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추위 / 박인걸
눈구름 한 점 없는 맨 하늘에서
차가운 기운이 쏟아진다.
머리맡에 둔 물 양재기 꽁꽁 얼었던
그 해 겨울보다 더 춥다.
추위에 굼뜬 비둘기가 차에 치였고
지하 주차장에 피란 온 길고양이 눈치만 본다.
쪼그만 새들은 멀리 도망치고
마당 옆 목련 나무는 체념의 빛이 역력하다.
한파 주의보는 종일 전파를 타고
제주에 발이 묶인 승객이 가엽다.
하지만 나는 두렵지 않다.
수시로 불어 닥친 맹추위를 견디었다.
새벽 네시에 강바람을 맞으며 한강교를 건넜고
하루 연탄 한 장에 목숨을 맡기고
세 식구가 그 해 겨울을 보냈다.
아이앰에프 외환위기에
내 영혼을 장대에 매달았고
한여름 내내 등골에는 찬 서리가 내렸다.
곤파스가 수도권을 강타하던 밤
육십자 종탑에 기어올라
바람에 흩날리는 철판을 붙잡고 울었다.
영하 이십도는 추위도 아니다.
가슴이 얼어붙는 추위가 맹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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