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아름다움을 만드는 작업자

덕 산 2020. 1. 13. 12:11

 

 

 

 

 

 

 

 

 

김홍우(khw***) 2020-01-12 22:31:46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일생동안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이것은 외모 갖춤 등의 외적 미()를 일컫는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어떤 개인적 완성(完成)’에 도달하려는 것으로서 스스로 유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지요.

관계에, 지식에, 연구에, 사업에 그리고 삶에서 유익한 아름다운 결과를 얻고 만족한 결말에 이르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수히 노력하고 수고 하며 땀을 흘립니다. 상기한 이들이 그렇습니다만, 저 같은 경우는 사업 같은 것은

해 본적이 없고 직장생활 또한 약간의 경험만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도 현역 목사인지라 돈 버는 일과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을 하고 있기에 그제 제가 취미로 나마 조금 할 줄 알고 또 지금도 하고 있는 일들의 모양을 통해서

작고 좁게나마 더듬어 보고자 합니다.

 

먼저는 수필 산문 비슷한 것을 취미생활로 긁적거리다 보니 첫 번 째 쓰인 글로 완성되어지는 것이 없더군요..

물론 서툴러서 이겠습니다만 그래서 써놓은 글을 몇 번이고 읽어 보면서 이리저리 수정하고 교정하는 등 윤색하기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맞춤법의 잘 못이라든가 띄어쓰기 같은 것은 물론 눈에 띄는 대로 교정을 하지만 그 내용과 글의

전개 방식에 대하여서는 100% 만족하는 마름으로 땀을 훔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도

내가 왜 이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던고..’하면서 후회하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세익스피어, 괴테, 톨스토이..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글을 쓰는 것일까.. 또한 굳이 외국의

이름들이 아니더라도 최인호, 황석영, 이문열.. 같은 이들도 역시 마찬가지여서 정말 존경과 경외함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샘 솟 듯이 마구 넘쳐 나오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들의 글을 읽고 있자면

그러한 생각들이 일어납니다. 아름답고 훌륭한 글을 쓰려면 필히 배우고 익히고 경험하고 체험하여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러한 글쓰기는 그 소질이 타고나야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할 때마다 이렇듯 그렇게 타고나지 못한

이의 부러움의 한숨과 탄식은 이어집니다.

 

유려()하는 말이 결국은 아름답다라는 표현이라고 할 것인데 과연 그들은 아름다운 글들을 남겼습니다. 물론 그 외에도

수십 수백 명의 이름들을 당장 들 수도 있는데 그렇게 많은 재능인들 사이에 나는 영영 끼어질 수 없는 것일까.. 할 때마다

휴 긴 한숨을 쉬게 됩니다. 허허 언감생심이라더니.. 노력은 하지 않고.. 그 사람들은 그렇듯 좋은 글 아름다운 글을 쓰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수고를 기울이며 땀을 흘렸을까.. 하는 생각을 하여보면 그저 감사하게 되며 그래서

그들이 남긴 인류의 유산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받게 됩니다.

 

저는 중학교 초입쯤에서 다나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이라는 단편을 읽으면서 글의 아름다움이 마음에 들어 왔습니다.

아마도 그 전에 인상 깊게 읽었던 황순원 선생님의 단편 소나기이후로 처음이며 글 곧 문장이라는 것에 강렬하고도 강력한

충격을 받고서 글쓰기 쪽으로 관심을 갖다가 어느 날 어떤 일 중에 국어 선생님으로부터 너 참 글 잘 쓰는구나하는 칭찬을

어쩌다가(!) 한 번 듣고는 갑자기 세익스피어가 된 마음으로 우쭐하여 나는 글 잘 쓰는 사람이라는 자기 최면을 열심히

걸면서 여러 방면에 책들을 별 순서도 체계도 없이 읽기 시작하였는데 물론 백여 권 적은 분량이었지만 그러다 보니까

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오면서 글쓰기의 즐거움이 나에게도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밑바닥을 박박 기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그렇듯 기고 있다라는 것 자체가 이 얼마나 대견 한가 허허. 이러며 살고 있습니다.

 

 

 

 

 

 

또 주로 목사로서 하나님 찬양 기악편곡을 취미로 하고 있는데 누구에게 음악을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고 그저 책 몇 권

사다가 읽은 것이 밑천의 전부이기에 그저 원시적 감각 만을 의지하며 좌충우돌을 거듭하고는 있지만 그렇게나마 오선지

상에서 음표들을 이렇게 저렇게 맞추는 모양으로 끙끙거리며 다루다 보니 휴 이전 대가 작곡가들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우러납니다. .. 어떻게 저런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운 화음을 붙일 수 있으며 어떻게

저런 예쁜 장식음을 만들어 넣을 수 있을까.. 또한 그들 교향곡의 웅대한 구상이나 소나타의 유려한 전개 그리고 작은

소품들의 극한적 아름다움에 취하다 보면 정신을 잃을 지경입니다. 김동진 님의 아름다운 가곡들..

모차르트의 샘솟는 악상.. 베토벤의 심오함 등에서 그렇고 들을 때마다 정말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연주하는 연주자들 성악에 조수미, 바이올린에 하이페츠, 첼로의 요요마 그리고 기타의 존 윌리암스 등의

연주들이 있어서 즐거운 삶의 날들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청소년 시절 중에 함께하시며 좋은 노래들을 들려

주셔던 오현명, 엄정행 같은 분들의 목소리도 늘 그리워집니다. 그래서 또 생각해 봅니다. 참 좋은 목소리들.. 어떻게

그렇게 가질 수 있고 할 수 있었을까.. 또 이전 시대 속의 마리아 앤더슨.. 마하리아 잭슨.. 그리고 마리아 칼라스 같은

이들의 노래도 정말 멋있었지요. 아름다움의 극한 모양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바흐의 샤콘느를 하이페츠의 연주로 들어보면 10번이고 100번이고 듣게 되고.. 푸르트 뱅글러가 지휘한 베토벤 5번은

들을 때마다 듣는 이의 가슴을 역동적으로 두근거리게 하는데 물론 카라얀도 역시 대단하고.. 번스타인도 결코 뒤지지 않지요.. 그렇습니다. 그 분들은 모두 자기 분야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양들을 찾아내고 악보로 남기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언제라도

행복을 안기어 줄 수 있는 보물들을 남겼습니다.

 

그래요.. 이 세상에서 한 평생을 살았으며 내 뒤에 이어지는 후진 후손 들에게 뭔가 유익한 것을 작은 모양의 것이라도

남겨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세익스피어.. 바흐.. 또 에디슨처럼.. 우리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들.. 특히 저는

그 중에서도 그 영혼에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 우선 더 남겨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지금 나의

삶의 지나가는 흔적 속에 무엇을 남기고 있고 또 그렇듯 싫든 좋든 남겨질 것들이 무엇인가를 돌아보는 것이 유익하다는

생각입니다. 각각의 사람들이 있고 자신이 능숙한 분야들이 있어서 많은 것들을 흔적으로 또 유산으로 결과물로

남기고 있는데 그 중에는 더럽고 추한 것을 남기는 이들도 있어서 쯧쯧 하게도 되면서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렇습니다.

우리도 이제 심기일전 하여서 뭔가 아름다운 것을 이 세상 어느 한 귀퉁이에라도 남겨 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크고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좋은 말, 좋은 인상, 좋은 사람이었다는 기억을 누군가의 머릿속에 남기는 것도

참 아름다운 일이지요. 그러한 사랑의 이름, 존경의 이름, 우정의 이름들을 많이 남기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이름들이기에 그러한데 부디 제발 폭력의 이름은 남기지 마세요.. 정복자의 이름도 남기지 마세요.. 미움과

원망의 모양으로 후손들의 입에 담겨지는 이름들 또한 되지도 말고 남기지 마세요.. 그래서 오늘 지금도 나에게 필요한

작업이 바로 아름다움을 만드는 작업이고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 행복하고 또 행복을 뒤이어주는 사람입니다.

 

이것만은 꼭 기억하세요. 누구나 다 위대한 이름을 남길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다 착한 이름만큼은 남길 수 있으며

이러한 사람들의 이름이 그 이어지는 세상을 움직이며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 말입니다. 오늘 지금 나의 아름다운

흔적을 말로 행동으로 또 기꺼이 수고와 땀으로 남기시는 복 있는 이들이 다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산골 어부 2020112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