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기초생활수급자, 기초연금수급자

덕 산 2020. 1. 20. 14:09

 

 

 

 

 

 

 

 

 

김홍우(khw***) 2020-01-19 22:53:03

 

 

엊그제 기초연금수급을 연금공단에 가서 신청하고 돌아오면서

얼마 전 모임에서 제 오랜 친구가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기초연금? 그거 뭐 이것저것 서류를 떼 오라는 것도 있고.. 귀찮아서 그만 뒀다..”

 

그러니까 65세 노인들에게 주는 기초연금을 안 받기로 했다는 것인데 하긴 그 친구는 재산도 좀 있고 사는 형편도

별 어려운 것이 없는 모양이니 혹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저 몇 만 원 정도가 될 것이라고 곁에 있던 또 다른 친구가

말했습니다. 그래.. 아무려나.. 내 오랜 친구들이 지금 그런대로 먹고 살만 한 것 같아서 참 감사한 일이지요.

형편과 처지가 어려워서 친구들에게 손을 벌리곤 한다면 그것도 참 서로에게 곤혹스러운 일이 될 것인데

참 다행이고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그 친구와 같은 나이인데도 기다렸다는 듯이 기초연금을 신청하고 나오는 저 자신을 스스로 볼 때에

왠지 좀 움츠러드는 느낌을 갖게는 됩니다만.. 지금까지 누구에게 손 벌리고 다닌 적이 없고 돈 때문에 누구와

다투거나 싸운 일도 없으니 이 또한 감사 할 일이 아니겠는가..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게 되는군요. 그래요..

부족한 쪽으로 보면 여전히 한 없이 부족하고.. 족한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언제나 차고도 넘쳤으니어느 쪽에

행복이 깃들겠는가 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지요.

 

사람은 한 달에 최소한 얼마가 있어야 살아 갈 수 있어요?”

 

하는 물음을 그리 오래지 않은 전에 누군가로부터 들어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면.. 물론 지금 나라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지급하여 주는 기초생활지원비란 최소한의 삶을 유지시켜주는 것으로서 책정된 액수가

아니겠는가 합니다. 형편에 따라 차등이 있는 모양입니다만, 지금은 약 50~60만 원 정도를 지원 받는 것 같습니다만..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이 생명을 잃지 않는 생존의 모양에 기준을 둔 것인지 아니면 최소한 인간 삶에 필요한

존재의 품격을 갖추고 누릴 수 있는 것을 염두에 두어 책정 된 액수인지 잘 모르겠고..

또 그 액수를 가지고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작년 그러니까 2019년에 보건복지부의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책정하여 발표한 ‘4인 가족 월 최저 생활비

2,768,122 원이라고 합니다. ‘4인 가족이라고는 하지만 아마도 자녀들이 어리거나 배우는 과정의 학생 등으로

수입이 없는 경우 그러니까 아빠 엄마 그리고 미성년 자녀 둘을 기준으로 하는 것에서 틀리지 않을 것 같은데

여기에는 물론 자녀들이 초등학생이냐 대학생이냐 하는 구분과 그 가정이 자가(自家)를 가지고 있느냐 세()

살고 있느냐 하는 것 등등.. 물론 이러한 모든 상황을 어련히 알아서 감안하였겠는가마는 어쩐지 제가 보기에는

4인 가족을 위한 27십만 원이라는 액수는 현실에서는 퍽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주위 주변에서만 하여도 가끔씩 있는 하루 일당벌이 몇 만원을 합쳐서 월 150만원 안팎의 수입을 가지고 살아가는

45인 가정들이 있고 그래서 어렵고 힘든 형편들이기는 하지만.. 그러기에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도 하고 이러한

기초연금 같은 것을 받기도 하여 생활비에 보태고 살림을 꾸려나가는 모습인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기초생활수급비를 받는 사람들이 기초연금도 함께 받을 수 있는 것인지 하는 것입니다.. (혹 아시나요?)

 

만약 그렇다면 매월 100만 원 정도를 국가에서 지원 받는 것이라고 할 것인데 물론 여전히 크거나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혹 아무런 수입이 없는 가정이라고 한다면 또 거기에 지원 되는 여러 가지 이런 저런 빈자를 위한

국가지원을 합하여 생각하여 본다면 그 역시 또 물론 작은 여유도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근근이..’

살아갈 수는 있다고.. 거의 그러한 형태의 지원을 받으며 살아가고 계신 한 어려운 형편의 어르신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얼마 전에 들은 적이 있습니다. (혹시 저의 생각이나 계산법에 틀리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있으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일들은 거의 모든 이들이 일부러 드러내거나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기에 그 당사자 된 누구에게도

구체적으로 물어 본 적도 없고 또 묻기도 힘든 것이라서요..)

 

그렇다면 또 근근이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어떠한 모양이며 어떠한 형태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납니다. “근근이 겨우.

 간신히. ┈•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살아가다.” 라는 국어사전 속 설명입니다. , 좀 막되고 사나운 표현으로 하자면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며모든 것에 절약과 긴축을 더 하며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모습인데 당사자들의 입으로는

죽지 못해 살아가는형편이고 처지라고 말들 하지요. 극단적인 표현이고 자기원망의 소리이기는 하지만 그 말대로

죽지 못해사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생활이라고는 할 수 없고 그저 생존생명의 보전

수준이라는 것과도 같은 말이 될 것입니다.

 

 

 

 

 

 

.. 글쓰기에 서툴러서 글의 전개가 방향을 잃고 이리 대어볼까 저리 대어볼까 기웃거리는 볼 성 사나운 방황의

모양이 되어서 미안합니다만, 그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작금의 시대에 세계 10위권에 다다르는 경제대국

대한민국이라고는 하면서도 그렇듯 가난하고 어려우며 고단하고 힘들게 하루하루를 마치 버티는(!) 모양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우리 곁에 여전히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최소한 인간 비참의 모습을 어떻게든 벗어나게 하고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자국민들이 생존이 아닌 생활의 날들을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기초생활,

기초연금 제도를 만들어 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어떤 이의 조금은 사나운 표현처럼 자꾸만 보태주기만 하면 전 국민이 거지근성을 갖게 된다.”라는 말에도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고 무조건 적인 비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의 목사 된 생각으로는 우리 모두가 부자로

모든 풍성을 함께 누리며 너도 나도 잘 사는 때는 지금도 나중에도 결코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 죄송합니다만,

차라리 오지 않는 것이 더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하여보곤 합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누구를 도울 일도’ ‘나누어 줄 일도’ ‘내 것을 꺼내어 베풀 일도없어지기

때문인데 그러한 세상의 모습은 자칫 누군가를 향한 인정도 사정의 모양도 염두에 둘 필요가 없는 각박함과 메마름의

장면들만이 가득하게 될 것 같아서 혹시라도 그렇게 되는 것보다는 부자가 있고 빈자가 있어서 그 부자가 빈자를 돕는

지금과 같은 (만족스런 모양은 아니지만)모양과 구성이어 존속되는 것이 낫고 그럴 때에 과연 선()이 선()의 모양으로

남게 된다는 것이지요. 물론 부자들이 있어도 빈자를 돕지 않는 만연의 모양이 여전히 차고 넘친다면 그 보다 더

비참하고 끔찍한 모양이 달리 없을 것이지만..

 

세계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미국이라고는 하지만 또한 거지가 가장 많은 나라도 역시 미국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제가

얕게 들은 바로는 미국 거지들은 생존을 위함이 아니라 생활을 위하여 그렇듯 거지 되었다는 말을 듣고 본적이 있는데

그래서이겠지요. 그러한 거지의 모양들도 일종의 직업의 모양으로 취급되어야 한다는 말들도 있고 세금도 거두어야

한다는 말들 역시 있는 것을 보면 쯧쯧, 이 세상의 모순과 억지 그리고 엉뚱함 진행들은 어디에 쯤 가서야 멈출 수 있는

것인지 그 나라의 팝 가수 밥 딜런의 풍자와 각성의 노래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허허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 산골어부 2020119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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