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민 여론독자부장
입력 : 2015.04.03 03:00
이선민 여론독자부장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1885년 3월 자신이 발행하는 지지신보(時事新報)에 훗날 '탈아론(脫亞論)'으로 불리는 논설을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이웃 나라의 개명(開明)을 기다려 함께 아시아를 흥하게 할 여유가 없다.
차라리 그 대오에서 이탈하여 서양의 문명국들과 진퇴를 같이해야 한다.
지나(支那)와 조선을 대하는 법도 이웃 나라라고 해서 특별한 대우를 할 것이 없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아시아 동방의 악우(惡友)를 사절해야 한다.
" 김옥균·박영효·유길준 등 조선의 개화파를 지원했던 후쿠자와는 조선의
개명을 급진적으로 시도했던 갑신정변(1884년 10월)이 실패한 뒤
이 글을 쓰면서 자신부터 마음에서 조선을 지웠다.
그의 만년에 간행된 회고록에는 조선 개화파와의 교류 사실이 들어 있지 않다.
그의 고향 나카쓰(中津)에 건립된 후쿠자와 기념관에도 조선 개화파에 대한 언급은 없다.
'아시아의 악우(惡友)'를 사절하려는 움직임은 후쿠자와의 지적 후예들에 의해 깊고 체계적으로 진행됐다.
일본 학자들은 일본이 봉건사회를 거치며 서양과 비슷한 발전 경로를 밟아온 것과 달리
중국과 한국은 오랫동안 정체돼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그 차이를 강조했다.
일본이 영국·독일 등을 모델로 서구화를 급속히 진행하는 동안 일본인의 마음에서
중국과 조선은 더욱 멀어졌다. 20세기 전반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과 중국 침략 과정에서
많은 피해가 발생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됐다.
일본은 지금도 지난 세기에 자기 나라가 한국과 중국에 미친 파괴적 결과에 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했을 때 충격적이었던 것은 부설 군사박물관 유슈칸(遊就館)에서
군국주의를 미화하는 영상을 틀어주면서 가장 큰 피해자였던 한국과 중국에 대해서 전혀 배려가 없는 점이었다.
일본 제국해군의 요람이었던 에타지마(江田島)의 해군박물관과 인접 도시 구레(吳)의 야마토박물관을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 동아시아를
쑥대밭으로 만든 전쟁들에 대해 그 불가피성과 일본 해군의 무공(武功)을 자랑할 뿐 인접국에 미친
피해에는 아무런 인식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동아시아는 후쿠자와가 '탈아론'을 발표하던 시대와 크게 달라졌다.
한국과 중국은 일본 못지않은 '개명'을 이루었다. 일본과 함께 아시아를 흥하게 할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있다.
후쿠자와도 다시 살아난다면 아마 '탈아론'을 철회할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여전히 한국을 '나쁜 친구'로 생각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아베 총리는 얼마 전 "한국은 중요한 이웃이지만 이웃이기 때문에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일 친선과 동아시아의 번영을 바라는 사람들은 일본이 한국을 '중요한 이웃'을 넘어 '
좋은 친구'로 생각하기를 바란다. 문예춘추 편집장 출신인 역사 저술가 한도 가즈토시(半藤一利)는
"일본인은 일찍이 조선인이나 중국인에게 아픔을 준 사실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은 역사를 바탕으로 살아간다.
자연스러운 교류를 위해서도 잊지 말고 알아두어야 할 것은 있다"고 했다.
아베 총리와 일본 국민이 이 사려 깊은 지식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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