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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寒波) / 김정윤

덕 산 2025. 1. 9. 06:19

 

 

 

 

 

한파(寒波) / 김정윤

 

요란한 진동음을 울리며
호외(號外)처럼 뿌려진 재난 경보 메시지

“금일 21시 한파경보 발효
올겨울 들어 최고 추위가 예상되오니
노약자는 외출을 자제하시고
도로 결빙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광풍(狂風)을 동반한 한파는
시간을 다투며 뿌려진 메시지를 앞세워
전국을 강타했다.

외줄 타는 어름사니(광대)처럼
늘어진 전깃줄에 몸을 던져 휘청거리며

사형수의 목을 향한
망나니의 칼날 같은 소리를 지르며
마른 가지를 휘어잡고 미친 듯 흔든다

언제나 가난한 문풍지를 향해 공격했고
차디찬 방안을 맴돌며
흡혈귀처럼 사람의 체온을 빨고 있다

서둘러 찾아온 여명의 빛이
얼어붙은 날개 죽지를 조심스럽게 펼 때면
춥고 배고픈 이들의 안방으로
거침없이 떨어지는 폭탄

노인은
맑은 유리는 너무 춥게 느껴진다며
우윳빛 창호지를 창문에 붙이며
끝을 알 수 없는 고통의 삶을
하얀 입김으로 뱉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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