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면 스토리.
박천복 2023-05-08 07:58:48
지금으로부터 60 년전인 1963 년 초가을 ,
그때 20 대 청년이었던 나는 친구집에 가는길에 큰 네거리를 지나게됐다 .
길을 건너자 젊은여자 둘이 나타나 양쪽에서 내 팔을잡고 채양을친
손수레 (지금은 포장마차라고 한다 .) 앞으로 끌고가는 것이 아닌가 .
그리고는 의자에 앉게한 다음 그릇에 음식을 담아 나무젖갈과 함께주면서 시식해 보라는 것이었다 .
그릇안에는 노리끼한 국물에 처음보는 꼬불꼬불한 국수가 담겨있었다 .
젖가락으로 한입 먹어본 그 맛은 놀라운 것이었다 .
먹거리가 궁핍했던시절 그 맛은 환상적 이었다 .
ㅡ 이게 뭡니까 .
ㅡ 그게 라면이라는건데 우리 삼양식품이 이번에 처음 만든겁니다 .
그게 우리나라 최초의 ‘삼양라면 ’ 이었다 .
60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삼양라면만 먹는다 .
첫맛은 그렇게 강열했다 .
우리나라 라면은 일본의 라멘 (ラナン )에서 ,
일본의 라멘은 중국의 라이멘 (麵 )에서 파생했다는게 정설이다 .
중국북방지역의 라이멘은 닭뼈와 멸치등으로 우려낸 육수에 말아먹는 국수다 .
납면 (麵 )이라는 말은 ‘끌어당겨 만든면 ’ 이라는 뜻으로 이른바 수타국수다 .
1870 년대 일본에 들어온 중국인들이 노점에서 라이멘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이 일본 라면의 시초가 되었다 .
세계 2 차대전의 패전국으로 일본전체가 굶주림에 시달리던 1950 년대에
전문학교 경제학과를 막 졸업한 대만계 일본인 안도 모모후쿠는
국수가게를 차렸으나 돈은 벌지못하고 빚만지게 되었다 .
1957 년 어느날 ,
그는 아내가 덴뿌라 (튀김 )요리를 하는 현장을 보고 라멘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다 .
튀김요리의 수분이 모두 날아가는 것을 보고 이에 착안해 밀가루면을 튀겨 보존기간을 획기적으로 늘린 것이다
이게 꼬불꼬불한 라면의 시작이었다 .
그는 이듬해 닛산식품 (日淸食品 )을 세우고 식량난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방안으로 미국에서 들어오는 구호물자인 밀가루로 면발이 굵은 튀김면을 생산했다 .
이로서 세계최초의 인스탄트라면인 치킨라면이 탄생했으며 지금도 일본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상품이 되었다 .
어려서부터 가난을 겪었던 모모후쿠는 국내외 업자들이 라면을 생산 , 배고픈
사람들이 쉽게 사 먹을수 있게하기위해 제조특허독점을 포기한다 .
그리고 1971 년 컵라면을 개발했다 .
컵라면의 면발이 유독 꼬불꼬불한 것은 작은컵에 긴 면발을 넣기위해서다 .
컵라면 한 가락의 길이는 65cm 로 면발의 총 길이는 50m 가 된다 .
면이 꼬불꼬불하면 잘 부서지지않고 쫄깃쫄깃해 맛도 더 좋았다 .
1960 년대 초 남대문시장에서
미군이남긴음식 (잔반 )으로 만든 5 원짜리 꿀꿀이죽 (부재찌개의 전신 )을
먹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
그 가난한 행열을 보면서 지금 한국에 시급한 것이 식량문제의 해결임을 깨달은 남자가 있었다 .
1950 년대 말 보험회사를 운영한 경험이 있는 전중윤이 그 사람이다 .
(삼양식품 회장 )
일본출장중 인스탄트라면을 먹어본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조리가 간편
하고 값이싼 라면이 우리나라에 대규모로 보급된다면 식량문제를 해결할것으로 판단했다 .
선구자적 안목인 것이다 .
그는 친지의 소개로 일본라면업계의 2 위인 묘조식품 (明星食品 )의 오쿠이 기요스를 찾아갔다 .
전후 한국의 어려운 사정을 들은 오쿠이사장은 흔쾌히 무상으로 라면
제조기술을 전수해 줬으며 전중윤은 정부를 설득 , 5 만달러를 빌려 묘조
식품으로부터 생산기계를 도입 , 삼양라면을 만들게 됐다 .
1963 년 9 월 15 일에 출시된 삼양라면의 무게는 100g, 가격은 10 원이었다 .
당시 커피한잔이 35 원 , 담배한갑이 25 원이었다 .
그후 삼양라면은 전중윤의 예측대로 가난한 자들의 절대식량이 되었다 .
20 년넘게 부동의 1 위를 달리던 삼양라면은
1989 년 우지 (牛脂 )파동으로 시장 점유율이 곤두박질쳤다 .
농심이 그 기회를 잡았다 .
안성탕면으로 1987 년 판매 1 위에 올라 1990 년까지 왕좌를 지켰다 .
한국인의 혀는 더 뜨거운 것을 원했고 그 결과가 1991 년부터 1 위를 놓치지 않고있는 신 (辛 )라면이다 .
라면 전문 사이트 ‘라면완전정복 ’에 따르면 현재 국내 시판중인 라면종류는 555 가지다 .
작년한해 해외로 수출한 라면은 총 26 만톤 . 8 억 6,2450 만달러 ㅡ 약 1 조 1,400 억원이다 .
국수를 판 돈으로는 실로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
2022 년 기준 대륙별 수출은 ,
유 럽 1 억 147 만달러 .
아프리카 300 만달러 ,
중 동 3,670 만달러 .
아시아 5 억 26 만달러 .
오세아니아 4,510 만달러 .
북 미 1 억 464 만달러 .
중 남 미 1.390 만달러이며 ,
세계라면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1 인당 라면 소비량은 73 개로서 전세계 2 위규모다 .
한국라면의 수입은 중국이 1 억 889 만달러로 세계 1 위다 .
현재 국내라면 회사의 시장 점유율은
농심 55.7%.
오뚜기 23.4%.
삼양식품 11.3%.
팔도가 9.6%이며
최초의 라면회사 삼양식품은 국내판매보다 해외판매로 다시 일어서고있으며
그중심에 2013 년에 출시된 ‘불닭볶음면 ’이 있다 .
라면의 원조인 일본의 닛산식품이 삼양의 불닭볶음면을 베낀 야끼소바볶음면을 내 놨다 .
포장지에 한글로 ‘볶음면 ’이라쓰고 ‘고추장과 치즈의 감칠맛 ’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
K 라면의 끊임없는 혁신이 이룩한 대역전극이 아닐수 없다 .
‘라면먹고 갈래 ?’
이 말에 담긴 끈끈한 감정의 속뜻을 모르면 한국인을 이해한다고 할 수 없다 .
라면만큼 우리를 쌀찌운 소울푸드가 달리 있겠는가 .
라면은 궁핍했던시절 하늘이내린 식량이었다 .ㅡ yorowon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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