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우(khw***) 2019-12-10 17:51:43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은 부자나라’라고 하였는데 물론 방위비를 더 받아 내려는 차원에서 한 말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의 이 말을 계기로 과연 우리나라는 부자나라인가 하는 것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부자(富者)란 ‘재산이 많아
살림이 넉넉한 사람’이라는 국어사전의 정의입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돈이 많은 사람’ 그리고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사람’
또 그래서 ‘생활이 윤택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을 해보면 저와 같이 전후 너나없이 ‘가난하고 궁핍하였던’
시절을 어린 시절, 청소년 시절 그리고 청년시절까지도 이어서 살아본 사람은 지금의
‘우리나라 부자나라’라고 일컬음 받음에 동의할 것입니다.
늘 있곤 하던 장면들은 아니었지만 저 어렸을 적에 특히 추운 겨울날이 되면 가끔씩.. 못 먹어서 굶어죽고,
추워서 얼어 죽는 일들의 소식들이 들려왔고 그때마다 ‘불쌍하다..’라는 마음의 발동과 동시에 ‘내가 아니라서 다행..
’이라는 속 깊은 곳에서의 안도의 목소리가 아닌 듯 올라왔던 것이 기억납니다. 너나없이 가난했던 시절 속에서 지냈습니다만.. 다행이라고나 할까.. 아이들만큼은 굶기지 않으려는 어른들의 눈물겨운 수고와 노력으로 배급 받은 밀가루로 수제비라도
만들어 먹을지언정 굶어보지는 아니하였지만 무엇이든 그때 그 시간에 내 손에 있어야 할 꼭 필요한 것은 ‘항상 없거나
부족한’ 가난한 삶을 살아보았습니다. 쯧, 밥도 굶는 사람들이 늘 있었던 시절이었으니 말해 무엇하랴마는..
그래서 저 같은 세대의 사람들만 하여도.. 아니 저는 사람이 산다고 하는 최소한의 조건으로는 ‘굶지 않고, 헐벗지 않고..
’하는 모양을 지금도 그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만, 작금을 현재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들이 ‘헐벗고 굶어야 하는’ 상황과 환경을 겪어보지 못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듯 육신의 춥고 배고픈 현재
사실적 상황보다는 그러한 궁핍과 핍절로서의 부족함이 혹 누구에 의해서나 또 아무것으로도 채워지지 아니하고
그렇게 될 가능성 역시도 전혀 없는 것이 확실해 보이는 ‘암담한 절망적 환경조건’ 속에 들어가 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하겠습니다. 즉, 최소한의 생존조건에 대한 ‘암담함’을 나의 현재로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지요.
굶어죽는 국민이 있고 얼어 죽는 국민이 있는 나라이면서 이들의 생명보호와 그 연장에 대한 적절한 보호책을
세우지 못하는 나라라고 한다면 과연 ‘가난한 나라’이고 또 ‘비참한 나라’이며 그래서 ‘불쌍한 나라’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러한 나라들이 이 세상에 적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같이 세계 10위 정도의 경제권역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나라사람들에게 ‘부자나라 사람들’이라는 일컬음을 받아 마땅하지요.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가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먹을 것이 없어서 끼니를 굶는 사람’이 있습니까? 있을 수도 있지만 당연히 없어야 하지요.
왜냐하면 정부에서 우리나라 대한미국의 국민으로 등록 되어진 가난이 극한 모든 이들에게 ‘기초생활 수급비’를
나누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고 넉넉한 액수는 물론 아니지만 최소한의 생명연장을 위한 의식주(衣食住)의
기초적 해결을 하여주고 있습니다. 초라한 음식 구제의복 그리고 허술한 거처 또는 공동주거지 형태로 등입니다.
물론 어떠한 수준과 형태가 되었든지 굶어죽거나 얼어 죽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생존과 생활의 조건이지만
그 공급과 분배의 원활하지 못함이나 또는 거기 그러한 최소치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의 이탈의 행태가 종종
더 큰 비극을 부르게 되는 일들도 종종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긴 저의 어릴 적 시대만 하여도 가난한 이들에게 정부에서는 밀가루 배급, 구호의복 나눔의 모양들이 있었으며
그리고 주거지 역시 아무리 허술하게라도 일단 ‘지어진 주거용 집’에 대하여서 만큼은 법에 위반 되는 것이라고 하여도
허물어 버리거나 하는 법집행을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산등성 달동네 같은 곳에 무허가 판잣집 같은 것들이
들어섰는데 특히 서울 청계천 변 양 옆으로는 무수한 판잣집, 함석집 등에 조금 두꺼운 종이 상자 같은 것을 재료로 하여
지붕을 덮기도 한 일명 ‘박스 집’ 같은 것들이 들어섰던 것이 오래된 기억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그야말로 다양한 사건 사고 즉, 범죄 싸움 화재 등 사건들이 끊이지를 않았지만 그렇게라도
나의 것을 지키려는 역설적이게도 선함과 거짓의 몸부림으로서 ‘악다구니’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그들을 위하여 도와주거나 보태주거나 할 만한 여유가 없었고 가난했던 정부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가난은 임금님도 못 말린다.”는 말이 있는 것은 그 만큼 가난의 문제에 대하여서 만큼은 매끈한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것이라서 그럴 것 이겠습니다마는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지금 당대(當代)에 가난을 극복하고 ‘부자나라’소리를
듣게 된 참으로 특이하고 그래서 주목할 만한 경제발전의 모본 국가가 되었고 그래서 많은 빈국 개발도상국 나라들이
그 비결과 방법을 배우려고 지금도 손에 손에 연필과 수첩을 들고 여전히 찾아오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이곳에서 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가나안 농군학교’에도 가보면 늘 외국인 학생들이 기숙하며 노트며 필기구들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역시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즉 그 모두가 자신들의 나라와 국민들이 ‘잘 살기를’ 원하고 궁극적으로는 부자나라가 되기를 원하여서 이며 그 꿈을
가지고 그 실현과 이룸의 길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러하였습니다만 그러한 이들에게 ‘부자나라’란 곧
‘꿈의 나라’인 것이지요. ‘꿈’이라는 말은 실제로는 이루어지기가 너무 어렵고 힘든 것 그래서 물거품의 모양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겠는데 우리 국민들은 그것을 당대에 이루어냈으니 내가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과연 세계에
내어놓을 만한 ‘위대한 민족’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 산골어부 20191210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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