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음주운전은 이제 그만

덕 산 2020. 4. 1. 13:30

 

 

 

 

 

 

 

 

음주운전은 이제 그만

 

김홍우(khw***) 2020-03-31 17:31:36

 

오래 전에 엘살바도르내전 중에서는 음주 운전이 발각되면 교통순경이 현장에서 권총을 꺼내 즉결처형으로

사살(射殺)하게 한 적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운전은 물론이고 술을 먹은 상태에서 운전석에 앉아 있기만 하여도

그렇게 된다는 소문까지 있었는데 제가 직접 기사를 보거나 읽은 것이 아니고 또 너무 강도 높은 처벌수위의

이야기이고 보면 아마도 과장된 전언이 아니었겠는가 하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나 또한 그렇게까지 하여도 근절되지 않는다는 음주운전은 더욱 무서운 일입니다.

 

 

그래서 먼저는 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벌써 한 세기 전에 미국에서도 을 금지한 금주령

내려진 적이 있지만 지금은 미국인들 사이에서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할 잘못 된 법령의 대표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하지요. ‘술은 만들지도 팔지도 먹지도 말라는 것이었는데 그 목적은 술로 인한 각종 사건

사고의 사회적 폐해를 줄이고자 한 것이지만 결과는 오히려 반대가 되어서 밀주, 밀매, 마약, 폭력 등 범죄들은

늘어만 갔고 갱의 대명사로 유명한 알 카포네의 폭력과 폭거의 전성시대도 그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금주령이 때마다 실행되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정종시대 영조시대 정조시대로 이어지면서

부침과 우여곡절을 거듭하다가 폐지되었는데 시절에 따라 술을 만들지 말 것, 팔지 말 것, 사먹지 말 것 아무튼

먹지 말 것 등을 임금님 법으로 채근 종용하였고 급기야 영조 때에는 늘 술에 절어 있던 한 관리가 시범케이스가 되어

영조가 직접 참관(또는 직접 처형)한 가운데 참수 하였다는 비록 같은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는 것을 보면 당시의

금주령이 매우 엄하였던 것도 분명하지만 그러나 그렇게 하여서도 백성들이 은밀한 모양으로 술 먹는 것

막을 수가 없었다고 하지요.. 혹시 그때도 음주운전 곧 술 취해서 말()타는일들의 단속이 있었던 것이었을까요..

 

 

그렇게 멀리까지 소급하여 올라가지 않고 저 어릴 적인 1960년대 어느 때인가도 물론 전국적 금주령의 모양은

아니었지만 각 가정 집에서는 술을 만들지 못하는법령이 선포 된 적이 있었지요. 어렸을 적 기억이라서 선명하지는

않지만 집에서 술을 만들어 먹는 것은 괜찮지만 파는 것은 안 된다 하는 모양이었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당시에는 많은 집들이 탁주를 만들어서 먹기도 하고 알음알음으로 팔기도 하였는데 저희 집 앞 제 친구 집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어느 날인가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서 웅성웅성 거리는 가운데 경찰들이

그 집을 들락거리기도 한 것이 기억납니다.

 

 

지금도 주말 즈음이 되면 거의 빠짐없이 연일 뉴스 시간에 보도되고 있는 것이 음주운전단속 모양들과 그로 인하여

일어난 사건보도들입니다. 작금의 코로나19의 상황이나 위협도 음주와는 별 상관이 없는 모습처럼 보여 지기도 하는데

아니 오히려 이러한 불안 염려 등이 오히려 음주를 더욱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외출도 삼가 하여야 하고

마스크를 써야 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도 하여야 하며 술집 식당 같은 곳이 감염의 위험이 높다는 말들을 하고

그래서 폐업, 휴업 등의 안내문들이 걸려있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일부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더 마시는

모양도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은 사람과 술의 관계 이야기입니다만, 어쩐지 사람과 술이 아니라 그 주객이 전도가 되어 술과 사람 곧 술의

주도적 행패에 사람이 끌려가는모양새가 되어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술의 출현과 그 기록 중 오래 된 것으로는

노아의 방주로 유명한 노아의 이야기도 있는데 그가 술을 마시고 취하여 추태를 보여준 것이 성경 창세기에도

기록 되어 있지요. 하나님께 사랑 받고 택함 받아 인류의 제 2조상이 된 당대의 의인이라 칭함을 받던 노아도

술로 인하여서 실수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과연 술이란 무엇이며 그 파괴의 영역은 어디까지 인가 하는 것을

새삼 생각해보게도 됩니다.

 

 

 

 

 

 

 

 

그렇습니다. ‘술 취해서저지른 많은 실수 실족들의 이야기는 많지만 술 취해서한 좋은 일 선한 일 착한 일 그래서

후세로까지 이어 내려오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허허 그래요. ‘어느 날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갑자기 용돈을 많이

주었다는 정도의 아이들 이야기 같은 류 외에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술 취한다고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도 유익이 되지 않는 다는 것에 우리 대부분 모두는 동의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서 굳이 술을 말리거나

못 먹게 하는 금주(禁酒)의 모양이나 법적으로라도 제한을 두자고 하는 사회 분위기는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가정은 술로 인한 큰 고통을 지금도 여전히 받고 있지만 그러나 또한 주도(酒道)를 외치면서 술과 술자리가

주는 사회적 활력과 회복을 말하는 이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기도 하지요. 물론 후자의

경우가 무조건 틀리다고 편중 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공히 다 그렇듯이 이제는 음주의 모양도

그 정도와 예()의 테두리 안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지금은 정말 주도(酒道)가 필요한 때입니다.

 

 

이전에도 물론 술이 주는 사회적 폐해와 음주 자제의 유익(有益) 어느 쪽을 택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 같은 것이 훌륭하고

유명한 인사들을 대담자로 모시고 진행하는 공개방송 등에서도 이야기 되는 적도 종종 있고 물론 후자 쪽을 택하여야

한다는 지론들이 항상 대세이기는 하지만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아이들이 어렸을 적부터 술 마시는 법

주도(酒道)를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하여 보십시오. 우리는 사람과 사회적 바른 생활에 유익하다고 판단하여

차 마시는 법곧 다도(茶道)를 어린 아이들에게 한복을 입혀 놓고 정중하고 정성을 다하는 예법으로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술 곧 주도(酒道)를 그렇게 가르치지 않고 또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아이들에게 에 대하여 가르치지 못하고 또 않는 이유를 물으면 대부분 사람들은 하지만 어떻게 아이들에게

술을 가르칠 수가..”라고 대답들을 합니다. 바로 그 대답 속에 아이들은 술과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생각들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즉 아이들에게 술은 해악하다는 것인데 그 해악이 어른들에게는 유익이 되는 것입니까..

물론 절제하고 자제하며 그야말로 적당히마신다면 사회적으로도 건강에도 나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술 마시는 이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거의 매일 저녁 이렇듯 음주단속의 풍경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술을 가르친다.’고 하여도 입으로 술을 먹는방법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한 것은 지금은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물러나 있는 아이들도 성년이 되기만 하면 누가 따로 가르쳐주지 않아도 잘 들 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는

 술자리의 매너를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성년이 되도록 자라나면서 아무에게서도 그러한 것에 대하여서는

배운 적도 없기에 툭하면 술로 인한 못난 모양들 곧 과음 추태 싸움 사건들이 이렇듯 사고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일찍부터 많은 선현들과 어르신들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사람은 배워야 한다.’라는 말들을 많이 하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그러므로 술 마시는 예법도가르치고 또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어르신들은 거의 보지

못하였고 그래서 아들 딸 자식이나 젊은이들이라도 앞에 앉혀놓고 술 마시는 대작(對酌)법을 가르치는 모양 역시

본 적도 그리고 들어본 기억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지금까지도 가르치지 않는 결과가 과연 좋은 모양으로

우리 사회 속에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요..

 

 

 

 

 

 

 

()를 마실 때에도 갖추어야 할 예()가 있고 지켜야할 법()이 있다면 술을 마실 때에는 그러한 모양들이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요.. 엽차(葉茶)이든 커피이든 차()를 마실 때에 또는 차를 마신 사람이 그렇게 차를 마셨기에

생겨나는 사고가 많습니까? 아니면 술을 마시는 중에 또는 마신 사람으로 인하여서 술을 마셨기 때문에

일어나는 사고가 많습니까..

 

 

그래서 저는 다도(茶道)보다 우선 주도(酒道)를 먼저 학교 같은 공식 교육기간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상기한 바와 같이 몸에 배어진 차() 생활이 주는 유익 보다는 역시 몸에 배어진 술()

생활의 폐해가 더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은 자칫 그 술을 마시는 사람 당사자는 물론 주변

사람들의 삶의 모양을 나쁘게 만들어 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좋은 모양 형성을 위해서 다도(茶道)

가르친다면 그보다 먼저 사람과 사회의 안전과 화목을 위해서주도(酒道)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20152월에 퇴교길 무렵에 일어나 여고생 3명이 생명을 잃었다는 보도기사를 그때 보고는 쯧 하는 마음에 메모하여

놓았던 것을 최근에 다시 보고 그리고 그러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고 한 가정을 파괴하며 우리 사회에 불안과 염려를

늘 가중시키고 있는 이러한 음주로 인한 사건들의 여전한 팽배와 확산을 보며 작금의 코로나19 사태가 마치 없었던

일처럼 진정되고 사회가 회복 된다고 하더라도 그에 이어 우리가 속히 코로나19의 퇴치 모양으로 열심을 다해 없애야

할 것이 바로 음주로 인한 폐해들이 아니겠는가 하여 누군가는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주겠지 하는 기대를 가지고

이 글을 씁니다.

 

 

TV에서 보셨습니까? 자금의 이러한 코로나 바이러스 국면을 맞아 생겨난 새로운 음주 운전 단속 풍속도를 말이지요.

허허. 지그재그 차선을 만들어 놓고 단속하는 모습입니다.. 그냥 웃어버리기에도 무엇한 그 모양을 보며.. 또 지금까지

있었던 음주운전사고들의 끔찍한 모양들을 떠올려 보며 뭔가 모를 것에 대한 휴 하는 깊은 한숨과 탄식과 또 괜한

화딱지로서의 분노가 뒤섞인 마음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목사이기는 하지만 술은 입에도 대지 맙시다라고 는

평소에도 하지 않고 대신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술을 상식의 정도를 벗어나서 무엇에 어떠한 기준으로이든 단속과 질시(疾視)의 대상이 될 만큼은마시지 맙시다 라고요.

무엇을 어느 만큼이라도 강제로 하여야 하는 대상은 어린아이들이나 스스로는 감당 못할 병력이나 질환이 있는

사람 또는 사회적으로 성숙치 못한 사람들이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우리들이사회의 평안을 만들고 이루어가는 이들이 되기 위하여서는 올바르고 성숙한이들이

되기를 스스로 힘써서 그렇듯 음주의 정도를 넘어서지 아니하는 것으로 나와 타인의 위험을 초래하지 아니하는

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드라이버 되신 분들이시여, 음주운전 제발 하지 마세요.. 

 

-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20331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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