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쥐뿔도 없으면서

덕 산 2020. 2. 3. 10:24

 

 

 

 

 

 

 

 

김홍우(khw***) 2020-01-29 12:31:09

 

쥐뿔도 없으면서 무슨 대단한 것이라도 있는 것처럼 폼 잡지 말고,

엄청 쌓아놓고 있으면서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궁상떨지도 마라.”

 

언젠가 제 오랜 친구 아무개가 한 말인데 지금까지도 미소를 떠 올리며 곱씹어 보게 됩니다. 허허 먼저는

쥐뿔도 없으면서라는 말에서의 쥐뿔은 아주 보잘것없거나 규모가 작은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사전에서는 설명하고 있는데 왜 정작 쥐뿔이라는 비유표현이 생겨난 연유에 대하여서는 설명이 없군요.

아마도 생각해 보건대 작은 쥐와 그 머리에 뿔이 있은들.. 하는 무시의 마음에서 그러한 비유 표현이 생겨난 것 같은데..

그 보다도 훨씬 작고 적은 것 들은 얼마든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필 쥐의 머리에뿔을 달아놓는 추상의

모양으로 그 크기와 가치 등을 뭉뚱그려 보는 비아냥이 나오게 된 것일까.. 예를 들면 개미 더듬이라든가

무당벌레 뒷다리라는 현실 속 실상의 표현들을 놔두고서 말이지요.

 

인터넷 등을 둘러보면 거기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거다싶은 정답(!)을 찾기 힘들군요.

물론 그러한 여러 전래 속설의 모양들 속에 쥐뿔을 태동케 한 모체가 되는 것이 없지 않아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라고 하는 동물이 항시 사람들과 가까이에서 대치국면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쉽게 보여 지는

동물이라는 점과 눈앞에서 쥐구멍을 들락거리기는 하지만 쉽게 잡히지는 않는 것 그리고 사람을 화들짝 놀래게 하며

여기저기를 갉아 놓아 못쓰게 만들기도 하고 또 음식물에 접근하여 더럽혀 놓기도 하는 등 미운 털모양의 행보에

대한 원망과 미움 그러나 또한 한편으로는 그러한 생존의 능력을 일편 평가하여주는 나름 인정의 상찬 모양으로

쥐의 머리에 을 달아 이야기 한 것이 이렇듯 속담의 모양으로 내려오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여 봅니다.

 

그래서 쥐뿔이라는 단어 속에는 단순히 작고 적고 보잘 것 없는이라는 뜻에 머무르지 않고 작고 적지만 자존심이

걸려있는이라는 의미에 까지 로도 확대할 수 있는 것이지요. , “쥐뿔도 없다.”라는 말은 가지거나 갖추고 있는 것은

물론 없지만 거기에 대하여 그래도 마지막까지 남아 있어야 할 자존심의 작은 조각마저도 손에 쥔 것이 없는 형편과

모양의 현재를 일컫는 말이라 할 것입니다. 다른 표현을 가져 온다면 참새도 죽을 때는 짹 한다라는 말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마지막 몸부림으로서의 거부이며 자기 방어적 최후 표현인 짹 소리를 지를 만한 기운조차도 없다는

모양으로서의 형편과 처지를 일컫는 것이 아니겠는가 합니다.

 

 

만약 실제로 쥐의 머리에 작은 뿔이 지금이라도 갑자기 생겨난다면 그 용도는 무엇이 되겠고 쥐들은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까.. 적을 들이 받는 무기로? 그러기에는 너무 작고 또 쥐의 체형이나 습성이 도망가고 달아나

숨기에는 적합하지만 누군가를 상대하여 덤벼들며 들이받는 모양은 상상하기 힘든데 그래서 생각해 보면 그 이라

하는 것은 그렇듯 날마다 쥐구멍을 들락거리며 기회만 있으면 자신들을 가차 없이 때려잡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위험과 위협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쥐에게 그 버팀과 생존투쟁의 모양을 인정하여 관()을 씌워 준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미움이 사랑으로 바뀐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래서 쥐뿔도 없다라는 말은 가진 것은 물론 가진 것도 내 세울 것도 하나 없다라는 말이 된다고 할 것인데

만일 이 즈음에서 만약 당신이 누군가의 얼굴을 특정하여 떠올린다면 그것은 잘 못입니다. 왜냐하면 그렇듯 쥐뿔도

없는 모양은 누구랄 것도 없이 우리 모두의 모양이기 때문입니다. 더 쉽게 말하자면 지금 내가 무엇을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언제까지가지고 있을 것인지 또 그것으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를 돌아본다면 그것이 바로

나의 쥐뿔인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칭찬은커녕 멸시를 받으면서도 마치 쥐구멍을 들락거리기를 계속하는 것처럼 이어가는 생존으로서의 삶..

그리고 언제 불시에 몽둥이세례를 받게 될지.. ‘쥐잡이 틀같은 것에 잡히거나 갇히게 될지 모르는 상황들을 이리

저리 피하면서 가까스로 나의 삶을 이어가는 공로를 인정하여 내 머리에 씌워진 관.. 쥐뿔.. 이라는 비관적 표현에는

손사래를 치는 이들이 많이 있겠지만 가만히 지혜로 돌아보면.. 불과 1시간 뒤의 나의 생존과 생활에 대한 정답이나

확답을 가질 수 없는 우리들의 현재이고 당면한 처지인 것에 대하여 몸부림은 물론 발버둥도 겸하여 열심히 치고

있지만 더 나아지지도 또 나아질 것도 궁극적으로는 없는 삶..

 

 

그래서 작은 쥐구멍으로의 연일 분주히 들락거림의 모양.. 그 속에서 히히웃는 날이 있기는 하지만 꺼이꺼이

슬퍼하며 괴로워하는 날이 더욱 많고.. 늘 나를 둘러싸는 거대한 불안과 근심에 틀 안에 갇힌 모양으로서의 자유롭지

못하고 각종 제한으로 오늘도 압박과 위협을 받고 있는 나의 연약함.. 나의 병들어가는 육체..를 생각하여 본다면

우리 자신들의 쥐뿔도 없는 현재를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상기한 친구의 말 중에서처럼 엄청 쌓아놓고 있으면서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궁상을 떠는사람도 역시 과연

쥐뿔도 없는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내 주머니에 단돈 100원을 가진 사람이나 일금 천만 원을 가진 사람이나 그것을

 쓰지 않고 있는 현재로보아서는 두 사람의 차이나 구분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마음의 여유들을 이야기

하지만 무엇 하나라도 장담하거나 거기에 맞추어서 해 낼 수 없는 사람의 무능력 그리고 그러한 형편과 처지에

자신이 서 있음을 깨닫는 사람이 아니라면 오히려 천만 원을 가진 자의 삶이 더욱 어렵고 힘들며 곤궁하여 질뿐입니다.

, 100원을 가진 사람은 그것이 없어졌을 때의 염려와 근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지만 천만 원을 가진 사람을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곧 소유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결코 존재로 나아갈 수 없기에 에리히 프롬 같은 사람은 소유냐 존재냐

To have or To be?”하는 물음을 자칫 어리석음으로 치닫기 쉬운 현대인들의 자각을 일깨우기 위하여 던졌던 것이지요..

그래요.. 지금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쥐뿔의 관을 쓰고쥐구멍 속을 호령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혹 그렇다면

또 여전히 계속 그렇게 하겠습니까? 아니면 어차피 가치랄 것이 없는 그 모든 쥐뿔들을 다 내려놓고 세상의 창조주이며

주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나의 삶을 맡기고 아무 것도 염려 근심 걱정 할 것이 없는

평안의 삶으로나아가시겠습니까.. 지금 당신의 현명한 결정이 기다려집니다.

- 산골어부 2020129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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