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우(khw***) 2020-02-25 16:24:30
뜻하지 않게 창궐하여 만연의 모양을 더하여 가고 있는 ‘코로나19’의 확산의 모습을 바라보며 누구라도 불안하고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 될 것입니다. 저희 마을은 강원도 산속 리 단위의 조그마한 마을이라서 이겠지요.
아직까지는 코로나19의 직접적인 체험모양과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만, 전국이 그 확산의 모양에서 안전하지
않은 만큼 언제까지 그러겠습니까.. 그래서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간절히 기원하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도
그러하며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앞줄에 서 있는 ‘목사의 한 사람’으로서
더욱 간절함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이러한 때에 합심이라는 말을 생각하여 봅니다. 합심(合心) 여러 사람이 마음을 한 데 합침. 이라고 하는 설명이 있는데
과연 멋지고 힘이 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돌아보아도 그렇듯 여러 사람이 ‘합심’한 모양으로 이겨내지
못한 일도 사건도 사안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마음을 ‘하나로’ 합친다고 하는 것은 그렇듯 ‘가장 강력한 힘’을
만들어내기 때문이지요. 총칼이 무섭고 핵폭탄이 무서운 것이지만 그러한 것들조차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사람들의 합심’이며 역대 어디의 어떠한 폭력정권도 그것을 이겨낸 예로 남아있는 것은 없습니다.
조금 전에 뉴스를 보니 ‘신천지’에 이어 ‘명성교회’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나왔다고 하며 더구나 그 확진자가
부목사 지위를 가진 교역자라고 합니다. ‘신천지’는 우리나라 정통 기독교 교단들로 부터는 ‘이단’으로 정죄되어진
‘종교 집단’으로서 기독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집단이지만 그들이 기존 교회들처럼 교회(敎會)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성경(聖經)을 사용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지라 일반인들에게는 ‘기독교 교회’라고 오해되고 인식되어 있습니다.
그들 집단의 이단성을 논하는 자리가 아니어서 넘어가기는 합니다만.. 기존교회들도 ‘벽과 천장’이 있는 예배당(拜堂)에서
예배를 하는 외형은 다 비슷한 것이기에 감염의 소지가 있으며 그래서 명성교회의 일도 심히 우려가 되는 바입니다.
교회가 이러한 감염병의 추이를 살피면서 “예배를 드리지 말자.”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교회 건물 안에
한 데 모여서’ 하는 것만큼은 보류하고 연기하고 취소하여 이 같은 감염병의 확산을 방지하고 막아내자 고 하는 것은 옳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예배’란 물론 ‘함께 모여’ 하는 공동예배가 가장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경우에는 혼자서도 할 수 있고 두어 사람이 모여서도 할 수 있는 것으로서 병상, 산속이나 바다 위 또는
전쟁터에서도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예배모임의 형태와 모임에 대하여 기존의 좋은 모습과 진행을 유지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을 고집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피치 못할’ 상황이며 또한 우리 모두의
건강생활과 직결되기에 성도는 물론 불신자들도 지금이 가장 지혜로워야 할 때입니다.
이러한 당면상황에 각 교회들에게 숙지 및 실천 사항으로 권면되어지는 총회고지는 예배당에 ‘손 소독제’를 비치할 것,
기침과 발열이 있는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 할 것 그리고 지금에는 ‘신천지 교인들의 출입을 막을 것’ 등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은 탁상에서 정하여지는 원론적인 수준의 것들이지 각 교회들이 어떻게 ‘주일예배를 드리러 오는’ 사람들은
들어가지 말라고 예배 함께 드리지 못한다고 그렇게 할 수 없다며 기침이며 체열이며 신분을 확인하여 가면서 문전박대의
모양으로 돌아가게 할 수가 있겠는가.. 그것이 과연 현실적인가.. 그 보다는 차라리 교회 문을 닫는 것으로 공동예배
공간을 폐쇄하고 성도들에게 ‘가정예배’를 권면하는 것이 훨씬 더 지혜로운 일이라고 보여 집니다.
그리고 그렇듯 수만 명 수천 명 아니 수백 명 모이는 교회들이 다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그 각각의 교단 총회의
어르신들이 신속이 ‘금 번 사태’에 대한 지혜로운 처방을 내어놓고 교회들의 협조를 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상당기간
‘예배중지’ ‘모임중지’ ‘교회 출입 금지’ 등 그야말로 ‘과하다 싶을 정도의’ 단속의 모양을 가질 때가 충분히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기회를 빌려 여러 교회목사님과 성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은 오직 믿음을 외치면서 싸우거나 이겨내야
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첫째 주의하고 둘째 기도하며 셋째 지혜를 모을 때인데 여기에 가장 큰 기둥으로
우리에게 주심으로 구할 모양은 바로 합심(合心)입니다.’ 여기에 ‘첫째가 왜 주의이냐? 기도가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딴죽을 걸지 마십시오. 분명히 첫째는 ‘주의’입니다. 자신의 만용(蠻勇)을 믿음으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믿음’은 ‘지혜’와
결합될 때에 강력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지 ‘믿음’ 그 자체만으로는 그렇듯 ‘만용’으로 나갈 소지가 농후하다는 것을
늘 유념하여야 합니다.
대부분의 ‘이단(異端)사설’들이 그렇게 발생되어 나온 것이라는 것을 하시라도 잊지 마십시오. 그래서 다시 말씀드립니다.
따라서 이러한 금번 사태에 즈음하여서는 ‘용감한 믿음의 모양’이 되시기 보다는 ‘주의하는 믿음의 모양’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의한다고 하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며 지혜롭지 못한 용감함은 ‘비참의 나락’으로 내달리기 쉬습니다.
‘믿습니다!!’하고 소리치면서 불구덩이로 뛰어든다면 이 세상 어느 누구라도 분명히 크게 다치거나 죽게 될 것이라고
목사 된 제가 ‘믿음 없는 소리’를 하여도 용서하십시오. 이러한 기회에 우리는 ‘믿음의 오해’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이 왜 교회들에게 환난을’겪도록 하십니까? 라고 말합니다. 목사님들에게 그렇게 질문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그것을 알겠습니까? 목회자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모두 다 알고 설명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곧 하나님 같은 이라 할 것이겠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하늘의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알 수 없는’ 오직 하나님의
뜻과 권세 아래 있는 일들이 있는 것이며 그것에 대하여서 굳이 알려고도 설명하려거나 풀이 하려고도 하지 마십시오.
우리들이 할 일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끝까지 잃지 않고 이 같은 사태를 당하여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주의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일로 많은 사람들이 그 진정과 퇴치 그리고 치료와 회복을 위하여 전심전력으로 수고와 땀을 흘리면서 연구하기를
계속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바로 그러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이 방면에 관련하여 아무런 아는
바도 배운 바도 없으면서 ‘오직 믿음으로’ 치료하겠다고 나서지 마십시오. 그러한 이들이 바로 ‘감염의 확산을 더하는’
역할을 갖게 됩니다. 지금은 물론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는 것 등에 휩싸이지 말아야 하지만 자칫 성도들의 모양이
‘믿음의 만용’으로 나아가려는 것을 교회와 목사님들은 우선으로 막아내야 합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이 사태를 진정시키고 물리칠 ‘합심기도회모임’을 하겠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제발 부탁드리고 권면
드리거니와 그렇게 ‘모이지 마세요’ 물론 기도를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 속에서의 기도는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가정에서 하시기 바랍니다. 또 마스크를 쓰고 하셔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기도 할 때에 마스크 착용여부를
불경으로 따지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지금이 ‘신령과 진정으로’ 기도할 때입니다. 그러나 또한 몸으로는
주의하고 영으로는 기도하십시오. ‘영의 기도’가 물론 더 중요하지만 많은 이들의 시선은 우리들의 영을 바라보지 못하고
육신만을 바라보기에 그러한 이들을 배려하는 모양으로라도 육신의 주의를 더하여 아무에게도 불안이나 염려를 더하여
주지 마십시오. 이것이 바로 올바른 하나님 자녀들의 모습이며 마땅히 ‘칭찬 듣고 상급 받을’ 모양이며 모습입니다.
그래요. 지금은 성도와 믿지 아니하는 이들 모두가 마음을 합하여야 할 때입니다. 성도는 기도하고 믿지 아니하는 이들은
기원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합한 구함의 모양을 ‘합심기도’로 받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성도들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그래서 오셔서 우리 모두를 위하여
대속제물이 되셨으니 지금 이 사태의 고통 또한 물리쳐 주실 것입니다. 코로나19 주의하고 더 주의하세요. 그러나 또한
어떠한 사안이든지 이 악한질환의 물리침을 위하여 서로 협력하고 배려하고 도와주는 ‘합심(合心)’의 모양을 잃지 마세요.
그래요 우리 모두 마음을 하나로 합하십시다. ‘합한 마음의 모양’을 기도로 받으시며 기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치유의 역사’를 펼쳐주시고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20225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음주운전은 이제 그만 (0) | 2020.04.01 |
|---|---|
| 바다와 짜장면 (0) | 2020.03.31 |
| MRI를 찍고 나서 (0) | 2020.02.18 |
| 고들빼기김치에 아버지가 생각난다 (0) | 2020.02.17 |
| 운명을 탓하고 원망하기보다는 (0) | 2020.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