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벌초, 참초, 금초(예초)

덕 산 2019. 8. 27. 14:37

 

 

 

 

 

 

 

 

목을수(mok***) 2019-08-26 20:14:51

 

조선일보 2019826A25 신문은 선생님면에 ‘24년동안 63회 성묘 간 정조제하의 기사에서 민족대명절인

추석을 3주 앞두고 조상묘에 벌초하러 가는 인파가 늘고 있다고 보도하고 문화일보<201393()30>

오피니언의 황성규 논설위원 칼럼 오후 여담의 벌초유정에서 벌초는 조상숭배의 한 양식이다 라고 말하였고

조선일보<201246() A14> 사회이슈면에 5일 한식을 맞아 구리시 동구릉 내 조선 태조 건원릉을

직원들이 벌초를 하였다고 보도하였다.

1. 참초(斬草)

조선조의 왕릉에서는 사초(莎草, 향부자싹 사의 원음은 잔디수자로 수초임)를 깎는 것을 베어 자른다고 하지 않고

썬다는 참초(斬草)라 하는데 플을 벤다는 참삼(斬芟)의 풀 베일 삼()자 대신 풀 초()자를 따서 참초라고 한다.

매우 심히 애통스러움을 밝히는 것으로 상복도 참최복(斬衰服)이라 부르며 남송때 유학자 주희(朱熹 11301200)

지은 주자가례(朱子家禮)가례 4편 묘제(墓祭, 有草棘即用刀斧鉏斬芟夷)에 묘소에 가서 재배하고 묘역을

세 바퀴 돌면서 풀과 나무를 낫이나 호미를 사용하여 참삼(斬芟)한다고 하였다.

이와같이주자가례(朱子家禮)에 묘소에서 풀과 가시나무를 베어내는 참삼(斬芟) 용어를 처삼촌 벌초하듯 한다에서

벌초를 한다고 기사화 하였다.

2. 벌초

소분(掃墳)은 조선조 때 가정에 경사가 났을 때(과거급제) 조상의 산소에 가서 잔디를 깎고 갈퀴로 깨끗이 긁어 낸 후

제사를 지내는 것이고 벌초(伐草)는 속담에 처삼촌 벌초하듯 한다하여 정성없이 건성건성 무성의 하게 낫으로

잔디를 후려처서 깎는다는 것이다.

원래 벌()이란 밭도랑을 갈아 헤쳐 만든 밭두둑흙이라고 후한 때 정현(鄭玄)이 말하였으니

(畎上曰伐,與猶堂全書地官修制 田制一 井田論三) 벌초는 밭두둑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정신없이 뽑아 버리는 것이리라.

 

 

 

 

 

 

3. 금초(禁草), 예초(刈草)

궁궐을 지키는 금군(禁軍)의 금()자를 따서 잔디가 자라지 못하게 깎는 것을 금초(禁草)라 한다.

조선조 중종때 숭문원제조와 지중추부사를 지낸 최세진(崔世珍 14731542)이 지은 운회옥편(韻會玉篇)에 금()

제재한다는 뜻이며 을러서 제지한다(禁制也劫持也)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나무를 베는 벌목(伐木),

나무를 베어내고 섶을 깎아 내는 벌채(伐採), 얼음장을 떠내는 벌빙(伐氷)에 칠 벌()을 쓰나 조상을 모신 봉분을

깎는데 칠 벌()자를 쓰는 것이 안쓰러우니 금초나 풀을 벤다는 예초(刈草)로 불러야 조상을 공경하는 마음이

가슴속에 배어나는 것이다.

 

금초의 적기는 왕릉에서는 제관이 설날 제사지낼 때 잡목과 잡초가 있는지 살펴본 결과를 왕에게 보고하면 한식날에

가시나무와 다북쑥 등을 뽑아 발거(拔去)해 버렸으나(拔去蓬艾荊棘等雜木雜草,경국대전예전 봉심조) 민간에서는

음력 7월 보름 백중(百中)이 지난 처서(處暑)와 백로(白露)의 보름사이에 하는데 이 시기를 놓치고 음력 8월달

들어서서 하면 자식으로 치지도 말라는 말이 있다. 즉 더위가 한물 지나 수그러들 때 한다는 것이다.

 

처서의 곳 처()자는 범 호()자와 편안히 걸을 쇠()자와 기댈 궤()자의 세 글자가 모여서 만들어진 글자로서

지팡이(궤장几杖)을 짚고 편안히 걷는다는 뜻이다. 곳 처()자 뒤에 더위 서()자 대신 선비 사()자를 붙이면

처사(處士)로써 세상밖으로 나가지않고 조용히 산천에 묻혀 지내는 선비를 가리키는 바, 처서(處暑)는 지역에 따라

더운것()이 아니고 더위가 숨어 들어간다는 뜻이므로 이 때가 되면 아침 저녁으로 샛바람이 나서 서늘한 날씨가

시작되는 날이다.

 

 

 

 

 

 

백중(百中)은 백종(百種)으로도 부르는데 백가지의 꽃과 과일을 부처에게 공양하며 복을 빌었으므로 그 이름이 생겼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7>하였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망혼일(亡魂日)이라하여 불자들은 절에가서

재를 올린다고 한다. 이날 이후 처서부터 서서히 밤기온이 내려가 풀잎에 흰 이슬 방울이 맺힌다는 백로(白露)가 되어

24절기 중 15번째 절기로써 조석으로 선선해지니 금초하기에 최적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잔디는 단년초이므로

겨울에 풀이 죽으니 박박 깎지말고 왕릉처럼 잡목과 잡초만 제거하면 된다고 본다.

 

금초(禁草)를 할 때에 삼촌, 형제, 질자(姪子), 종형제, 재종형제, 삼종형제(8)등 친족이 모여 정담을 나누고 우의를

돈독히 다지며 친족간의 정도 깊어지고 화합의 자리가 마련된다는 점에서 조상을 매개로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공유하고

전수, 전승시켜 가족끼리 연대를 강화해 주는 풍습을 남겨줘 선조들의 슬기와 지혜를 엿 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현대 물질문명이 산업화 도시화로 생활방식 변화와 핵가족화 하여 젊은 세대들이 조상의 얼이 숨쉬는 체취를

느끼지 못하고 개인주의 세태에 젖어 조상 산소의 금초에 참여율이 떨어져 친족간의 알력을 자아내는 경우가 일어나서

유골을 수습해 화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4. 성묘(省墓), 봉심(奉審), 묘제(墓祭)

벌초는 성묘(省墓) 하기 전에 조상의 묘의 잡초를 베고 묘 주변을 정리하는 것으로 한식과 추석에는 꼭 성묘를 했다고

기사로 썼으나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중추(中秋)편에서는 한식과 추석에 성대히 묘제(墓祭)를 지낸다고 하였으니

성묘와 묘제를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 성묘는 예기(禮記)단궁하(檀弓下)편에 묘를 오른쪽으로(3바퀴) 돌면서(右還其封)

묘를 살펴보는 것을 적묘(適墓, 예기曲禮上), 전묘(展墓, 예기단궁하)라 하고 후대에 이르러 성분묘(省墳墓),

성영(省塋), 성묘라 하였고 왕실에서는 봉심(奉審, 經國大典禮典 봉심조), 성릉(省陵), 전성(展省)이라 하였다.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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