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유월 장의 노을 / 이원문

덕 산 2022. 6. 19. 14:49

 

 

 

 

 

유월 장의 노을

                 - 이 원 문 -

 

 

보리 방아 찧어 항아리에 가득 하고

벌어지는 벼 포기 하루가 다르다

바쁜 손의 쉴참 며칠이 될까

텃밭에 풀은 그대로인데

 

돌아오는 그믐장 사람 구경이나 갈까

칠홉 부은 항아리의 쌀 얼마만큼 떠 내야 하나

한 말은 이발소 줘야 하고 서너말은 꾼 것 갚고

그러면 바닥에 얼마 안 남을 것인데

 

반 말을 퍼낼까 한 말을 퍼낼까

살 것 많은 그믐 날 장 무엇을 사야 하나

양잿물에 바느질 실 어머니의 박하 사탕

생선 한 손 집으면 얼마나 남을래나

 

살 것 많은 셈 안의 장 무엇을 얼마나 사나

무거운 마음의 장터길 인 보리쌀 짖누르고

앉아 쉬어 가자 하니 뻐꾹새 울음 멀어진다

오는 이 가는 이 인사 하기 바쁜 길

 

장터 안 들어서니 눈 안의 것 다 사고 싶고

엿장수의 가위질 다른 한곳 각설이타령

약 장수 넋살에 장 안 한 바퀴 둘러보니

기다리는 아이들 눈에 밟힌다

 

무엇을 사고 안 사야 하나

집안 식구 한 마디씩 어떻게 듣나

저물녘 오는 길 산 그림자 길어지고

뜸북새 울음 멎은 듯 노을저간다

 

 

 

반응형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끔가다 한 번씩 마주 보고 웃을 수만 있어도 / 방우달  (0) 2022.06.21
여름 / 유자효  (0) 2022.06.20
여름 사냥 / 임영준  (0) 2022.06.17
마음의 달 / 천양희  (0) 2022.06.16
비 내리는 날 / 이해인  (0) 2022.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