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가을의 유혹 / 박인환

덕 산 2022. 9. 22. 15:54

 

 

 

 

 

가을의 유혹 

             - 박 인 환 -

 

가을은 내 마음에

유혹의 길을 가르친다

숙녀들과 바람의 이야기를 하면

가을은 다정한 피리를 불면서

회상의 풍경을 지나가는 것이다

 

전쟁이 길게 머무른 서울의 노대에서

나는 모딜리아니의 화첩을 뒤적이며

적막한 하나의 생애의 한 시름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러한 순간

가을은 청춘의 그림자처럼 또는

낙엽 모양 나의 발목을 끌고

즐겁고 어두운 사념의 세계로 가는 것이다

 

즐겁고 어두운 가을의 이야기를 할 때

목메인 소리로 나는 사람의 말을 한다

그것은 폐원에 있던 벤치에 앉아

고갈된 분수를 바라보며

지금은 죽은 소녀의 팔목을 잡던 것과 같이

쓸쓸한 옛날의 일이며

여름은 느리고 인생은 가고

가을은 또 다시 오는 것이다

 

 

 

 

반응형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의 기도 / 김현승  (0) 2022.09.24
가을의 시 / 김현승  (1) 2022.09.23
가을이면 밀려오는 향수(鄕愁) / 박만엽  (0) 2022.09.21
가을하늘 / 방정환  (1) 2022.09.20
가을 억새밭 / 윤홍조  (0) 2022.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