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웰 다잉.

덕 산 2022. 6. 27. 13:08

 

 

 

 

 

웰 다잉.

 

박천복 2022-06-27 07:00:21

 

Well dying은 품위 있고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는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결국은 죽는다.

생명연장을 위한 모든 인간의 여러 가지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모든 생물의 죽음은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사람이 언제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방법은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전형적인 죽음은 고종명(考終命)이다.

오복의 하나로 제명대로 살다가 제집에서, 가족들 앞에서 편안히 눈을 감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병원 중환자실 병상에 누워 연명기구들을 주렁주렁

달고 식물인간이 되어 죽는 것이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인간 스스로가 자기의 죽음을 그 방법에서 선택할 수 있다,

현재는 연명치료거부까지는 허용되고 있지만 머지않아 죽음자체에

대한 결정을 스스로 할수 있을 것이다.

이미 국민의 76%가 웰다잉(안락사, 조력존엄사)에 찬성하고 있다.

절대다수가 찬성하고 있는 셈이다.

국회안에서도 이를 합법화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말기암 환자인 듀발씨는 80세로서 자기사업으로 성공한 기업인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말기암투병으로 겪게되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견디기 힘들고, 더 이상의 치료가 의미없다고 판단되어 스스로

편안한 죽음을 택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의사에게 부탁, 마지막을 직접선택하기로 했으며 두달뒤,

가족들에 둘려싸인채 평소 즐겨듣던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정맥주사기에 연결된 밸브를 직접돌렸다.

약물이 몸속으로 들어오며 그의 눈은 서서히 감겼다.

이처럼 의식있는 환자에게 의사가 약물을 제공, 환자 스스로가 삶을

종결할수 있도록 돕는 ‘의사조력죽음’ 은 국내에서는 불법이다.

그러나 스위스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으며 우리들이 잘 아는

프랑스의 명배우 알랭 들롱이 이길을 택했고 이미 아들에게도 알린 상태다.

호주의 유명한 생태학자인 데이비드 구달 박사도 2018년 스위스에서

스스로 이 방법을 택했었다.

 

 

 

 

 

 

 

‘조력존엄사’ 란 환자본인이 원하면 담당의사의 도움을 받아 삶을

마무리할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의식이 있는 환자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임으로 의사가 환자에게

직접약물을 투여하는 안락사와는 다르다.

국내에선 안락사도, 조력존엄사도 아직은 불법이다.

2018년부터 심패소생술, 인공호흡기착용, 혈액투석등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하는것만 합법화됐다.

네델란드, 벨기에, 콜롬비아등에선 안락사, 조력존엄사 모두를 인정한다.

스위스와 미국 일부주에선 조력존엄사만 인정한다.

반면 로마 교황청은 이 모두를 ‘용납할수 없는일’ 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조력존엄사법의 핵심은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고있는 말기

환자에게 자신의 삶을 스스로 끝내며 존엄한죽음을 맞이할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는데 있다.

앞으로 시일이 흐르면 보편화 될 수 있는 여지가 큰 개념이기도 하다.

 

넓은의미에서 웰다잉은 죽음이후까지도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매장되어 봉분을 만들것인가. 화장되어 납골당에 안치될것인가. 아니면

수목장을 치를것인가등이 그것이다.

내게는 반평생을 함께 바다낚시를 한 친구가 다섯있는데,

그중 하나가 간암으로 먼저 떠났다.

말기암으로 고통받고있는중 임종전 찾아간 우리들에게 자기가 떠나면

화장해서 우리가 가장 자주 찾았던 낚시터에 뿌려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우리는 가족의 동의를 얻어 그렇게 했고, 그후 그곳에 가서 낚시할때는

그가 배에 같이타고있는 느낌을 가질수 있었다.

그건 정말 설명하기 어려운 정황이었다.

보이지 않지만 함께있다는 느낌. 그것은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의 먼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아프리카남쪽원숭이)

가 나무에서 내려와 두발로선 이후 700여년동안 인류는 장례문화를

만들면서 진화해 왔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장례는 그 자체가 지금도 하나의 문호현상인 것이다.

 

우리모두는 지금 흡사죽음은 나와 아무관계가 없는것처럼 살고 있다.

그러나 외면하고 회피한다고 해서 죽지않는 것은 아니다.

사실, 죽음은 가장 구체적인 현실이다.

‘범은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 는 속담이 있다.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내가 다른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는가 일 것이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하는가.

그래서 기억될만한 사람으로 살기위해 노력하는 게 우리들 인생이기도 하다.

웰다잉은 먼 얘기도, 남의얘기도 아닌 나 자신의 얘기다.

누구나 죽는다는 한계를 알고살면 지금보다는 더 겸손하고 진지하게

오늘을 살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는 종교와 철학이 필요하다.

 

- 죽음은 삶의 한 부분이다. ㅡyorowon.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