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천복(yor***) 2019-09-16 11:10:31
나는 1957년 5월 대학 2학년을 마쳤을때 징집영장을 받고,
춥고배고픈 자유당군대에 입대했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친후 101보충대를 거쳐 최전방부대인 수도사단 기갑연대에 배치됐다.
소대생활은 생소했으며 놀라운일도 많았다.
그때 우리소대에는 6,25전쟁 끝자락에 참전했던 고참군인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곧 제대했다.
놀랍게도 소대원의 상당수가 문맹이거나 반문맹이었다.
문맹은 글자그대로 한글을 전혀 모르는 경우이며 반문맹은 겨우 읽기는 하는데 쓰지를 못해
무료군사우편으로 고향에 편지도 못보내고 있었다.(그때는 문맹도 입대했었다.)
나는 그들을 위해 편지대필도 많이했고 고향에서 온 편지대독도 많이했다.
그들은 나를 의지했고 새카만 졸병이지만 존중해 줬다.
소대원 거의가 농사짓던 사람들 이었고 권련인 화랑담배를 처음 피워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시골에서 신문지에 잎담배를 말아서 피웠다고 했다.
군용의 EE8 전화기를 처음본 사람이 많았으며 그때의 조악한 군대식사가 시골음식보다 좋다고했다.
그래서 그들중에는 장기복무에 지원하는 사람이 있었으며 하사가 되어 소대향도가 됐다.
그들에게 그것은 정말 큰 출세였다.
호랑이 담배먹던때의 얘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몇개월후,
우리소대에 신병하나가 배치됐다.
이름은 한상룡, 나처럼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영장을 받은 케이스였다.
나와같은 분대에 배치되어 내 옆자리에서 잠을잤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긴것이다.
매일밤은 아니지만 한밤중에 그가 나를 깨우는 것이다.
그 이유가 황당했다.
소변을 보러 변소에 가야하는데 혼자서는 무서워서 갈수 없으니
같이 가 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내귀를 의심했다.
중대변소가 좀 멀리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다 큰 남자가,
그것도 군인이 무서워서 혼자갈수
없다니 누가 그 말을 이해할수 있겠는가.
나는 못들은것으로 하고 돌아누워 자려고 했다.
그런데 이친구가 급하다면서 다시 나를 흔들어 깨우는게 아닌가.
이 일이 알려지는것도 안 좋을것 같아서 결국은 같이갔다.
그러나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수가 없는 미스테리였다.
그 후에 잘 관찰해 보니 군복의 단추를 잘못 끼우는 일이 잦았고
군화의 끈을 제대로 매지 못했다.
행군을 위해 군장을 꾸리는 일도 내가 도와줘야 했다.
분명히 머리는 명석한데 크게 부족한 구석이 있는것이다.
그때 군대에서는 크게 모자라는 군인이 있으면 '고문관' 이라고 불렀다.
바보라는 의미다.
시골출신의 고문관중에는 우향우, 좌향좌를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걸을때 오른팔과 오른발이 같이 나가는 이상한 사람도 있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끝까지 이를 고치지 못했다.
결국 한상룡은 대학생이었지만 고문관으로 불리게됐다.
내가 카바해 줄수없는 약점들이 너무 크게 노출됐기 때문이었으며
그때부터 그는 힘든군대생활을 해야했다.
왕따당하는것은 말할것도 없고 온갖 궂은일은 도맡아 해야했다.
나는 한상룡을 결코 이해할수가 없었다.
공부하는 머리는 나보다 더 명석한 이 청년이 왜 그런 부족한 부분을 가지고 있는것일까.
그 의문은 뜻밖의 일로 풀렸다.
그의 어머니가 이 전방부대에 까지 아들 면회를 왔고 아들과 가까이 지내는 나까지 불렀다.
나가보니 그때로서는 아주 드문 운전사가 딸린 검은지프차ㅡ자가용이 와 있었고, 우리는
그 차로 시골식당에 가서 식사를 했다.
한상룡의 어머니는 부잣집 마나님의 풍모가 있었으며 대단히 친절했다.
식당에서 식사도중 내가 목격한 광경은 놀라운 것이었다.
어머니는 숟가락에 밥을떠서 온갖 반찬을 올린후 아들의 입에 넣어주는것이 아닌가.
한상룡은 그 밥을 입을 크게 벌리고 아주 익숙하게 받아먹었다.
어머니가 주범이었다.
멀쩡한 아들을 망친게 바로 그 에미였다.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다.
엄마가 옷도 입혀주고 단추도 채워주고 신발끈도 매줘서
한상룡은 어려서부터 자기 스스로 해야하는 일을 배우지 못한것이다.
변소도 그래서 혼자 못간 것이다.
그 어머니는 그게 자식 사랑이라고 착각한 것이니 어리석고 부족한 여자다.
앞길이 구만리같은, 명석한 머리를 가지고있는 청년하나를 망쳐놨다.
지금 그 한상룡은 어떻게 됐을까
절대로 제대로 된 인생을 살지는 못했을것이다.
나는 지금도 식당에서 다 큰 애에게 밥을 떠 먹이는 젊은엄마들을 자주본다.
그리고 속으로 한탄한다.
정말 자식을 사랑한다면 '독립된 인간' 으로 키워야 한다.
그 지름길이 혼자 할수있는 일은 혼자 하도록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것이다.
그 젊은엄마들은 골빈당 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가치관이 잘못된, 자식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무지한 젊은부모가 그들이다.
아무리 어려도 수저를 들수있다면 밥을 혼자서 먹으면서 자라야 한다.
그래야 자기일은 자기가 할수있고 또 책임지는 어른이 되는것이다.
한번은 외출하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어른 두사람이 뒤쪽벽에 붙어 서 있고,
젊은엄마와 엘리베이터바닥에 드러누워 소리소리 지르는 어린 여자애가 있었다.
자기마음대로 안해준다고 떼를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도 젊은엄마는 야단을 치는것이 아니라 계속 달래고 있었다.
애가 그렇게 자라면 사회생활을 할수가 없게된다.
엄마는 그 떼를 받아주지만 사회는 받아주기않고 배척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함께 살수없는 '괴물' 취급을 받게된다.
밥상머리교육이 무엇인가.
바로 그런 떼를 쓰지않도록 엄격히 가르치는 것이다.
안되는것은 안된다고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커서 사회에 섞여 함께 살수있는 원만한 인간이 될수있다.
그냥 달레기만 하는것이 정말 사랑일까.
그건 사랑하는 자식을 죽이는것과 다를게 없다.
매를 들어서라도 제대로 근본을 가르쳐야 커서 제몫을 할수있다.
그런 자식으로 키워야한다.
그게 부모의 책임이 아닌가.
어떤 때는 내가 걷기운동에서 돌아오는 시간과
초등학교 학생들이 하교하는 시간이 같을 때가 있다.
애들은 모두 등에 책가방을 메고 손에는 신발주머니를 들고 있다.
그런데 다는 아니지만 애들을 마중 나온 젊은 엄마들이 많다.
그들 중 열의 아홉은 아이의 가방을 자기가메고, 신발주머니도 자기가 들고
애는 맨몸으로 가게 하는 엄마들이 있다.
그 아이들은 커서 자기일을 남에게 의지하는 반쪽어른이 된다.
본분을 모르는, 무책임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사회는 그런 인간을 받아주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자기 것은 자기가 챙기는 훈련이 필요한 게 그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젊은 엄마들은 잘못된 사랑으로 자식의 그 기본기능을 앗아가고 있다.
그건 결코 올바른 사랑이 아니다.
내 눈엔 그 아이들은 모두가 제2, 제3의 한상룡으로 보였다.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정말로 자식의 성공과 행복을 원한다면 자기일은 스스로하는
'독립된 인간' 으로 키워야 한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밥과 함께 철학이 필요하다.
세살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ㅡ 한국격언.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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