇 더러워” 하는 차원에서 ‘더러워진 돈’이겠지만 그래도
역시 ‘환영 받는 돈’임에는 변화가 없기에 사람들은 더러운 돈, 찢어진 돈, 잘려진 돈 중에 어느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10원짜리 지폐 절반이 잘라져서 신문지를 테이프처럼 오려서 잉잉 밥풀을 눌러 밀어 붙인 것도
다수 있었는데 당시에는 스카치테이프도 거의 없거나 귀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연필이거나 당시에
막 나오기 시작했던 모나미 볼펜으로의 낙서가 가득했던 것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기억하고 있는 하이라이트는 역시 어떤 사연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야말로 갈기갈기 찢어져서
10 여 쪼가리 이상 된 것을 누군가가 역시 뒷면에 종이를 정성스레 오려 붙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의 앞면은 돈의
모양이지만 뒷면은 그냥 오려 붙인 잡지나 공책 또는 신문지 모양 그대로였던 것이지요. 아마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을 모양이고 통용 될 수 없는 지폐들이었지만 그때에는 기꺼이 그리고 천연스레 그러한 것들마저도 뭉뚱그려
사용되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휴.. 그 지폐는 누군가가 일부러 갈기갈기 찢어 확 뿌리듯 내던져 진 것이 분명해 보였는데..
그렇다면 왜 그랬던 것일까.. 무슨 일로 그렇게 ‘죄 없는 돈’에 대한 분노가 있었던 것일까..
돈에 속은 것일까.. 사람에게 속은 것일까.. 삶에 속은 것일까..
그렇습니다. 돈이 죄가 있다면 돈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 되겠지만 그 마저도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그렇듯 태동케 하여 세상에 나오게 한 것이니 돈 자체는 할 말이 많겠지만 어찌 하겠는가 사람이 없으면
용도가 없고 용도가 없다면 곧 바로 무용지물이라 하여 거들떠도 안 보는 것이 또한 사람의 속성인지라 그렇게
되지 아니한 것과 그리고 오히려 이제는 ‘사람을 다스리는’ 권세마저 부여잡고 마치 조자룡 헌 칼 쓰듯 능수능란하게
마구 휘두르면서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함은 물론, 울게 하고 웃게 하고 심지어는 죽게도 하는 힘을 갖게 되었으니
이것이야 말로 주객이 전도된 모양이라 하겠습니다.
커다란 솥이 늘 걸려 있던 재래식 부엌의 부뚜막.. 거기에 여기 저기 놓아졌던 젖은 지폐들.. 10원짜리.. 50원짜리.. 들의
오랜 영상이 다시 떠올려집니다. 그 보다 좀 더 전에는 1원짜리 붉은 지폐도 있었고 그것의 찢어진 한 귀퉁이를 저 역시
그저께 동아일보 신문지를 오려서는 밥풀로 낑낑 그리고 열심히 소중히 붙였던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것으로
이웃 ‘강씨네’ 가게에 가서 알사탕 두어 개 쯤을 사먹었을 것입니다. 찢어진 돈도 좋고 하수구는 물론 뒷간 바닥에
떨어졌던 돈이라도 좋으니까.. 많이 만 있었으면 하였던 60년 대 초 중반 무렵에 그렇듯 더러워진 돈을
씻어 말리는 과정을 손가락을 물고 바라보았던 아이.. 바로 접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근 50여 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모습들을 떠올리면서 ‘더러워진 돈’과 ‘더러운 돈’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씻겨야 할 돈’도 함께 인데.. 또 떠올려지는 것은 ‘씻어져야 할 사람’입니다. 상기한 지폐는 외부의 조건과 공격(!)에
항거할 수 없는 무력한 지경으로 그렇게 더러워졌지만 사람의 심성이 더러워지는 것은 그 당사자 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리지도 지켜내지도 못한 결과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어떻든
지금 그렇게 된 상황이라면 이제는 나를 씻어야 합니다. 얼룩을 지우고 오물을 지우고 냄새를 지우는 것으로 원래의
‘나’의 모습을 회복하여야 더럽지 않고 냄새나지 않고 어디를 가나 사랑 받고 환영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한 쪽 화덕에는 커다란 가마솥이 있었고.. 다른 한 쪽에는 늘 물 담아 데우고 있던 양은 들통이 있었으며..
겨울이 되면 집에서 키우던 누렁이 잡견들이 올라가 웅크리고 있던 부뚜막.. 거기에 여기 저기 놓여서 말려지고 있던
10원짜리.. 50원짜리의 모습들이 아련한 흑백장면으로 떠올려지면서 웬일인지 휴... 깊은 한숨 속에.. 그래요
왜 이리 못났을까.. 스스로 증거 하듯 눈가가 젖어오는 것 같아서.. 쯧쯧 혀를 차면서 긁적거려 본 글입니다.
산골어부 2019113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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