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우(khw***) 2019-10-29 11:23:00
정답(正答)이란 ‘옳은 답’이라고 사전은 정의하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옳은 답’의 대부분은 자연발생적 진리
시점에서 옳은 것이라기 보다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이것을 옳다고 하자라고 합의 한 결과로서의 ‘옳은 답’입니다.
예를 들면 1+1=? 의 정답은 2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2’를 정답으로 하자는 ‘합의’에서 비롯된 것으로서의
정답일 뿐이지 ‘진리’로서의 정답은 또 다른 모양은 아닐까 하는 것을 생각에 보게 됩니다.
오래전 발명가 에디슨은 어린 시절에 각각 한 덩이씩의 흙덩이를 둘을 한 데 모아 같은 자리에 놓아둔다면
‘2 덩이’가 되지만 그것들을 함께 뭉개어 놓은 다면 두 개의 덩어리가 합쳐져서 ‘1 덩이’가 되기에 정답은 1도
될 수 있다고 하여 선생님을 곤혹스럽게 하였다고 이야기가 내려오지요. 2 라는 정답은 수리(數理)상에서는
정답이지만 이와 같이 물질(物質)의 합(合)의 견지에서 볼 때에는 그렇듯 다른 정답이 나올 수도 있다는
주장이며 주관이었던 것입니다. 즉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헤아리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인데 사실
이 모양은 이미 우리들의 삶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생활도식이라 하겠습니다.
찬찬히 살펴보면 세상의 학문들 속에도 ‘정해진 정답’을 찾아내는 과학 수학 등이 있는가 하면 ‘정답을 만들어 내는’
예술 분야 같은 것이 있습니다. 특히 예술이라함은 ‘정답을 만드는’ 행위라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과학 수학 등이
연구 관찰 등으로 정하여진 수치 등을 찾는 것으로 볼 때에 음악 미술 문학 방면은 그것을 ‘만들어내는’ 모양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서로 맞물려 있기에 정확한 구별과 구분선을 긋기는 힘들지만 계산으로의 결과와
창의로서의 결과는 분명히 그리고 전혀 다른 것이지요. 전자가 기계(器械)로 정형화 된 모습을 보여준다면
후자는 수공(手工)으로 다양화 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산업의 혁명’은 모든 생산의 기계화를 기초로 하지만 ‘예술의 혁명’이라는 말이 없는 이유는 거기에
복사와 대량이라는 역할로서의 기계가 사용되지 않았고 또 모든 예술의 형태는 그것이 모양이든 행위이든
같은 모습이나 같은 규격으로 똑 같이 만들어지는 획일화의 모습이 될 수도 없는데 그 기준이나 기초 역시도
예술가의 주관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의 경솔한 표현으로 하자면 예술이란 ‘내 맘대로’입니다.
그러나 다수에게 ‘갈채 받는 내 맘대로’이어야 하지요.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예술은
‘자신만의 예술’이 되어야만 하고 거기에 머물러야만 하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자면 ‘피카소의 그림’ 같은 것입니다. 유명화가 피카소도 젊은 시절에는 아름다운 풍경화 같은 것을
사실적으로 그렸지만 점점 더 자신만의 개성 있는 화풍을 만들어가면서 이상하고 해괴하며 도식 파괴적이기도 한
그림들을 그려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였지만 결국 세계인이 인정하는 대(大)화가가 되면서 피카소의 사인을
자신의 등에 받은 어떤 사람이 그 사인을 지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죽을 때가지 보존 할 수 있는 가를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신문에 기사로 나올 정도로 피카소는 세계적인 대가이며 거장인 미술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술은 ‘자신만의 것’이 필요합니다. 다만 세인 다수의 ‘인정을 받는 것’으로서 말이지요.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각각 한 자리에서 같은 곡을 연주하여도 크게 또는 미세하게 차이가 있고 그것이 그 연주자들의 차별화된 개성이며
실력이고 능력이 됩니다. 모차르트나 멘델스존 같이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낸 이들이 있는가 하면 존 케이지나
쉔베르크처럼 소음 같고 난해한 음악을 작곡한 이들도 있지만 그들 모두가 세계적인 음악가의 반열에서 대접
대우 받고 있습니다. 물론 지지자나 팬들의 구별은 선명하지만.. 왜냐하면 후자의 경우들도 그 이전에 이미
음악에 관한한 객관 보편적인 솜씨를 보이고 인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술가는 일단 어떤 작품으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은 후에 ‘자신만의 정답’들을 펼쳐내게 되는데 또한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라 불리며 세계적인 예술가로 대접받는 우리나라의 백남준님이 한 말 중에서처럼 “예술도
돈이 되어야 하는 때문”이기도 합니다. 돈이 있어야 자신만의 정답인 예술작품들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인데
과연 그의 작품에서 보는 바와 같이 TV모니터들을 ‘언덕처럼’ 쌓아놓으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는 그 이전에 ‘돈 안 되는 예술 행위’도 많이 하였던바 바이올린 한 대에 줄을 묶어가지고는 뉴욕시
길바닥을 질질 끌고 다녔던 적도 있었지요. 왜? 그의 말처럼 “예술도 일종의 사기(詐欺)라고 할 수 있거덩..”의
일편이었을까.. 쯧, 자신만의 정답이니까..
에디슨이든 케이지이든 백남준이든 자신의 세계만을 가지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정답을 이루어내고 완성시키고자
투철한 삶을 살은 사람들입니다. 칭찬을 들을 때도 비난을 들으면서 손가락질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거기에
연연하거나 소신을 굽히지 아니하고 살아간 것이고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러한 그들의 모습이 또한
‘예술’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하여 보게 됩니다. 즉 ‘예술은 소신의 결과’로서 그 빛을 발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백남준님의 말처럼 예술도 ‘돈이 되어야’ 하는데 큰 목돈 장만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래서 자신 만의 정답 모양을
만들어 내는 데에 헉헉 숨이 차오르는 때가 있더라도 우리 사람들의 세계에는 그렇듯 자신만의 정답을 고집하는
이들이 있어야 사람들의 영혼의 양식이 충족되고 궁극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도 완성하기도 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의 소신으로 활짝 펼쳐진 당신만의 정답은 무엇입니까..? 행복의 큰 부분이 거기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나의 정답’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지만 또한 ‘너의 정답’과 ‘그의 정답’도 이해하고
인정할 줄 알아야 내가 평안하고 우리가 평안하며 세상이 평안할 것이라고 생각되어 두서없이 써본 글입니다.
- 산골어부 20191029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랑하고 가난은 감출 수가 없다 (0) | 2019.10.31 |
|---|---|
| 하하 허허로 보는 세월 (0) | 2019.10.30 |
| 얼굴과 외모는 자신의 인격. 자존심이다 (0) | 2019.10.25 |
| 회충약과 예방주사 (0) | 2019.10.24 |
| 이성(理性)에서 영성(靈性)으로 (0) | 2019.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