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백일의 언약도 / 淸草배창호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내는 것이란 걸,
잊은 것 같다가도 문득 예리한 통증으로
되살아난다는 걸 몰랐습니다
잊히기만 기다렸던 것은 아닌지 몰라도
바람 잔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는
메마른 가지의
통곡을 뒤집는 밤낮인 걸 몰랐습니다
시절을 넘나든 산화한 나날의 연속이
초하에서 시작한 입추의 그늘까지
처서에 들면서 조금은 빛바랜 꽃잎에
괜스레 눈시울을 적시게 만듭니다
마디마다 늘어놓는 서리 낀 애증은
갈래갈래 엉킨 내 안에 떨림의 뿌리로
빗금을 마구 그어 놓았으니 잘라내고 싶어도
아니 되는 고통의 슬픈 언약이 되었습니다
먹물을 가득 묻힌 겨울이 오기 전까지
허우적거리다 끝내 허공에 박힐지라도
끝없이 끝을 향해가는 그해 여름,
네 오늘처럼 선연히 피울 것입니다
반응형
'배창호시인님 글방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사화相思花 / 淸草배창호 (1) | 2022.09.13 |
---|---|
달맞이꽃, 이 한철에는 / 淸草배창호 (0) | 2022.09.03 |
창과 방패, 자멸에 들다 / 淸草배창호 (0) | 2022.08.24 |
강물에 띄워 보냈더라 / 淸草배창호 (0) | 2022.08.22 |
불볕의 어느 날 / 淸草배창호 (0) | 2022.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