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부모봉양 10년 하면..

덕 산 2019. 10. 11. 13:41

 

 

 

 

 

 

 

 

부모봉양 10년 하면..

 

김홍우(khw***) 2019-10-10 23:37:13

 

 

벌써 몇 년 전에 10년 간 부모를 한 집에서 모시고 봉양하면 주택 가격 5억 원까지 주택상속세를 공제 받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 법률안'(상증법)이 화제가 되고 있다는 소식이 TV 뉴스로 전해진 것을 메모하여

두었는데 이제 다시 꺼내보게 됩니다.

 

이 개정안은 한 마디로 효자에게 혜택을 준다는 것인데 반갑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떨떠름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장성한 자녀들이 늙은 부모님을 모시고 살 것을 장려하며 구체적으로 어떠어떠한 혜택을 준다고

법령으로 그렇듯 공표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처하고 당면한 작금의 현실과 모습의 일면을

여과 없이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 바야흐로 효도도 상()으로 훈장(勳章)으로 그리고 돈으로 갚아주는 시대가 된 것 같아서 씁쓸합니다.

그래서 생각해 봅니다. ‘부모를 모시고 사는것을 과연 효도(孝道)의 범주에 넣어야 하는 것일까..

부모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사는 것처럼 자식이 늙은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모양인데 저렇듯 구분하고 칭찬하며 상()까지 주어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자꾸만 식어가고 꺼져가는 작금 효도의 작은 불꽃이라도 바짝

입을 댄 모양으로 후후 불어서 어떻게든 살려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한 세기 전.. 아니 한 반세기 전까지만 하여도 자식이 부모를 한 집안에 모시는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꿀꺽)

참 죄송하고 민망스런 표현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매우 부자연스러운모양인 것으로 사회 정답이 형성되어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왜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까.. 원래 우리나라는 수천 년 전부터 부모님을 잘 모시는

효도의 모양을 가장 귀하고 복 된 것으로 여기는 것에 아무도 이의를 갖지도 품지도 않고 화목하게 살아왔는데..

물론 개개인의 사정과 모양들은 여전히 있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풍양속의 정점이라는 모양으로서의

중심기둥의 위상만큼은 천년의 세월도 흔들어 놓지 못했는데 쯧

 

 

 

 

 

 

 

우리 역사를 반만년이라고 말들 합니다. 반만년 이라면 만년의 절반 곧 오천년을 말하는 것인데 참으로 유구(悠久)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변함없이 한 결 같이 함께 이어오고 흘러 온 아름다운 풍속 전통이 바로

부모 공경으로서 효()개념이지요. 그러던 것이 지난 수십 년 내에 반만년을 이어온 효()개념이 마치 손바닥을

뒤집듯 한 순간에 바뀌어버리는 것일까요.. 이제는 부모와는 떨어져 사는 것이 미()의 중심이 되어갑니다.

아니 이미 되었습니다.

 

새롭게 시집 장가를 가서 새 가정을 이루는 어느 곳에도 어느 쪽이든 부모님이 함께 살기를 원하는 이들은.. ,

거의 없다고 매우 드물다고 말하여 크게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상기한 법령의 시행으로 그 모습과 모양이

많이 바뀔 수 있을까요.. 그러면 다행이고 또 그러기를 바라기는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조건적 채근과 종용으로

강제하는 모양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우리 모두는 깊은.. 아주 깊은 숨을 내쉬어 보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 우리들의 사회 그리고 가정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며 지금이 그때입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사회에는 청백리(淸白吏)이라는 것도 있고 또 효부(孝婦)이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있겠지요.. 단순도식으로 본다면 청백리상은 모범 공무원에게 주는 상이고 효부상은 모범 며느리’(!)에게 주는

상입니다. 모범 공무원이란 맡은 바 업무에 정직하고 성실하며 어떠한 비리와의 연루는 물론 사사로운 감정에도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신이 맡은 바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며 자리를 욕되게 하지 않은 나랏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효부(孝婦)시부모를 잘 섬기는 며느리라는 사전 속 정의가 보여주는 것처럼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필두로 하여 시댁 식구들을 잘 모시고 섬기며 가내의 모든 화목과 화평을 주장하여 가는 사람으로서의 가족이고

여인이며 또한 애 엄마입니다. 일찍이 어르신들은 집안에 여자가 잘 들어와서 가세가 일어선다.”라고 하신 것으로만

보아도 며느리 잘 들어오는 일을 얼마나 중요한 가정대사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자가 잘 들어오는 일, 며느리가 잘 들어오는 일.. 이라는 말을 이제 막 시집을 가는 이들과 가려는 이들 모두가

한 번 아닌 여러 번 여러 날 동안을 새겨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물론 시집가고 오는 여인들만을 향해서만 그러한

채근의 모습을 가져서는 안 되지요. 가정은 두 사람이 하나로 합쳐져서 생겨나는 것이고 보면 그 지분은 50:50

이랄 수 있습니다. 남자는 바깥양반이 되는 것이고 여자는 안주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쪽으로도 기울어져서는 안 됩니다.

 

또 성경에 근거하면 결혼이라는 의식을 통하여서 여자는 남자의 돕는 배필이 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남자의 경우는

도움을 받기만 하는 배필이 되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의 깊은 뜻은 인생길은 앞서 살펴가며 필요한

것을 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의 뒤를 따라가며 그렇듯 구하여 준 것으로 다시 영육 간에 필요한 것을 만들어

앞 선 이에게 공급하여 주는 역할을 말하는 것인데 이는 서로의 역할을 지혜롭게 나누어 공생(共生)을 이루라는 말입니다.

남녀는 둘이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없고 해려 하여서도 안 됩니다. 오직 두 사람에게 주어진 시절의 끝 날까지

서로 필요한 부분을 도우며 완성하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배필(配匹)이라는 말의 우리말 설명은 부부로서의 짝이 된 이들을 말하는 것이고 이렇게 짝이 된 이들은

서로 간에 짝꿍으로서의 모습이 양쪽 날개로서의 균형처럼 그 구성과 모양이 같아야 아름답게 높게 멀리 날아갈 수

있는 것이므로 돕는이라는 말은 상호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고 다만 여자는 그 주어진 성품에 맞도록 일의 주관하는

모양만은 남자에게 맡기고 과연 그처럼 앞서 나아가는 이의 몸과 마음의 추진과 동력 그리고

구성의 한 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맡은 일이 다르기에 앞에 서고 뒤에 설 수는 있지만 지위로의 높고 낮음은 없어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봉양(奉養)’으로만

나타나는 것이어야 하지요. 어르신들을 잘 받들어 그 몸과 마음을 평안히 지내도록 모셔야 하는 것인데 이 역시 부부가

한 마음이 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모양을 갖추어 낸다고 하여도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에 여기에서도

서로간의 배필의 역할을 다하여야 하며 그것은 누군가가 이렇듯 부모봉양 10년 하면이라는 조건제시와는 상관없는

삶의 질서 속 원천적 아름다움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이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것처럼 진심의 정성으로부모님을 섬기는 효도에 인간에 그리고 삶의 질서에 대하여 선하고

아름다운 완성을 이루어내는 이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 산골어부 20191010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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