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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보의 법칙 / 법상스님

덕 산 2022. 9. 5. 11:21

 

 

 

 

 

업보의 법칙

 

우주는 마음에 뭔가 연습한대로 되돌려줍니다.

우주는 나와 너의 구분이 없는데,

나와 상대가 따로 떨어진 존재로 있는 줄 알고

상대방에게 욕을 하니까 사실 그것은

곧 나 자신에게 욕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타인을 욕하고 공격하고 못났다고 낮추는 것이

곧 나를 욕하고 내 능력을 위축시키는 일이거든요.

 

저 사람 확 망해버려라 하면서

그 사람이 성공하는 것에 대해 배가 아프다면,

사실 그 말은 나를 성공 못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하고 뭔가 원하고 바라면서

기복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게 무언가를 원하고 빌고 바란다는 마음 자체가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몸에 지병이 있는 사람은 끊임없이 몸이 낫기를 바라고 원하면서

‘몸 낫기를 바랍니다’ 하고 기도한단 말이예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되레 몸이 점점 더 안 좋아질 수가 있습니다.

그 바람 자체가 ‘내 몸은 너무 좋지 않다’라는 사실을

자꾸만 느끼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부하는 것은 오히려 계속된다,

또 두려워하는 것은 오히려 지속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관(觀)하라는 알아차림의 관 수행을 자주 말합니다.

 

마음을 관찰하고 깨어있으라고 얘기를 하는데

그 깨어있는 것이 잘 안 됩니다.

그런데 때때로 마음을 어떻게

관찰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런 분들에게 저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느껴 보라고 말합니다.

 

가만히 그것을 느껴보라,

우울한 사람에게는 우울감에서 벗어나려고 애쓰지 말고

우울한 그 느낌을 느껴보고, 고독한 그 느낌을 느껴보라고 합니다.

화가 날 때는 그 화나는 느낌을 느껴보고 지켜보는 것입니다.

욱하고 화가 올라올 때 그 올라오는 화를 느껴보아라 하는 겁니다.

느낀다는 것 자체가 관(觀)한다는 것이고요.

그 관하고 느끼는 것, 그것에 우주 법계는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비는 마음은 무엇을 느끼게 해주느냐하면

우리에게 부족한 바로 그것을 느끼게 해줘요.

결핍된 것을 느끼게 해줘요.

그러니까 사실은 '부처님, 부자 되게 해주십시오.' 라고 빌지만

사실 그 말은 ‘지금은 부자가 아닙니다’

‘나는 부족합니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뜻이 되고

그 결과 부족과 결핍을 연습하고 있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

지금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돈이 필요한 사람은 지금 현재 받고 있는 연봉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을 때

그 돈에 대한 풍요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랬을 때 돈에 대해서 긍정과 감사와 풍요로움이 느껴져요.

 

그러면 우주법계는 이 사람이 풍요로움을 느끼니까

풍요로움을 자꾸 가져다줍니다.

돈에 대한 풍요로움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돈을 가져다줘요.

 

내보내는 것이 돈으로 인해 풍요로운 마음을 내보내니

그 결과로써 들어오는 것도 풍요로운 결과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 우주는 언제나 내보내는 것이

곧 들어온다는 법칙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게 바로 업보의 법칙 이예요.

 

생각으로 업을 지으면 그 과보를 받는 겁니다.

부유하고 풍요롭다는 생각, 의업을 세상으로 내보내면

거기에 따라 풍요롭고 부유한 현상세계가

그 과보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자식에게 불만이 많은 사람은

그 자식이 계속 불만스러운 행동을 하게 됩니다.

 

자식이 컴퓨터와 게임에 빠져 있잖아요.

그럼 너는 왜 만날 컴퓨터에 빠져있어, 하고

화를 내고 탓을 한단 말입니다.

그러면 그 아이는 결코 그 컴퓨터에서 못 벗어납니다.

그 집착을 내가 놓아 버리기 전까지는.

 

오히려 거기에 대한 더 큰 집착이 생기게 됩니다.

오히려 그것을 탁 놔버릴 줄 알았을 때

그랬을 때 이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이 은근히 마음 속에 반발심이라는 게 엄청 커요.

부모님이 하는 이야기에는 일단 반발심부터 일어납니다.

그 반발심을 잠재우지 못하면 어떤 좋은 말도 거꾸로 들려요.

 

 

 

 

 

 

거꾸로 돌아간단 말입니다.

“만화책 보지 마! 컴퓨터 하지 마! 게임 하지 마!”

이 말이 오히려 게임을 더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자꾸 받아들여진다는 말입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고,

못 하게 하면 더 애틋한 마음이 생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과도 떼어 놓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그 둘 사이의 사랑의 감정은 더 깊어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게임하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잘못된 것일까요?

이건 옳다 그르다하는 차원에서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옳다 그르다 얘기한다면 게임하면 안 되겠죠. 그렇죠?

그러나 게임하면 안 된다는 부모님 마음의 집착,

그 집착이 더 큰 문제입니다.

 

자식이 게임을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그 문제의 크기보다

너는 그 게임하면 안 되고 공부만 해야 돼, 라는

부모의 집착이 사실은 더 문제고

더 큰 탁하고 부정적인 에너지를 가져옵니다.

 

우주 법계를 더 어둡게 만든다 이 말 이예요.

그건 자식과의 관계회복도 어려워지게 하고

그렇게 되면 결코 자식은 부모님 말을 듣지 않고,

부모의 말에 힘이 실리지 않습니다.

 

하물며 『금강경』에서는 불교 그 자체에도 집착하면

그것은 더 이상 진리가 아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거기에 집착해서

그것을 고집하는 것이 도가 넘어서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진리도 아니고,

지혜로움도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 법상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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