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고동색 바나나 소회

덕 산 2020. 1. 22. 10:49

 

 

 

 

 

 

 

 

 

김홍우(khw***) 2020-01-21 21:27:18

 

 

바나나.. 참 여러 추억이 깃들어져 있는 이름이지요.. 저 어렸을 적.. 그러니까 1960 년대 중반까지만 하여도

바나나는 그림책에서 만 볼 수 있었는데 그 노랗고 길쭉길쭉한데다가 커다란 다발로 이루어져 있는 것 자체가

그야말로 몽환적이었는데 또 맛 또한 그렇게 좋다고 하니.. 꿀꺽 먹어보고 싶어서 침은 삼켜보지만 그때까지만

하여도 바나나를 실제로 본 적도 없었고 백화점 같은 곳을 가면 거기에 고이 잘 모셔 놓고판다고 하는

이야기들만을 전설처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즈음의 아동 만화가들 중에 토니장이라는 분이 계셨고 그 분의 만화 중에 열대 밀림에서 벌어지던

주인공과 악당 무리들과의 액션활극이 있었는데 거기에 악당두목의 동생으로 나오는 악당이 처음 밀림에 와서

바나나를 맛보게 되었고 그 맛에 반하여서 늘 부하들에게 바나나를 따오게 하여 시도 때도 없이 껍질을 네 줄로

쭉쭉 벗겨 놓고는 밑 꼭지를 꾹! 눌러서 바나나가 공중으로 붕 뜨면 입을 아 벌려 받아먹곤 하는 장면이 벌써

55년 전 즈음인데도 바로 어제 양지 시장통 두꺼비 만화가게에 앉아서 보았던 것처럼 생생히 기억이 나고 있으니

이것도 무슨 병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려나 또 그 악당 동생이 그렇게 바나나를 수시로 공중에 띄웠다가 받아먹기를 거듭하면서 노래하듯 하던

말이 있는데 우히히 바나나 바나나~ 으히히 반나나 반나나~”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저는 정말 바나나가 그렇게

맛있나하면서도 그 만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함으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마는 아마 저는 그때까지도 먹어보지

못한 바나나를 생각하면서 침을 꿀꺽 삼키곤 하였을 것입니다. .. 그때 토니장님의 만화를 많이 즐겨 보았는데

손오공 같은 주인공들이 생각납니다. 혹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계시기는 하신 것인지 궁금해지는군요..

 

그러다가 결국 언젠가 엄마 따라 나섰던 신당동 중앙시장 도로변에서 그 바나나를 직접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노랗고 길쭉한 바나나는 웬걸.. 노란색이라고는 거의 없는 고동색 바나나를 보게 된 것이지요.

길옆에 놓아둔 나무 상자 위에 한 개 혹은 두 개씩의 구분 되어 놓여 있는 것이었는데 어린 제가 보기에도 색깔이 영..

 

엄마, 저게 바나나야?”

? 어디? 그래 맞다 근데 너무 오래 돼서 색깔이 저렇게 됐구나..”

 

엄마를 따라 시장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그 고동색 바나나에 꽂혀져 있었기는 했지만 어쩐지

맛있을 것 같다는 인상도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던 것을 보면 제 마음 속에 있던 꿈의 열매 바나나

대한 이상이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토니장 아저씨의 그러한 바나나 예찬(!) 장면에도

애써 실어보았던 8살 정도 즈음의 어린아이의 바나나 꿈은 그것으로 끝나버렸습니다.

 

 

 

 

 

 

그 뒤에 한 1년 쯤 더 지나던 어느 날인가 우리 집에 손님으로 오신 아버지 친구 분이 바나나를 사가지고 오셔서

그때 처음 그리고 기어코 그림책에 나온 것처럼 노란색으로 길쭉한 오리지널 바나나를 먹어보았습니다.

물론 참 맛있었는데 그래도 그때 그 시장통 길거리에서 사과궤짝에 서너 개를 올려져 있던 고동색 바나나와

그것을 파시던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이 이제는 잊어버릴 때도 되었건만 지금도 가끔씩 떠올려지곤 합니다..

.. 너나없이 가난했던 시절 속에 역시 그렇듯 가난한 모양으로의바나나에 대한 기억입니다.

 

그렇던 바나나가 아마도 농산물 수입자유화가 이루어지던 때 이었던가 마치 물 밀 듯 마구 쏟아져(!) 들어오면서

장수들이 리어카에다가 잔뜩 싣고 다니며 큰 다발을 작은 다발로 뚝뚝 잘라 팔던 때가 있었고.. 그렇게 한 동안

인기를 끌면서 우리나라 제주도에도 바나나 농장을 만들었다는 둥 바나나 선풍으로 한 동안 요란 하더니만 또

그렇게 몇 년쯤 지나면서 시들해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그냥 저냥 일정 바나나 소비 팬들이 사다가 먹는 정도의

수입 과일이 되어버렸지요. 그 비슷한 모양으로 파인애플이 그랬고.. 오렌지 자몽 등이 그러하더니만 이제는

또 망고가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사람의 입맛이란..

 

그런데 이제야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그렇다면 그 고동색 바나나는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들여온 것이었을까..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빛바랜 모양은 아니었겠지만 수입자유화의 시대도 아니었고.. 이렇게 저렇게 그 내력을

찾아보니 역시 미군부대를 통하여서 라는 답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군요.. 그래.. 혹시 그것도 부대 식당 잔반으로

섞여 나왔던 것은 아닐까.. 하게도 되는데 쯧, 그렇지는 않은 것 같고 다만 그렇게 잉여의 모양으로 부대 경내를

돌던 것이 그런 쪽에 재빠른손길들을 통하여서 덤핑의 모양으로 우리나라 시장바닥에까지 나오게 되어서

그렇게 고동색 바나나의 모양으로 사과궤짝 위에 얹혀 놓아져서 시대를 대변하는 얼굴같은 장면들을 연출하게

된 것이라는 씁쓸한 암시를 몇 몇 확인 할 수 없는 자료 속에서 한담처럼 주고받는 이야기들이 전해 주고 있는 정도입니다.

 

.. 지금 이 시대에 나처럼 장터 속 고동색 바나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요즘 제 아내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원주시내로 장을 보러나가곤 하는데 저는 예외 없이 그때마다 운전기사로 불가항력적 택함을 받곤 하지요.

그래서 싫든 좋든 그 물품들을 나르다 보면 그 속에는 가끔씩 바나나도 한 다발씩 들어 있곤 합니다. 그런데 막상

집에 와서도 먹는 경우도 찾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오늘 아침에도 보니까 저기 저 김치냉장고 위에 바나나 열 개

정도가 달린 다발이 예의 그 변색을 알리는 고동색 점들이 많이 박혀있고 서서히 그 옛날 추억의 바나나

색깔로 변해가는 형국입니다.. ..

 

아니, 바나나는 먹지도 않으면서 사다가 저렇게 곯게 놔두나..”

아 그거요.. 어찌어찌 온 것인데 잘 손이 가지를 않네요..”

 

쯧쯧, 그래서 어쩐지 꿀꿀한 마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와서는 책상 앞에 앉을 때까지도 그 옛날의

고동색 바나나의 영상을 어느 한 구석에도 내려놓지 못해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다들 건강하세요.

 

- 산골어부 2020121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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