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보며

덕 산 2020. 10. 7. 13:37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보며

 

김홍우 2020-10-07 04:52:53

 

제 나이가 이제는 환갑 진갑을 다 지났지만 지금도 ‘이순신장군’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초등학교 때 오스카극장으로 학교 단체관람을 가서 본 흑백영화 “이순신과 거북선”(?)이며 왜적을 물리치는 영화 속 해전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시절이 시절이었던지라 특수 촬영 같은 것은 언감생심이었고 그래서 조그마한 배들과 거북선을 만들어서 풀장인지 연못인지 같은 곳에다가 띄워놓고 촬영을 한 모양이 어린 저의 눈에도 역력히 드러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는 시간만큼은 애국심(!)이 충만하여 이순신 장군과 병졸들이 왜군을 물리칠 때마다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는데 지금은 다시 볼 수 없는 추억의 장면이 되어 버렸지요. 그때 사람들이 지금 사람들보다 더 애국심이 뜨거웠는가.. 요새는 그런 장면에서도 박수소리라고는 없으니..

 

 

모르기는 해도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은 우리나라 역사 인물들 중에서 가장 존경받고 추앙받는 두 인물들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우리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그곳에서도 가장 우리 도심의 얼굴 격으로 세계에 또 뉴스 때마다 화면에 등장하는 것으로 소개되고 있는 세종로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두 명의 동상도 역시 이순신과 세종대왕입니다.

 

 

“근데 왜 세종대왕 동상은 어디를 가나 늘 앉아있는데 이순신 장군 동상은 항상 서 있어요?”

 

 

언젠가 갑작스러운 아이의 물음에 약간 당황한 저는 그래도 어린 아이의 물음에 ‘모른다’고 대답할 수 없어서 “그야 뭐.. 세종대왕은 늘 신하 된 이들과 국사를 의논하여야 했기에 앉아있었고.. 이순신 장군은 늘 왜적과의 싸움에 임하여야 했고 또 그럴 태세를 갖추어야 했기에 앉아있을 겨를이 없었던 것이지..” 라고 엉겁결에 대답은 해 주었고 아이는 긍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잘 해준 대답인지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또 정말 이순신 장군 동상은 모두 다 서있는 모양을 만들어 져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이순신 장군은 1545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활쏘기를 좋아했던 그는 28세 때 무과(武科)에 응시했지만, 시험을 보던 중 타고 달리던 말이 거꾸로 넘어지는 사고가 일어나 낙방을 했다고 당시의 기록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을 찾아보면

 

 

 

하지만 4년 뒤 다시 도전한 무과에 합격한 후 여러 변경 지역의 장수와 정읍 현감을 거쳐 유성룡의 추천으로 전라 좌수사에 임명되었고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전라 좌수사로 있던 때에 이순신은 1592년 5월 옥포 해전을 첫 승리로 이끌었으며 이어 사천 당항포 한산도 부산포 해전 등을 모두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이순신은 당대에는 죽음으로써 나라를 구하였고, 사후(死後)에는 그 정신으로써 민족의 나아갈 길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해전사연구가(海戰史硏究家)이며 이순신을 연구한 발라드(G. A. Ballard) 제독은 이순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하였습니다.

 

 

 

 

 

“이순신 제독은 서양 사학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순신의 눈부신 업적은 이순신으로 하여금 넉넉히 위대한 해군사령관 가운데서도 뛰어난 위치를 차지하게 하였다. 이순신은 전략적 상황을 널리 파악하고, 해군전술의 비상한 기술을 가지고 전쟁의 유일한 참정신인 불굴의 공격원칙에 의하여 항상 고무된 통솔정신을 겸비하고 있었다. 어떠한 전투에서도 이순신이 참가하기만 하면 승리는 항상 결정된 것과 같았다. 이순신의 물불을 가리지 않는 맹렬한 공격은 절대로 맹목적인 모험이 아니었다. 이순신은 싸움이 벌어지면 강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나, 승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신중을 기하는 점에 있어서는 넬슨(Nelson)과 공통된 점이 있었다.……중략……

 

 

영국 사람으로서는 넬슨과 어깨를 견줄 해군영웅이 또 있다는 것을 시인하기란 항상 어렵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인정할 만한 인물이 있다면 이순신은 한 번도 패배한 일이 없고 전투 중에 전사한 이 위대한 동양의 해군사령관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것이다”라고 평하였다. (펌)

 

 

이순신은 서양나라 특히 막강 해군으로 ‘해가지지 않는 나라’를 만들었던 영국에서도 자기나라의 입지전적 해군영웅 넬슨제독과 함께 이순신장군을 ‘역사상 최고의 해군장수’이며 ‘전략가’로 꼽으면서 해군사관학교 교과과목 부동의 기림 영웅 인물로 자리매김 되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넬슨 제독’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그 역시 과연 그 혁혁한 전과(戰果) 전공(戰功)은 과연 ‘영국의 이순신’으로서 참 대단한 인물이었군요. 그래서 그렇게 받듦의 인물이 되었던 것이고..

 

 

그런데 제 생각에는 자존심 강한 영국 사람들이 그렇듯 너무나도 훌륭하고 위대했던 자국의 넬슨 장군을 기리면서 아마도 ‘세상에 넬슨과 견줄만한 해군 장수는 없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그러한 넬슨장군의 위대함을 더욱 확인하고 그 위상의 자리를 견고하게 하고자 할 때에 그와 비슷한 위치에 있었던 다른 나라 해군 장수들의 모습들을 찾아보았을 것 같고.. 그때 저 동양의 작은 나라 코리아에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에 넬슨에 버금간다고 생각되는 ‘이순신’이라는 이름을 찾아내게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또 찾아내서 연구하여 보니 너무나도 위대한 업적을 쌓은 장군이었고.. 그래서 그렇듯 넬슨과 쌍벽의 자리를 내어 준 것이 아니겠는가.. 허허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

 

 

아무튼 ‘이순신’이라고 하는 장군이 세계 해전(海戰)사에 빛나며 저렇듯 용장한 모습으로 장칼을 잡고 도심 가운데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 자랑스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합니다. 자랑스러운 것은 물론 저러한 세계적 인물이 나와 같은 우리 한국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부끄러운 것은 그 이후에 반천 년이 넘도록 저러한 인물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임진왜란 버금가는 모양으로 매일 같이 싸우고 있는 각 당들 속의 우리들이 뽑은 대표들의 이전투구(田鬪狗) 정쟁모습.. 이순신 같은 사람이 나와서 정치의 철갑 거북선을 타고 와르르 평정시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겨나는 때입니다. 쯧.

 

 

- 산골어부 2020107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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