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 / 이향숙
녹슬기 시작하는 바다를 오래 바라보다가
내딛던 물살에서 잠시 내리면
다시 돌아온다고 했잖아
큰 파고의 이랑이 거세지면서
풍랑의 심장부에 머물지 않겠다는 약속
포구로 돌아올 때마다
느슨해진 밧줄을 단단히 묶는 것은
이미 의지했기 때문이잖아
어느 비릿한 갯벌의 부드러운 뻘 흙속, 수런거리는
움직임에 네 심장을 묻었나
물 오른 나무들이 머리를 풀어헤치던
그 봄날 강가에서
멈칫 흔들리며 푸른 발목을 적셨나
견고히 묶여져서 자유롭게 하지 말아야 하는
기밀의 문서처럼
서로의 끈이 되어야 했던 때
부풀지 못하는 약속처럼 납작해져서
줄 하나 묶지 못한 네게
천근의 돌을 달고 싶었다
정박할 포구가 점점 가까울수록
집어등의 불빛은 더 멀리 너울대고
휘감은 수초들의 눈빛이 하염없이
붉고 붉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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