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우(khw***) 2019-10-23 11:39:00
회충약을 드십니까? 그래요. 건강한 몸을 위하여 년 중 한두 번을 먹게 됩니다. 그리고 예방주사도 맞게 되는데
특히 독감.. 독한 놈이라서 ‘독감’이겠지요.. 휴.. 나병도 없어지고 마마병도 없어지고 결핵도 거의 물러갔기에
‘크리스마스 씰’도 없어졌다는 보고가 있는 작금에도 감기 특히 독감은 년 중 환절기 같은 자신의 활동 적기 때만 되면
용케 알고 나와서 왕성하고 싱싱한(?) 모양으로 기승을 부리곤 하니 어떤 연구하시는 분이 ‘감기는 인류와 함께하는
가장 오래된 질병으로 세상 종말까지도 함께할 것이다.’ 라고 하셨다는데 그 현재의 왕성한 유지기세로 보아
과연 그럴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회충약.. 예방주사.. 크리스마스 씰.. 이라는 말들을 들으면 벌써 반세기 전 옛날장면들이 흑백사진처럼 떠오르는데
물론 지금도 예방주사는 있지만 오래전.. 학교에서 단체로 맞던 ‘예방주사’가 생각납니다. 당시 서울 마장동 동명초등학교
운동장에 아마도 미군부대의 지원이 있었던 것인지..? 하얀 십자(十字)를 그려놓은 국방색 자동차가 먼저 붕 들어오고는
이어 종이박스 같은 것을 잔뜩 실은 트럭 한 대가 뒤따라 왔는데 그때부터 그렇게 저의 학교를 방문한 이들이 하얀 가운을
입고는 분주히 왔다 갔다 하였고 그 중에는 코 크고 눈 파란 미국사람도 있어서 큰 구경 난 것처럼 쳐다보곤 했지요.
당시는 바야흐로 베이비붐의 정점시대 학교 담임 선생님들은 많은 아이들을 인솔하여 지정된 교실 양호실 강당 등에서
독감을 비롯한 여러 가지 예방주사를 맞도록 하였지요. 와글와글 하는 속에서는 주사 맞고 아프다고 징징 우는 친구가
있었는가 하면 그 모양을 바라보면 이미 하얗게 공포에 질린 아이도 있었고 이 교실에서 저 교실로 또 화장실로 도망
다니던 친구들도 있었고 그래서 선생님들은 주로 요주의 말썽대장 아이들을 모아 놓고는 팔뚝에 주사자리를 일일이
확인하기도 하였는데 다만 그렇게 한바탕 폭풍이 지나고는 주사바늘의 고통을 참아낸 보상이었던가.. 급식용 옥수수
빵을 하나씩 나누어 주기도 하여서 ‘눈물 젖은 옥수수 빵’을 베어 물며 그래도 히히 하고 웃었으니..
허허 아무튼 지금 생각하면 정겨운 장면들이었습니다.
또 역시 그때에 년 중 두 번 정도 회충약도 학교에서 나누어주었는데 그 전날에 선생님이 내일은 회충약을 먹을 것이니까
아침밥을 먹지 말고 오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그렇게 받아든 회충약은 누렇고 네모난 캬라멜 모양이었는데
그 맛도 달콤하였기에 저와 친구들을 비롯한 대부분 아이들에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당시.. 뭔가 단것이 항상 먹고 싶었지만
단 것이라고는.. 학교 앞 좌판에 앉아서 ‘달고나’를 국자에 녹여 먹던 때였으니.. 그렇듯 해태 캬라멜 비슷한 모양의 회충약도
아이들에게는 하나의 군것질거리처럼 되었던 것이지요. 다만 잠시 ‘하늘이 노랗게 보이면서’약간의 어지러움이 곁들여지는
현상이 있기도 했는데 아이들이 그만큼 허약했던 때문이라고 하지요. 쯧쯧, 그러나 명랑하고 슬기로운 우리 친구들은
그것조차도 웃음거리로 승화시켰습니다. 서로서로에게
“야, 저 하늘 좀 봐 노랗지 않냐?”
“노랑물감 풀어 놓은 것 같네”
하였는데 지금 아이들이 들으면 당최 무슨 소린지 알 수도 이해도 되지 않겠지요.. 다들 ‘도락에 겨운 입술들’이
되었다거나 기어이 무릎관절보호의 시대가 되었다는 뉘앙스를 책망의 모양으로 내보내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병 고치는 것은 다 기계가 하고요. 의사는 기계조작만 능숙히 하면 되는 기계 장비의 숙련 된
기술자들이 되어야 명의 소리를 듣게끔 되어 버렸어요.”
물론 웃으면서 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런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닌 의사의 입으로 직접 듣고 있노라니.. 그렇구나 이렇게
시대가 변하고 또 변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긴 저도 지금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면서 혈압이니 당뇨 같은
것을 체크하고 있으며 갈 때마다 의사와 면담하고 처방 받기를 이제는 근 5년이 다 되어가지만 의사가 내 몸에
청진기를 대거나 손목을 잡아 진맥을 하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면담진료 전에 혈액을 채취하여 혈당체크기로 검사하고 대기실 저편에 있는 혈압기에 팔을 들이밀고 혈압을 재면
그 결과가 자동으로 의사의 컴퓨터에 입력이 되고 의사는 그것을 보면서 이렇게 관리하라 저런 것 조심하라..
등등을 말하여 주는 것으로 진료를 마치고 약 처방전을 받아 아래층 약국에 가서 접수하고 기다리다가 약을 받아오면 끝..
어쩐지 옛날에 여기저기 짚어보고 만져보고 눌러보면서 이것저것 묻기도 하시던 의사선생님의 손끝과 그 낮은 목소리가
그리워집니다.
물론 청진기도 기계라면 기계이고 도구라면 도구이겠지만 그것을 귀에 꽂고 사람 신체의 육동음을 들으면서 조용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진단을 했던 의사들의 예전 모습이 어쩐지 더 신뢰가 갔는데.. 허허 그것만으로도 저는 이제 옛날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기계기능에 크게 의존하는 모양들이 되었고
상기한 것처럼 ‘의사는 각종 의료기기들의 조작만 잘하면 명의소리를 듣는 의료기술자’들이 되어버렸다는 농담 속에서
어쩐지 그냥은 내 던져 버릴 수 없는 작은 뼈대 하나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저 뿐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의과 대학에도 ‘의료기기기능과’가 생겨나는 것은 아닌지 아니 벌써 있는지.. 그리고 그 자격증이 곧
의사면허가 되는 것은 아닌지 이렇듯 ‘쓸데없는 걱정’을 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단적으로 말을 하자면 ‘의사’이든지
‘기술자’이든지 사람의 질병과 질환 또 다친 부분의 치료와 수술 등을 잘 해내기만 한다면 ‘사람이 고치든지 기계가
고치든지’ 크게 개의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기는 합니다만.. 다만 그렇듯 의료 분야에 전문인이 자꾸만 줄어든다면..
어쩐지 좋은 일은 아닌 것 같고..
그러면 혹시 회충약도 예방주사도 전적으로 기계들이 진단하고 처방하고 또 나누어 주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사람이라곤 없는 공간에 기계들만이 있고 그 앞에 서서 기계들의 지시에 따르기만 하면 되는 사람.. 인간들..
회충약도 기계들이 나누어 주고 예방주사도 놓아주고..라고 하는데 까지 이르게 되면 좀 살벌하기는 합니다만..
쯧, 그래서 영화도 적당히 보아야 그 생각과 상상이 생활에 필요한 정도를 넘어 엉뚱한 곳으로 가지 않게 되지요. 허허.
휴.. 이렇듯 이제는 65살이 된 한 늙은 사람이 생각해내는 10살 즈음의 장면들은 작금의 삶에 어떠한 양분으로서 작용이
될 수 있기도 한 것일까.. 누구나 다 그랬기에 조금도 부끄러운 것이 없는 모양으로 ‘콧물을 휘날리며’ 뛰어 놀았던 그
시절이 갑작스레 더욱 그리워집니다. 지금은 그렇게 누렇고 허연 콧물을 흘리는 아이들이라곤 찾아 볼 수 없지만,
그렇게 콧물을 흘리지 않는 모습이 오히려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군요. 즉 지금의 시대는 그만큼
대기도 오염되어 맑은 공기로 숨쉬기 어렵고 그래서 건강한 콧물을 그렇듯 말려버린다는 것인데.. 또 아이들의 몸 역시도
태어날 때부터 ‘약으로 먹여지고 주사로 찔러지는’ 각종 약물의 분별없는 남용으로 그 체질이 병약화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연구보고에는 저의 분야가 아니기는 합니다만 무조건 머리를 크게 끄덕입니다.
산골짜기 계곡물과 마을 우물물 그리고 공동수돗물을 쏴아쏴 쏟아지던 그 모양 그대로 마음껏 들이키던 시대의 아이들이
지금 생수조차도 이것저것 가려 먹으면서 자라나는 아이들보다 더 건강하였구나 하면서 ‘캬라멜 회충약’의 스트레이트
한 방으로 내 몸 속에서 쫓겨 항문으로 달려 나오던 회충들을 생각해 보면서는 그 시절 골목들을 지나온 사람으로서
그리움의 긴 한숨을 쯧 하면서도 길게 내어쉬게 됩니다.
- 산골어부 20191023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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