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우(khw***) 2020-01-28 11:58:37
그러고 보니.. “달과 해”라는 순서의 말은 거의 들어보지 못한 것 같은데.. 그렇게 쓰인 글도 역시 그렇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해’를 먼저 말하고 앞에 두는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인데 왜 그럴까요. 해가 달보다 크고 밝아서?
모든 동식물의 생존에 절대영향을 끼침으로? 물론 그 모두가 정답 쪽으로 포함되는 요소들이라고 할 수 있기는 하여도
저는 그 보다는 ‘우리 인간들이 움직이는 시간 내내 그렇게 움직일 수 있도록 사방을 환하게 밝혀주기 때문’
즉 낮과 밤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환한 때가 낮이고 어두운 때가 밤이라고 한다면 태양이 낮을 만들어 준다고 하는 개념은 맞는 것이겠지만 태양이
진다고 하여도 ‘어둠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지요. 왜냐하면 ‘밝음’ 그 자체가 어두움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고
다만 ‘그 자리’에 있지 아니함으로 그 밝던 자리가 어두워지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태양이 있으면 낮,
없으면 밤 이렇게 구분을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광의로 보아 사람들은 거의 모두 ‘낮’에 움직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움직이는 동물이고 그 ‘움직임이 곧 살아있는 존재 증명’이 됩니다. 물론 소 돼지 닭들도 다 움직이고
자신의 살아있음 곧 생명 있음을 움직임으로 증거 하기는 합니다만 이 둘의 차이점은 명백하여 곧 짐승들은 ‘오직
자연에 의지하여’자연이 주는 것을 먹고 살아가지만 사람은 ‘자연을 이용하며’ 살아간다고 하는 차이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짐승들은 자연에서 먹을 것을 ‘얻어먹지만’ 인간은 ‘만들어 먹는다’라는 것이지요.
물론 소급하여 올라가면 모두가 다 자연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얻는 과정으로 볼 때에
짐승들은 ‘단순노동’을 하는 것이고 인간은 ‘복잡노동’을 하는 것이라고 구분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짐승들은
‘생존’이 그 움직임의 목적이 되지만 인간은 ‘생활’이 그렇다고 하는 것인데 한 번 더 중복 하자면 짐승들은 ‘살아남기 위해’
먹지만 인간은 ‘사는 모양을 위해’먹는다고 하는 것이 다르며 이것이 인간과 짐승의 구분선이 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혹독한 가난과 궁핍함에 맞서 어렵고 힘들게 싸우면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는 이들이 지금도 여전히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마저도 입으로 들어가는 것 외에 두 눈에 보이는 것, 만져지는 것, 가져야 할 것, 갖추어야 할 것, 올라야 할 것
그리고 점령하여야 할 것들을 늘 찾는 모습에 있어서는 다른 이들과 한 결 같고 현재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 사람들의 삶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성도들이 많이 부르는 복음성가 중에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이라는 제목을 가진 노래가 있습니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라는 가사가 초반부 노랫말로 되어 있지요 즉, 낮이든 밤이든 언제든지 ‘세상을 비추는 밝고 환한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권면하고 종용하는 노래입니다. 밝은 대낮에도 어두운 밤에도 그 세상을 향한 유익의 뚜렷함을 선명함으로 보여주는
모습을 누구나 다 자신의 인생의 지표(指標)로 삼아야 한다는 것에 다름이 아니지요. 즉, 주변을 어둡게 우울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들어 말하고 있는 것인데 물론 이 노래는 복음성가인 만큼 그 원동력을
‘예수님의 은혜와 말씀’에서 찾고 확신하며 기초석의 모양을 삼고는 있지만 혹 진리와 복음에 익숙지 않은 일반적
보편 개념으로도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이라는 제목이 무엇을 뜻하고 의미하며 나타내고 있는 것인지를
모를 만큼 둔한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불리어지면서 한 세대의 세월을 가뿐히 넘어서는 장수의 모양을 보여주고 있는 이 오랜 복음성가는
그래서 들을 때마다 ‘세월 속 나의 자리’를 돌아보게 됩니다.. 여기에서 처음의 문맥으로 돌아가서 ‘해와 달’개념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해 곧 태양의 시간이란 ‘한창 때’로 그 의미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고 보편 개념입니다. 또 달의
시간이란 이제는 –혹 손사래를 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 ‘뜨거운 기운’의 때를 넘긴 이들 곧 늙음의 초입부터
노년의 삶의 마름의 시간까지로 의미를 두어 생각해 봅니다.
누구나 좋아하고 기쁘고 즐거운 모습으로 주어진 바를 누리며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젊은 날 곧 태양의 시간들 속에서
나는 과연 온전하고 완전한 태양의 모양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줄기 ‘태양빛’과도 같은 삶의 시간을 살고 있는지 또
살아왔는지를 저 같은 나이의 사람은 ‘돌아보게’ 되지요.. 누군가에게 빛이 되어주는 삶.. 으로서의 인생을 사람들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있는 반면에 날마다 주변을 어둡게 하고 우울하게 하고 슬프게 하며 안타까운 것을
만들어주는 사람들은 애써 찾고 헤아릴 필요도 없이 ‘무수히’ 많은 것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쯧, 그리고 이러한
모습과 모양은 지금까지의 각 시대와 세대 속 마다에서도 그래왔지만 또한 앞으로도 역시 그러할 것입니다.
젊은 날을 ‘낮’으로 늙은 날을 ‘밤’으로 쉽게 양분해 버리는 것은 너무나도 단순한 도식의 구분 모양이 될 수도 있겠지만..
만약 지금 당신이 늙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습니다. 틀리는 도식도 아니라는 것이 증명 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확실히 사람들은 너 나 없이 젊은 날과 늙은 날의 가치를 전혀 다르게 구분하면서 언제까지라도 ‘젊은 날들’
속에 머물러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렇듯 원대로 되어 진 경우와 예는 선사 속에서도 역사 속에서도 단 하나도 예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여전히..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젊은 날, 젊은이로 지냈던 푸른 청년의 때를 항상..
죽을 때까지도 그리워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최대한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후회하고 뉘우칠’일이 없는 날들을 ‘낮에나 밤에나’ 지내야 하는데
곧 햇빛의 모양으로든 달빛의 모양으로든 그 ‘빛’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으로서 청년의 때나 노인의 때에나 한 결
같이 내 곁에 내 주변의 누구에겐가 그 어두운 자리를 밝혀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또 그러한 것이 바로
다가올 만년에 즐거움과 기쁨을 더욱 마련하여 놓고 채우는 일이 되는 것이며 그러한 ‘선한 열매의 추억’이 없이
지내야만 하는 노년이라고 하는 것은 과연 저 아래 깊은 밑바닥 음부의 어두운 곳에 누워있는 모습이라고도
비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당신은 태양의 시절을 지내고 있습니까? 달의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까.. 지금 태양 빛을 뿜뿜 힘차게 뿜어내는
때를 나의 시절로 지내고 있다면 진심으로 축하하고 더 축복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저 같은 경우를 돌아보면서입니다..
크게 악한 짓을 하면서 악당으로 살아 온 것은 아니지만 선한 열매를 많이 맺지도 많이 마련해 두지도 못했던 것이
결국 결과적으로는 ‘뉘우치고 후회할 것 투성이’의 삶의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나..
이미 늦은 것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밤의 시간’이라 할 수 있는 지금이라도 ‘달의 모양으로’ 비록 해처럼 밝고 뜨거운 빛을 뿜뿜 내어 뿜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이렇듯 어두운 중에서도 누군가 고개를 들어 올려 바라보며 길을 찾는 이들을 위하여 비록 그 모양이
‘빛의 그림자’와 같은 약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다른 어두운 것들과는 선명하게 구분 되는 ‘작은 빛’의 존재로
살아가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보름달의 모양으로 태양 빛에 버금가려는 모양으로 환한
빛을 내기도 하지만 또 어떤 때는 이리 채이고 저리 점령당하는 모습으로 초승달의 모양이 되어버리기도 하지만
끝내 그 빛의 모양을 아주 잊어버리는 모습이 되어버리지 않도록 나의 작은 빛이 지만 그것을 지켜낸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만년과 노년의 나의 행복은 밝고 명랑합니다.
지금 당신의 자리는 어디에 무엇에 기초하며 넓게 펴져 있습니까.. 한 창 때로서 ‘태양의 시절’을 지내고 있다면 그러나
불원간에 내 앞에 놓이게 될 갈림의 모양을 늘 염두에 두면서 자기 다짐과 결심을 더 하며 기도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 지금 ‘달의 시절’을 지내고 있다면 더욱 불원간에 다가올 나의 마름의 날 마침의 날에 받을 상급을 이와 같이
‘세상을 비추는 빛의 모습으로’ 예비하여 놓는 믿음의 지혜로운 이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 산골어부 2020128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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