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 고영민
추석 전날,
환갑이 지난 맏형이 어머니께 드린다고 선물을 꺼낸다.
난데없는 바바리맨 인형, 잔뜩 옷깃을 세우고
검은 안경을 낀 바바리맨이 식구들 앞에 나타났다.
순간, 야! 하고 형님이 소리치니 으하하하! 웃음소리와 함께
바바리맨이 앞자락을 열어젖힌 채 심벌을 아래위로 흔들어댄다.
심벌은 거대하고 사실적이라, 며느리들은 민망하여 고개를 돌리고
팔순의 어머니는 눈물까지 닦으시며 웃으신다.
인형은 소리를 치면 반응을 하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바바리맨을 향해 영민아, 하고 소리를 친다.
으하하하! 웃음소리와 함께 바바리 자락을 열어젖히고
심벌을 어머니 앞에 흔들어댄다.
방 안은 온통 으하하하! 이어 여섯 아들들이 한명씩 차례대로 불려나와
어머니 앞에서 자랑스레 심벌을 흔들어댄다.
어머니는 과수원을 하다 사고로 죽은 넷째 형도 불러세우고
그 죽은 아들 역시 어머니 앞에서 으하하하! 거대한 심벌을 흔들어댄다.
바바리맨은 시골집 안방 텔레비전 위에 깃을 여민 채 오늘도 대기중이다.
고단한 저녁, 어머니는 가끔씩 아들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고
그때마다 바바리맨은 아무것도 부끄럽지 않은 알몸으로 으하하하!
가장 크고 자랑스러운 자지를 흔들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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