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호시인님 글방

배롱나무, 백일의 언약도 / 淸草배창호

덕 산 2022. 8. 26. 13:11

 

 

 

 

 

배롱나무, 백일의 언약도 / 淸草배창호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내는 것이란 걸,

잊은 것 같다가도 문득 예리한 통증으로

되살아난다는 걸 몰랐습니다

 

잊히기만 기다렸던 것은 아닌지 몰라도

바람 잔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는

메마른 가지의

통곡을 뒤집는 밤낮인 걸 몰랐습니다

 

시절을 넘나든 산화한 나날의 연속이

초하에서 시작한 입추의 그늘까지

처서에 들면서 조금은 빛바랜 꽃잎에

괜스레 눈시울을 적시게 만듭니다

 

마디마다 늘어놓는 서리 낀 애증은

갈래갈래 엉킨 내 안에 떨림의 뿌리로

빗금을 마구 그어 놓았으니 잘라내고 싶어도

아니 되는 고통의 슬픈 언약이 되었습니다

 

먹물을 가득 묻힌 겨울이 오기 전까지

허우적거리다 끝내 허공에 박힐지라도

끝없이 끝을 향해가는 그해 여름,

네 오늘처럼 선연히 피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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