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우(khw***) 2019-06-26 22:12:41
바로 저를 지적하는 말입니다. 아내와 아이들로부터이지요. 옛날이야기라는 것도 선녀들이 등장하는
전설의 이야기나 호랑이가 말도 하고 담배도 피우던 시절에.. 하던 전래 동화적 이야기들 같으면 재미있는
줄거리나 상상의 표현들이 주는 재미로 인하여 환영을 받을 것이기도 하겠지만 한 개인의 ‘옛 시절’이야기라면
보편 일반으로서의 대중적 분위기는 다 사라지고 그저 ‘그 사람 아무개가 살아오면서 겪은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살펴보니 아내와 아이들의 내심에는 아닌 듯
‘툭하면 옛날 이야기하는 아빠..’ 뻔~뻔~ 하였다는 번데기 장수이야기로 시작하여 10원짜리 삼립 크림빵,
신앙촌 카스테라, 뚝섬유원지, 전차표 5원에 두 장, 백두산 연필과 동아전과... 등 별로 재미있지도 않고
교훈적이지도 않은 그 시절 속의 현재를 이야기 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저는 저의 이야기 인지라 즐겁게
이야기를 하지만 듣는 아내와 아이들은 그저 아빠의 어릴 적 옛날이야기를 별로 귀담아 듣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하는 옛날이야기에는 물론 재미도 있어야 하지만 또 역시 듣는 이들
누구에게나 공히 주어지는 ‘영양가’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봅니다. ‘옛날’이란 무엇일까.. 사전을 찾아보면 ‘오래 된 지난 날’이라고 간단하게 정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사람들은 ‘옛날’이라는 말을 ‘오래 된 지난 날’이라는 뜻과 역사적 사실
적용으로만 사용을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지요 그 말은 여러 가지 뜻과 의미의 뉘앙스를 은연중에
내포하고 보여주며 개인, 가정, 사회 그리고 한 국가의 역사까지도 아우르는 시대적 표현의 장르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고 하면서 옛날을 말하는 것과 ‘옛날 고리짝’이라는 말 그리고
‘옛날에 새마을 운동이라는 것이..’하는 것에는 다 ‘지나간 옛날’의 장면들을 말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각기 다른 뜻과 의미 그리고 적용이 있기에 한 가지 모양으로 그저 오래 된 지난 ‘옛날’ 속에 묶어버리며
해석하고 설명해버리려는(!) 모양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먼저 ‘호랑이 담배 피우던 때’라는 말을 보면 분명히 호랑이가 실제로 곰방대를 물고 있었던 것은 아닌 것이
분명 하기에 그저 오래 전 일들의 이야기 뚜껑을 빼꼼 열어 보는데 사용되어지고 있는 도입부로서의 서언이며
현재와의 구분을 두어 선을 긋는 하나의 전주일 것이고.. 그런즉 앞으로 나오는 이야기들이 이해 할 수 없는
황당할 일들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 놀라거나 굳이 따져 듣지 말고 가만히 들을 준비를 하가고 하는
은근한 압박일 수도 있습니다.
‘옛날 고리짝’이라는 말은 아마도 그 어원이 ‘옛날 고려 적’일 텐데 우리가 살아보았던 시대가 아니기에 그저
쓰여져 있는 것이나 전해져 오는 이야기 일뿐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다만 ‘새마을 운동’이라는 것은 60년대
초중반에 범국가적으로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하고 정부주도 민간운동으로 큰 호응 속에 일어났던
일이면서 또 거기 그 현장에서 그렇게 초가집을 헐어내고 블록담장을 세우며 으샤으샤 하였던 이들이 아직도
많이 있어 증인 풍성 증거 풍성의 ‘우리시대 이야기’들이 분명하건만 그 또한 이제는 다 긴 한숨에 실어내는
‘옛날이야기’들이라고 하기도 하지요.
누구나 자신이 오래 전에 보고 듣고 겪은 실제 체험의 이야기를 할 때에는 곧 ‘자기의 옛날이야기’를 하는 것이기에
예를 들면 제가 아이들에게 “아빠는 이승만 대통령 시절도 살았다”라고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책속에서나
‘이승만’이라는 이름을 지난 역사속의 한 인물로만 보고 배우기에 곧 그게 바로 ‘아빠의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다는 것이지요. 자신들은 태어나기도 전 그래서 경험해 본적도 없고 짐작도 가지 않는 그래서
다만 당시의 사실적 상황에 대하여서만 지식으로 담아 놓기만 하면 되는 공부의 과정으로서의 충족만 이루면
되는 것이기에 그렇듯 이해되지 아니하는 모양들을 떠올리면서 그냥 ‘그때는 그랬구나’하는 추상과 유추의
정도에만 머무르게 되는 것이지요.
“엄마 옛날이야기 해 줘요..”
라고 재촉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엄마는 그때 당신의 단골메뉴 ‘이성계와 퉁지란’이야기를 구연동화의
모양으로 실감나게 들려주셨고 나와 동생은 작은 주먹을 꼭 쥐고는 정신없이 엄마의 그러한 각색 연출 구연과
표정연기로서의 이야기 솜씨에 빨려들어 갔습니다. 허허 정말 그 때는 대부분의 부모 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였던 시절이었는데 지금은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부모들도 거의
없는 것 같고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아이들은 온통 저마다 손에 스마트 폰을 들고서 시도 때도 없이 빨려들고 있는
모습이며 모양들인지라.. 휴.. 그때가 더욱 더 정감(情感)으로서의 교감이 더하여 지던 시절이 분명하였지.. 하면서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그래요.. 그렇게 저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옛날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데 불원간에 ‘옛날 고리짝사람’이 되어
‘한 시대의 증인 얼굴’로서 뒷방 한 구석을 차지하고 눈만 껌벅껌벅하는 때가 머지않아 곧 오지 않겠는가 하고
허허 씁쓸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반드시 닥쳐오고야 말 그때를 생각하며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스마트 폰’을
배워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야 할 때에는 그저 그게 최고라고 말들도 하고 있고...
이제 겨우 60대 중반을 막 넘어서고 있지만, 작금을 살아가는 저와 동급 세대들만 하여도 여전한 ‘아날로그’의
모습과 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한지라 그러한 돼지털 아닌 ‘디지털세상’과 다정히 손 붙잡고 친하게 살아가기
위하여서는 단순한 손의 숙달이나 장치의 익숙함에 앞서 그렇게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덮여버리고 변해버린
세상의 현재에 대한 긍정적 사고방식이 우선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시에 뚝섬유원지 이편에 서서
멀리 강 건너 봉은사를 바라보았던 반세기 전의 기억의 선명함이 여전한 ‘옛날 사람’이 되었는데 그래서 지금은
전혀 몰라보게 많이 변해버렸다고 하는 뚝섬.. 그 옛날 유원지의 흔적을 한 번 가서 찾아보았으면..’ 하는
모양으로 ‘옛날 사람 인정’에 확인 도장을 거듭 찍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요.. 뚝섬에 가면.. 지금도 강 건너에 봉은사가 보일까.. 그때 5원씩 10원씩 받고 사람들을 건네주던 커다란
‘뗏목 배’는.. 물론 지금은 없겠지만 그러면 어떻게 강을 건너다닐까.. 뚝섬대교가 세워져 있는가.. ‘뚝도 극장’도
물론 없어졌겠지.. 그래.. 내게 익숙했던 많은 모습들이 없어졌겠지..뭐.. ‘눈부시게’ 달라진 모습으로 발전을
하였다고 하는데.. 이 시대에 발전이란 곧 옛 모습들을 때려 부수고 그 위에 다른 것이 세워지는 것으로 정의
된다고 할 수 있으니.. 그래.. 이제는 뭐가 남아 있겠어.. 그저 흐르는 강물의 모양만큼은 여전 하겠지만..
그것도 나에게 익숙했던 탁하고 더러운 똥물이 아니라 맑고 깨끗한 강물로 바뀌어 있을 것이고..
쯧 그래서 “에잇 나는 그때 똥물이 더 좋아!!”하는 슬픈 억지를 부려보게 됩니다.
모든 있던 것이 없어지고 무너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이 있게 되고 세워지고 하는 모습이 발전의 모양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세상의 발전’에 발 맞추어주는 존경 받는 모습을 갖기 위하여서라도 나 같은 ‘앞 세대’는 ‘뒷 세대’를 위하여
그렇게 무너지듯 빨리 ‘사라져 주어야 하는’ 것일까.. 하기야 대놓고 말을 못해서 그렇지 다들 그 말을 하고 싶어서
꿀꿀한 표정들을 굳이 감추지 않으면서 앞 세대들을 표정관리 모양들을 힐끔힐끔 훔쳐보고 있잖아.. 나 같은 베이비붐
시대의 선두주자들에게 이제 그들에게 ‘베이비(Baby)가 아니라 어덜트(Adult)가 되었고 오울드(Old)가 되었으니.. ’그래요..
그 동안 수고 하셨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이제는..’(뭐, 어떡하라고?!) 그래.. 입술로는 시대의 공로자들이네
가난을 물리친 역군이네 나라를 지킨 용사들이네 하고는 있지만.. 그 내심은 다 거기에서 거기일 뿐이지..
그래서 말하고 싶고 외치고 싶습니다. 우리 베이비 붐 시대의 역군(!)들과 그 이전의 형님들과 누님들이여,
이제는 더 이상 후세대의 그런 대접에 너무 서운해 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물러앉으십시다.
아직도 할 일이 있다면 물론 좋고 능력이 있다면 또한 더 좋은 일이지만 그러나 그것 때문에 자칫 ‘물러앉을
적기(適期)’를 놓치는 만년의 결정적 우(愚)를 범하지 맙시다. 그리고.. 그래요.. 기꺼이 ‘옛날이야기 해주는
사람’이 되십시다. 비록 아이들이 지금은 귀담아 듣지 않아도 ‘나의 기쁨과 즐거움’을 위하여서라도 그렇게 하십시다.
그리고 사실 내가 하는 모든 ‘옛날이야기’ 속에는 나의 크고 작은 자랑거리들이 아닌 듯 스며들어져 있지 않습니까..
다시 해보고 싶고.. 다시 가보고 싶고.. 다시 만나보고 싶은...
그래서 더욱 ‘꼰대’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겠지만 거기에 위축되지 마십시다. 후손들에게 ‘아직도 꼰대는 살아있다’라는
명제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말들을 하기도 하지만 ‘살아있다’는 사실 확인 보다는 ‘아직도 꼰대의 사랑은 살아있다’라는
명제를 만들어 일러주고 새기어주는 선배들의 후대 사랑을 늘 일깨우는 것으로 우리들의 만년과 말미를 장식합시다.
우리의 이름과 얼굴의 기억들이 ‘스마트 폰’ 만도 못한 대우의 나락으로 떨어져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나 고집이나 외곬의 못난 모습으로 그렇게 ‘옛날이야기’ 속에 애써 나의 이름을 넣지 말고 ‘사랑하는 마음’을
정성으로 담아냅시다. 그래서 아이들의 ‘눈앞에 시퍼렇게 살아있는 꼰대’가 되지 말고 ‘마음속 아련함으로 늘 살아있는
어른’들이 되십니다. 휴 이렇듯 나이 들어가며 ‘옛날 사람’이 되어가는 것 누구나 다 가는 길이 아닙니까?
몸부림도 발버둥도 치지 맙시다. 그 둘을 동시에 치지는 더욱 맙시다. 지금 내가 여전히 붙들고 있는 내 앞의
것들을 차분하게 내려놓고 또 내 마음 속에 ‘높이높이’세워져 있는 ‘옛날이야기들 속 부질없는 수식들의’ 밑둥치를
쑹덩 과감히 잘라내는 것으로 그렇게 할 수 있고 될 수도 있습니다.
만년에 이르러 꼭 누려야 할 ‘평안의 날들’이 그렇게 시작됩니다.
‘옛날이야기’를 재미있게 하여주는 할아버지들이 됩시다. 그 속에 ‘나의 옛날이야기’를 넣어야 할 때에는 필히
앞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는 아이들의 선한 마음의 생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양분이 되는 것인지를 점검하고 검증합시다.
그렇게 ‘옛날이야기 속에서’ 웃고 있는 얼굴의 웃음을 되찾으시고 누구나 맞이하는 그 날이 왔을 때에 역시 그렇게
웃는 얼굴로 길을 떠나십시다. 나의 기쁜 옛날은 후대에 반복되기를..
슬프고 고단하며 거짓되었던 일들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고 기도하며...
- 산골어부 2019626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애국(愛國)과 국익(國益) (0) | 2019.07.03 |
|---|---|
| 수제비와 엄마의 뜨대국 (0) | 2019.07.02 |
| 조금 다른 여행을 떠난다 (0) | 2019.06.26 |
| 금낭화를 보면서 (0) | 2019.06.25 |
| 더 늦기전에 (0) | 2019.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