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가을 / 박인걸
가을이 왔다고 하나
여름이 아직 나뭇잎 위에 앉아있다.
쏟아지는 한 낮 햇살은
파란포도를 새까맣게 태우고
가로공원에 붉게 핀 배롱나무 꽃은
지난달처럼 아직은 웃고 있다.
바짓가랑이를 적시던 아침 이슬과
가련하게 피어나는 메꽃을
아스팔트 까맣게 깔린 도시에서는
오래전부터 잊고 살았지만
하늘높이 고추잠자리 맴돌 때
가을이 밀물처럼 밀려옴을 감지한다.
울타리 휘감은 능소화는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며 뚝뚝 떨어지고
이웃집 마당가의 다알리아도
분홍 코스모스 기세에 풀이 죽는다.
조석으로 찬 기운 옷깃을 여미게 하니
맑은 이슬 점점 무거워지면
머잖아 나뭇잎들 붉은 한숨을 토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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