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글

인간과 자연 / 법정스님

덕 산 2022. 5. 16. 11:35

 

 

 

 

 

인간과 자연 

 

1

자연은 스스로를 조절할 뿐 파괴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문명의 인간이 자연을 허물고 더럽힌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도외시한 무절제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인간생활의 원천인 신선한 공기와 맑은 물이

말할 수 없이 오염되어가고 있다.

거대한 물질의 더미에 현혹되어

천혜天惠의 고마운 자연과 환경을 사람의 손으로

파괴하고 있는 것이 어리석은 오늘의 현실이다.

 

자연은 우리 인간에게 아득한 옛적부터

많은 것을 아낌없이 무상으로 베풀어오고 있다.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 밝고 따뜻한 햇살과

천연의 생수와 강물, 침묵에 잠긴 고요,

별이 빛나는 밤하늘, 논밭의 기름진 흙,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

사랑스럽게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 그리고 생기에 넘치는 숲…….

온종일 주워섬긴다 할지라도 자연의 혜택을 말로는 다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자연의 은혜에 대해서

우리들 인간의 대부분은

감사할 줄을 모르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우리 곁에 이런 자연의 은혜가 없다면

잠시도 살아갈 수 없는 처지인데도,

현대인들은 고마운 자연 앞에 너무도 무감각하다.

그저 많은 것을 차지하면서 편리하게만 살려고 하는

약삭빠르고 탐욕스런 현대인들은, 혹심하게 빼앗겨 앓고 있는

자연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한다.

인간과 자연은

빼앗고 빼앗기는 약탈과 주종의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연은 인간에게 있어서 원천적인 삶의 터전이고 배경이다.

문명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하나의 도구이고 수단이지 최후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자연과 인간은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로 회복되어야 한다.

파괴되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자연 안에서만

우리들 인간도 덜 황폐되고 덜 오염되어,

인간 본래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은 지치고 상처받은 인생이 기대고 쉬면서

위로받을 유일한 휴식의 공간이다.

우리가 살 만큼 살다가 죽은 후

차디찬 시신이 되어 묻히거나 한줌의 재로 뿌려질 곳도 또한

이 자연임을 명심해야 한다.

 

20세기 후반기에 들어서

자연의 훼손과 환경의 오염이 날로 격심해져

우리들 삶의 터전이 전에 없이 위협받고 있는 현실이다.

인류의 미래를 염려하는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우리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1971년에 발표되어 우리를 놀라게 했던 ‘로마클럽 보고서’는

현대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예리하게 지적한바 있다.

핵전쟁의 공포와 함께 인구와 식량의 문제,

공업화에 따른 빈부의 격차, 자원의 고갈, 환경오염 등의 문제는

인류의 미래를 어둡고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은 사람과 사람사이가 소원해지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파괴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평화의 이름 아래 오늘의 세계가 지구상의 생명들을 모조리,

그것도 수십 차례에 걸쳐 죽이고도 남을

가공할 양의 핵폭탄을 만들어 저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과 인간 사이가 얼마나 멀어져 있는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불행한 현실이다.

그리고 우리의 산과 바다와 강과 토지와 대기가

심각하게 오염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크게 잘못되어 있다는 뚜렷한 증거다.

인류의 화합과 전진을 다짐하는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이런 국제학술회의를 갖게 된 것도,

인류의 당면과제를 극복하려는 데에 그 의미가 있을 것이다.

 

 

 

 

 

 

 

2

자연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물질적인 또는

정신적인 필수 불가결한 수많은 것들을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무상으로 제공해주고 있다.

마치 인자한 어머니가 어린 자식에게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풀어주듯이 그렇게 준다.

이와 같은 자연의 선물을 받아서 제대로 적절히 사용하면

인간의 생활에 빛이 나고 유익하다.

그러나 그 선물을 과용하거나 잘못 사용하면

거기에 상응한 배은망덕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지구가 지니고 있는 핵연료는

인간끼리의 살상이나 지구의 파멸을 위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간이 개발한 핵무기 앞에

인류의 생존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이 모순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석탄이나 석유와 같은 화석 연료를 지나치게 소비함으로써,

인간이 잘 살게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존에 위협을 받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연료의 지나친 소비는 지구를

하나의 커다란 온실로 만들게 된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전문가들에 의해 조사 보고되고 있다.

그 결과 극심한 가뭄으로 가축들의 생존에 대한

위협과 농산물의 감소를 예고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킨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에 대한 대가의 지불이며 경고다.

자식이 ‘어머니’의 은혜와 제 분수를 모르고

너무 오만해진 데서 온 인과응보다.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하고, 넘치는 것은 덜 참만 못하다.

적은 것일수록 더욱 사랑할 수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말한

영국의 경제학자 E. F. 슈마허가 지적했듯이,

무한한 성장은 유한한 세계에 적합하지 않다.

 

 

 

 

 

 

3

자연은 우리 인간에게 영원한 모성일 뿐 아니라 위대한 교사다.

자연에는 그 나름의 뚜렷한 질서가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계절의 질서가 있고,

뿌려서 가꾼 대로 거두는 수확의 질서가 있다.

가뭄이 심하면 비를 내려 해갈시키고,

홍수가 나면 비를 멎게 하여 날이든다.

바람을 일으켜 갇혀 있는 것을 풀어주고

낡은 것을 떨어뜨리며, 끊임없이 흐르게 하여 부패를 막는다.

밝은 낮에 일하면서 쌓인 피로를 덜어주기 위해

어둠이 내려 쉬도록 해준다.

이와 같은 자연의 질서에 우리들 인간은 순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서 우리 삶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

되도록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익혀야 한다.

자연스러운 것이 바로 건강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나무와 물과 흙과 바위로 이루어진

단순한 유기체가 아니다.

그것은 커다란 생명체이며 시들지 않는 영원한 품 속이다.

자연에는 꽃이 피고 지는 자연현상만이 아니라,

거기에는 시가 있고 음악이 있고 침묵이 있고

사상이 있고 종교가 있다.

인류 역사상 위대한 사상이나 종교는

벽돌과 시멘트로 쌓아올린 교실에서가 아니라,

때 묻지 않은 대자연 속에서

움트고 자랐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나무들이 청청한 가지를 펼치고 있는 숲 속에서,

시작도 끝도 없이 도도히 흐르는 강변에서,

또는 밤과 낮의기온차가 심한 침묵의 사막에서

위대한 사상과 종교가 움트게 됐다는 사실은,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육신에 탈이 나거나 병이 들면 병원을 찾아가 치료를 받지만,

영혼이 지쳐 있거나 병들어 있을 때는

병원을 찾아가도 쉽게 낫지 못한다.

어린애가 엄마의 품을 찾아가듯이 자연의 품속에 안겨,

자연의 소리를 듣고 그 질서를 우리 것으로 받아들일 때에

다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앓고 있는 정신질환인 노이로제는

약물 치료로는 나을 수 없는 문명의 병이다.

자연과 더불어 가장 자연스러운 생활을 통해서만

정신 상태는 자연스럽게 제 기능을 하게 된다.

대지와 수목과 화초와 물을 가까이하면

사람의 정신상태가 지극히 평온해진다.

조급히 서둘 필요도 없이 질서정연한 생명의 바다에서

헤엄을 치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가를 스스로 알아차리게 될것이다.

 

자연은 말없이 우리에게 많은 깨우침을 준다.

자연 앞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얄팍한 지식 같은 것은 접어두어야 한다.

그리고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그래야 침묵 속에서 ‘우주의 언어’를 들을 수 있다.

이 침묵 속에서 창조의 비밀과 사랑의 신비를 캐낼 수 있다.

하나의 씨앗이 대지에 묻혀 움이 트고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의

그런 인내와 침묵이 자연 속에서는 절대로 필요하다.

왜냐하면 자연 자체가 원초적인 침묵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실체를 인식하려면 무엇보다도 침묵이 전제되어야 한다.

태초에 말씀이 있기 이전에

무거운 침묵이 있었음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침묵이야말로 자연의 말이고 우주의 언어다.

뛰어난 사상과 위대한 종교는 가지에서

또 다른 가지를 치는 시끄러운 언어에서가 아니라,

자연의 침묵에서 싹텄다는 사실도 우리는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사막의 교부들이나 불교의 선사들이

우주의 언어인 이 침묵 속에서 성장하면서 거듭나게 됐다는 사실은,

말을 참지 못하는 현대의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침묵의 의미를 배워야 한다.

그리하여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 법정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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