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우(khw***) 2019-12-11 12:06:47
우리나라 경제가 세계 10위권 정도라고 하지요. 이는 곧 ‘세계에서 10번째로 잘 사는 나라’라는 것인데
전 세계에 과연 나라이며 국가라 이름 할 만 한 곳이 약 90개 정도가 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과연 우리는 과연 ‘상위권에 속한 부자나라’입니다.
물론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과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어렵고 힘들게 ‘못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지난 한 세대 전시절과 비교를 해 본다거나 하면 물론 부자도 큰 부자가 되어있는 모양이고 또 최소한 생존의
가장 기초조건에 반하는 ‘밥을 굶는 현재’ 같은 것은 나라의 지원으로 물리쳐 주기에 아주 특별하고 특이한
경우가 아니고는 ‘아파서 죽는 사람’은 많지만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의 일 같은 것은
발생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또 보고되고 있습니다.
“굶어 죽는 사람이 있는 나라”란 그 일컬어짐만으로도 비참하고 불쌍한 국가라 할 것이지만 인간에게
가장 시급을 요하는 문제는 ‘굶는 것’이기에 우리나라 역시 지난 한 시절 속에 국제사회에 마구 손 내밀어서
도움을 요청하고 그렇게 지원 받은 것으로서 연명(!)하여 가던 때도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는데 바로
그 시절 속 당사자들로 살았던 저 같은 사람들이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고 앞으로도 20~30년은
더 살 것 같은 현재를 지내고 있으니
과연 정말 우리나라는 세계가 놀랄만한 단기간 내에 국가적 가난의 부족함과 빈곤의 비참함을 물리치고
이겨내고 현재에 이른 것이라 그 발전과 수고의 공로가 공인 받기에 충분한 경우이지요. 물론 방위비라는
명목으로 돈을 더 받아내려는 계산이 있는 것이겠습니다만 아무튼 미국 대통령의 입으로부터도
‘대한민국은 잘 사는 부자나라’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언급되어져 전 세계인들에게 들려진 만큼
그리고 거기에 대하여서 우리 정부는 물론 관계자 중 그 누구도 “아냐,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여전히
못 사는 나라입니다.”라고 하며 부정이나 항변으로 나서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아서 과연 우리나라는
잘사는 나라 부자나라가 되었다는 것이 확증되었는데 그것을 전 세계 사람들 앞에서 공인시켜 준
사람이 바로 세계 1위의 부국(富國)이자 강국(强國)의 대통령 트럼프라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렇듯 부자나라 잘사는 나라라고 언급되고 불리어지는 것에 대하여서 우리 중
누구도 조목 조목 사실과 증거를 들어가며 부정하거나 항변하지 못하고 있다면 결국 우리 스스로도
인정하는 것이니 만큼 이제는 ‘떳떳한 부자’의 모양이 되어서 누군가에게 손 벌리는 것 같은 것은
그 흉내도 내지 말 것은 물론, 짐짓 일부러 지어내 보여주는 고단하고 궁핍한 얼굴로의 앓는 소리 같은 것은
이제 다 거두어들이고 세계인들이 생각하는 그 ‘부자나라’ 이름에 걸 맞는 위상을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즉 과연 부자나라의 ‘부자다운’ 면면을 세계에 보여주는 것인데 또 더 중요한 것은 ‘멸시 받는 부자나라’ 가 아니라
‘존경 받는 부자나라’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어떤 경우처럼 ‘부유한 동물들’이라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이는 사람이 부자가 되면 ‘사람’의 모양을 잃고 ‘짐승’의 모양으로 곧바로 수직하강하며 내려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말이기에 이제 막 부자의 반열에 오른 이들은 꼭 귀담아 또 새겨들어야 합니다.
그런즉 이제 우리나라 국민들은 ‘부자이면서도 여전히 사람됨’을 변함없이 유지하는 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마땅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부자(富者)’라는 말은 빈자(貧者)들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고 또
존재 할 수 있는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이 세상에 남자(男子)들만 있으면 남자라는 구분 말 자체의 소용
닿는 곳이 없는 것처럼 즉, 내가 부자 되고 우리가 부자 된 것은 지금도 누군가가 빈자 되고 많은 이들이
역시 빈자 된 가운데 처하여 있기 때문이며 그 사실과 현실이 상대적으로 풍성한 이들에게 부자라는
이름을 갖게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부자들은 ‘나를 부자로 구분되어지게 하는 빈자(貧者)들에게’ 마땅히 나누고 베풀어야 하는 데
곧 그들이 그렇듯 나에게 부자라는 이름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라는 명백한 이유로서 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모든
‘베풂’도 거들먹거리거나 교만한 마음으로 하여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그것은 마치 ‘부모보다 높아지려는’것과도
같다고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높은 지위를 얻고 모든 이들이 다 내 앞에 나와서 부복하여도 여전히
그리고 죽을 때까지도 나보다 높은 사람이 내게 있으니 곧 아버지 어머니가 아니겠습니까..
빈자가 있어 부자가 되었다면 부자들은 늘 빈자를 향하여 감사의 모습을 갖추어야 합니다.
또 이 세상에 아무리 부자나라라고 하여도 그 속에는 가난한 ‘걸인’들이 꼭 있다는 것을 눈여겨보십시오.
세계에서 ‘구걸하는 거지’가 가장 많은 나라가 바로 경제 1위의 부국 미국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이러한 역설은
그들이 부국 미국에 살면서도 ‘국가의 기초수급’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거지의 자리로 내려앉은 때문입니다.
생존은 보장되어 있지만 생활에 불만이 있기 때문이지요. 비슷한 예로 몇 년 전에 한 이스라엘 대학의 교수
한 사람이 휴가를 내고 우리나라에 건너와서 음식점 알바를 하던 것이 드러나서 잠시 화제가 되었는데
그는 ‘이스라엘의 교수’보다 ‘한국의 알바’가 더 수입이 낫다고 말했습니다.
그 역시 수입이 없어서가 아니라 ‘작은 수입’에 만족하지 못한 것이지요.
그러한 이들은 자기 스스로 그러한 자리를 찾은 것이기에 그 형편과 처지를 뭐라 정의하기가 힘들지만 또한
어떻든 그들의 그러한 가난의 모습에 까지도 그 책임을 무조건적으로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는 사람이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만족이 없으면 ‘가난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할 때에
그저 동정의 마음으로서가 아닌 나에게 맡기어진 책무와 의무 그리고 사명을 행하는 책임 있고 겸손한
모습이 되어 그렇게 ‘가난한 이들이’ 되어진 이들에게 나누고 베풀며 도와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정말로 가진 것이 너무 없어서 생활은 물론 생존까지도 위협을 받는 사람에게야 무엇을 따져 묻겠습니까..
우리나라가 부자나라라면 그래서 우리가 부자나라 국민들이라면 또 그래서 내가 최소한 하루 세끼 먹을 것만큼은
염려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나누고 베풀만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며 바로 부자입니다. 즉 수준과 정도를
따지지 아니하고 나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향한 사랑이 있는 곳이 바로 ‘선진국’이며 모든 부자나라는 그저
‘돈 많은 풍성과 도락의 나라’가 아니라 이렇게 ‘선진국인 부자나라’ 되어야 합니다. 즉 나라살림은 부자의 모양이지만
그 삶의 내용과 질의 모양으로는 ‘후진국’의 모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두고두고 하시라도 잊지 말아야 할 말씀을 하시고 주신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멀리 내 힘이 닿지 못하는 곳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주변 내 이웃 내가 쉽게 그 어렵고 힘든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이들을 향한 온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작금의 성탄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 산골어부 20191211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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