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글

무아이면 무고이다(無我이면 無苦이다) / 법상스님

덕 산 2022. 7. 6. 10:59

 

 

 

 

 

무아이면 무고이다(無我이면 無苦이다)

 

살다보면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그것도 너무 괴로워서 괴롭다는 말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이 정도로 괴로운데 왜 나는 미치지도 않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젊었을 때 몇 년간을 너무 괴로워서,

나름대로 그 괴로움을 정면돌파 해보자고 생각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학교도 휴학하고 온갖 철학, 종교, 인생서적 등을 읽고

존경받는 철학자나 종교지도자들을 찾아다니며 뭔가 배워서

나의 이 괴로움을 직접 해결해 보려고 했습니다.

 

좋은 글과 좋은 말을 접했을 때는 뭔가 되려나? 했지만,

어느새 나약하고 힘들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몇 년간의 그런 사투(死鬪) 끝에 몸도 마음도 완전히 황폐화되었습니다.

이제 인생을 그만 접어야겠다는 생각에 빠져있었습니다.

 

[아무리 해도 나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을 것이고,

그러므로 행복 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깊은 절망감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온갖 책의 좋은 글들도,

그 어떠한 사람의 위로의 말도 전혀 소용이 없었습니다.

 

거액의 생명보험을 들어놓고,

수혜자는 부모님 이름으로 한 후 등산했다가

실족하여 사고사한 것으로 위장하려 했습니다.

 

경상도의 어느 산을 올라갔습니다.

이제 얼마 후면 이 지긋지긋한 삶을 마감할 수 있겠다 싶어서

한편으로는 묘하게 흥분도 들더군요.

가다가 목이 말라서 약수 물이 있는 어느 조그만 암자에 들렀습니다.

 

 

 

 

 

 

 

나이 든 비구니 한 분이 나오시더니,

저를 물끄러미 쳐다보더군요.

그러더니, 자기가 밥 먹을 건데 같이 먹자는 것이었습니다.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좋다던데, 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겁니다.

왜 눈물이 나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하여간 계속 눈물이 나는 겁니다.

비구니께서는 아무말 없이 저를 안고

한참 동안 토닥거리기만 하셨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살아온 제 얘기를 그 분께 했습니다.

왜 이렇게 괴로운지,

왜 인생에서 아무런 의미와 희망을 느끼지 못하는지,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나름대로 죽을 고생을 했는데,

결국 실패했다며 펑펑 울었습니다.

 

그 때 그 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나는 있나? 있다면 어디에 있나? 있기는 있는가? 문제는 있나?

있다면 어디에 있나? 있기는 있는가? 괴로움은 있는가?

있다면 어디에 있나? 있기는 있는가?“라고

부처님이 수 천년 전에 말씀 하셨다네.

 

청년은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를 한 것 같은데,

수 천년 전의 이 말에 대한 답을 해보겠나?

저는 당시 불교서적도 제법 읽은 상태이고,

4법인, 유식사상, 공사상, 무아와 십이연기, 선사상 등에 대해

나름대로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한 마디도 하지 못했습니다.

“나도 외롭고, 청년도 외로우니 하루정도 내 곁에 머물러주게.”

하시는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룻밤을 거기서 보냈습니다.

 

밤새 [~~]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며 뜬 눈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얻은 것이 바로 [無我이면 無苦이다.]에 대한

약간의 이해였습니다.

그냥 “알고 있다” 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이해” 말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無我의 경지는 모르겠고, 空我에 대해서 느꼈습니다.

왜 空我이고, 空我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살다보니,(제대론 된 空我를 몰라서이겠지만)

공아로써 살기에는 허전하더군요.

뭔가 내 가슴에,

내 인생에 하나 정도는 채워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하나를 뭘로 할까? 생각해보니 딱 한 단어밖에는 안 떠오르더군요,

바로 " 사랑 " 말입니다.

그 때부터 “사랑” 이 단어는 제 인생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최소 세 번은 이 화두를

참선하자는 것이 제 하루 생활의 지침이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는 살아가면서, 힘도 들고,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고, 화도 나고, 여러 가지 七情五欲에 휘말리면서도

최소한 저 자신을 완전히 망각하지는 않고 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같이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좀 더 빨리

괴로움을 덜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금껏 살고 있습니다.

갑자기 얘기가 하고 싶어졌습니다.

귀한 시간 들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괴로워하는 후배들에게 늘 해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을 적으며 마칠까 합니다.

“세상에는 세상의 법칙과 도리가 있다.

그것을 모르고 살면 힘들 수밖에 없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을 모르고

흐름에 역행하면 힘만 들고 효과는 적듯이.

세상의 법칙과 도리를 먼저 알려고 노력해라.

그 다음 너의 길을 고민해도 늦지 않다.

너는 아직 모른다. 성급한 결론은 절대 금물이다.

 

돈 되는 자격증 하나 따는 것도 몇 년을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데,

하물며 가장 중요한 인생의 자격증이 그렇게 쉽게 얻어질 수 있겠는가?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도 모른다.

내가 너보다 덜 괴롭게 사는 것은

모른다는 것을 좀 더 빨리, 뼈저리게 이해한 것이다.

인생의 성패여부는 이것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 법상스님 ---

 

 

 

 

 

 

 

 

 

반응형

'향기로운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연 앞에서 / 법정스님  (0) 2022.07.07
살 구  (0) 2022.07.06
혼자 걸어라 / 법정스님  (0) 2022.07.05
유서를 남기 듯 / 법정스님  (0) 2022.07.04
공유할 수 있다는 도반이 있는 건  (0) 2022.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