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같이 비가 내린 뒤...
꽃샘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하는 날....
반세기가 지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추억을 더듬는다.
3월엔 서리가 내려 보리밭에 해가 떠오르면 서리가 녹아
보리 잎은 이슬이 내린 것 같이 보였다.
한 톨의 곡식이라도 더 거둘 욕심으로 천수답 논에
이모작으로 심은 보리밭엔 바늘같이 가느다란 잎파리 모양에
독새풀이 보리보다 더 많이 자라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맘때면 보리밭에서 사셨다.
1950 ~ 60년대 그 시절엔 제초제가 없고 논. 밭에 쭈그리고 앉아
보리밭에 추비를 주기 전에 독새풀을 제거하는 일이
3월 농부들이 하는 연례행사 같은 일이다.
밭엔 독새풀이 이따금 있지만 논에 심은 보리밭은
씨를 뿌린 듯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었다.
아버지는 이른 아침부터 다랭이 논에 심은 보리밭에서
독새풀과 시름하고 계셨다.
그때 난 초등시절.... 고사리 같은 손으로 부모님을 도왔다.
이런 일은 우리집 뿐 아니라 마을주민 모든 사람들의 일상이었다.
아침 서리가 녹는 시간이면 얼어버린 흙도 함께 풀려
검정고무신 위로 질퍽한 흙이 양말 위까지 올라왔다.
발을 떼어 움직일 때 마다 고무신 무게가 천근이었다.
논두렁 마른 풀에 고무신을 좌우로 비벼서
달라붙은 흙을 털어내곤 했다.
나이어린 녀석이 부모님을 돕는 것은 짧은 시간이었으며,
대부분의 독새풀 제거는 아버지 몫이었다.
저녁시간 손발을 씻고 방에 들어오시는
아버지의 손과 발은 쩍쩍 갈라져 속살이 빨갛게 드려다 보였다.
아버지는 자식들 앞에서 아프다는 말을 한 번도 하신 적이 없었다.
어두침침한 등잔불 아래서 작은 칼로 굳은살을 베어내곤 하셨다.
통증을 말씀하시지 않아 갈라진 손과 발을 보면서도
아버지에게 불편하지 않으신지 여쯥지도 않았다.
아니.... 말씀을 하지 않으셔서 통증이 아예 없는 줄 알고 있었다.
지금은 좋은 연고도 많아 갈라진 부위에 바르면 상처가 쉽게 아물지만...
아버지께선 그 통증을 잊기 위해 잎담배를 말아 피우시는 것으로
대신하셨던 것 같다.
어느 날.... 면사무소에 가셔서 도민증을 만드시기 위해 지문을 찍었는데...
아버지 손에서 지문이 나타나지 않아... 또 다시
면사무소 직원이 지정해 준 날에 가셨지만 지문이 나타나지 않았다.
면장갑이 귀했던 시절....
면장갑이 있었더라도 돈 때문에 구입할 여력이 없어
여전히 맨손으로 독새풀을 뽑으셨을겁니다.
몇 십년 세월이 지난 지금...
이젠 내가 나이 들어서인지 피부가 건조해서
로션이나 핸드크림을 자주 바르면서
몇 십년이 지난 뒤에야 아버지의 고통을 헤아려 보게 된다.
손가락에 작은 가시 하나 박혀도 고통스러운데 속살이 훤하게
드러나 보여도 그 통증을 말씀도 안하시던 아버지.........
지문이 나타나지 않아 몇 차례 씩 면사무소를 방문해서
겨우 도민증을 발급 받으셨던 아버지....
회갑이 넘은 세월이 지난 뒤에야 아버지의 통증을
이해하게 되는 철없는 자식이다.
자식위해 희생하신 아버지....
그 독한 잎담배 연기 속...
아버지 헛기침 소릴 듣고 싶은 날이다.
시내 로터리에 관상용으로 심은 보리를 보면서
지난 시절 회상하며 회한에 잠겨본다.
- 2012. 4.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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