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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그리고 / (宵火)고은영

덕 산 2025. 1. 8. 06:10

 

 

 

 

 

폭설, 그리고 / (宵火)고은영 

뭉클한 추위가 전신을 엄습하고
웅크린 봄의 기척은 멀기만 한데
겨울을 끌어안은 묵묵한 나무들의 침묵
사랑의 물관이 꽁꽁 언 지금은 빙하기
따스한 사랑 하나 구걸하고 싶다

내내 바람부는 어귀
설장(雪葬)에 빛바랜 천년의 각혈이
하얗게 지상을 덮는다
하루종일 끊이지 않고 내리는 폭설은
지상의 모든 길들에 절망을 묻는다

오로지 비만의 음영으로 다가서는 빈곤이 나를 후비고
맴맴 시간이 눈금 없이 획을 그으며 날이 저물어가고 있다
문득 밑바닥 가장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서글픈 동백 빛깔의 영가(詠歌)는 누구의 체취인가
선혈일까 그것은......

처참한 영혼 하나 저 홀로 눈 속을 온 종일 헤매는데
엔니오 모레꼬네 현이 우는 겨울 중심지에
간절한 회귀를 바라는 그리움들이
폭설에 뒹굴며 썰매처럼 미끄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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