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시인님 글방

닻 / 이향숙

덕 산 2021. 7. 16. 13:38

 

 

 

 

 

닻 / 이향숙

 

녹슬기 시작하는 바다를 오래 바라보다가

내딛던 물살에서 잠시 내리면

다시 돌아온다고 했잖아

 

큰 파고의 이랑이 거세지면서

풍랑의 심장부에 머물지 않겠다는 약속

 

포구로 돌아올 때마다

느슨해진 밧줄을 단단히 묶는 것은

이미 의지했기 때문이잖아

 

어느 비릿한 갯벌의 부드러운 뻘 흙속, 수런거리는

움직임에 네 심장을 묻었나

물 오른 나무들이 머리를 풀어헤치던

 

그 봄날 강가에서

멈칫 흔들리며 푸른 발목을 적셨나

 

견고히 묶여져서 자유롭게 하지 말아야 하는

기밀의 문서처럼

서로의 끈이 되어야 했던 때

부풀지 못하는 약속처럼 납작해져서

줄 하나 묶지 못한 네게

천근의 돌을 달고 싶었다

 

정박할 포구가 점점 가까울수록

집어등의 불빛은 더 멀리 너울대고

휘감은 수초들의 눈빛이 하염없이

붉고 붉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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