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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이마 / 벽란 김상훈

덕 산 2023. 5. 17. 10:21

 

 

 

 

 

초여름 이마 / 벽란 김상훈 

 

정오의 미열 속에 앓는 소리를 내며

봄이 곱다시 죽지 않는 까닭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 오랜 꽃말들이

미처 다 벗어 놓지 못한 속옷 때문이다

 

아무렇게나 벗어도 전설이 되던 치마와

날아다니고 기어 다니는 것들이

지상에서 난교를 벌이던 정사의 서(書),

초여름이라는 이마에 신열이 내릴만하다

 

이제 봄의 변방을 지킬 집요한 기억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 버림받는 순교처럼

겨울까지 관통하는 하인의 언어로 남아

연둣빛 씨앗의 한 종교로 남을 것이다

 

사라지므로 거룩한 삶을 이룩한 봄아,

잠시 물기에 젖었던 생의 무게를 버리고

초여름 잔등에 6월이라는 바코드 찍어

콧등 시큰한 부활의 잎으로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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