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눈물의 힘

덕 산 2020. 1. 3. 13:57

 

 

 

 

 

 

 

 

김홍우(khw***) 2020-01-02 21:03:08

 

 

오늘 아까 오전에 우리 마을 중학교 졸업식에 다녀왔습니다. 강원도 산골짜기에 위치해 있으며 단위 마을이기는 하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어서 저희 교회에서는 매년 졸업식 때마다 졸업생 장학금을 전달합니다. 전교생이 12명인데

그 중에 6명이 졸업을 하다 보니 어쩐지 학교 운동장이 더욱 썰렁하여 질 것 같아서 신입생이 많이 들어오기를..

하는 마음의 기원을 하게 됩니다. 금년 졸업식에는 식순에 졸업생 소감 발표순서가 있었는데 졸업생 6명이

한 명씩 나와서 학교생활 회고와 감사를 하는 순서입니다.

 

남자 졸업생들의 소감이 이어지다가 유일한 홍일점 여학생의 순서가 되었는데 허허. 여자아이라서 더욱 그러하였겠지요.

처음부터 눈물을 훔치면서 목이매인 소리로 졸업소감을 이어가더니만 결국에는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겨우 겨우 끝까지

갔습니다. 눈물의 소감장면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고 지금도 마음에 둔 영상으로 떠올려지는 군요. 다른 남자 졸업생

아이들도 각각 진실하고 재치 있게 또 똑떨어지는 모습으로 소감들을 전하였지만 유독 그 여학생 아이의 소감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그 눈물때문입니다.

 

그래서 눈물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사람이 흘리는 눈물을 그 성분으로 분류하면 이런 것

저런 화학성분들이 몇 가지 섞여져 있는 이라고 합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분석을 눈물의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학적 성분분석을 떠나 그 눈물의 내용, 역할 등을 생각하면서 거기에서 정답을 찾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제위께서는 이 눈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선 눈물은 호소력을 동반하지요. 그것도 강력한 호소력으로서 상대의 관심과 주목 그리고 마음을 열게 하고 또 변화를

일으키게도 합니다. , ‘눈물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그래서 있는 것인데.. , 이제는 그 말도 옛말이 되어가고 있는

형국이라 하기는 하겠습니다마는..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그 여학생의 눈물의 소감은 제 마음 속에 들어왔습니다.

소감의 내용은 다른 학생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눈물로 적셔지는가운데 전하여졌다는 것

하나만으로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눈물.. 어떤 이는 그것을 약자의 전유물로서 특히 여자들이 당면 문제의 타개책으로 종종 사용되어지는 것인데

그 대부분이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라고 하기도 합니다만 쯧, 물론 그러한 경우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눈물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비록 연기자의 눈물처럼 보여주기 위한 쇼(Show)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몰입하여 TV 또는 영화 스크린을 바라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 공감으로서의 감동이 줄어드는 것이 아닌 만큼

그 눈물의 역할을 다 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눈물의 가치는 진정에서는 물론 어느 정도 가식의

모양 속에서도 그렇듯 주르르 흘려지며 자신을 보여주는 그 현장의 자리에 언제나 살아있다는 생각입니다.

 

누구든지 눈물과 관련된 추억이 하나쯤은 있을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그 당면되는 경우에 대한 반응도 다르고

또 가지고 있는 기질적 속성도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남자들은 눈물을 애써 참는 편이고 여자들은 그 보다는 자유롭게

눈물을 흘립니다. 남자의 눈물이라.. 제가 보면서 깊은 인상을 받은 사나이의 눈물로 기억되는 장면은 영화

스팔타커스에서입니다.

 

검투사와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켜 로마 군대와 싸웠지만 패배했고, 모두 포로가 되어 한 곳에 붙들려 있던 장면이었지요.

로마군들은 그 중에 스팔타커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색출하려 합니다. 처벌과 처형의 본보기를 보이기 위한 것이 분명하지요..

누가 스팔타커스인가?” 하면서 예리하게 살피는 로마군을 바라보면서 앞쪽에 있던 스팔타커스는 자신을 숨기고 숨어버리는

치욕의 모양을 남기지 않으려고 분연 일어서는데 이를 알아챈 다른 노예가 재빨리 먼저 일어나면서 내가 스팔타커스다.”

라고 외칩니다.

 

그러자 또 다른 노예가 아니다! 내가 스팔타커스다.”라고 하면서 일어섰고 곧 이어 많은 노예들이 앞 다투어 일어나면서

아니다! 내가 스팔타커스다.”라고 하면서 진짜 스팔타커스를 감추고 보호하는 장면에서 이미 일어서 있던 진짜 스팔타커스

역을 맡아 열연한 당대의 명우 커크 더글라스가 굵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던 장면입니다. 죽음 앞에서도 의연히 나섰던

사나이들의 선 굵은 우정의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글이 서툴러서 좀 엉뚱한 방향으로 비약이 되었습니다만, 저의 청소년 시절 이었던 1960년 대 속에서도 대스타였던

커크 더글라스가 제작자로 자신의 사재를 다 털어서 만든 시대역작 스팔타커스는 훗날 자꾸 꺼내어 다시 보아도 역시

명작이고 역작입니다. 또 우여곡절 끝에 주목 받던 신예 스탠리 큐브릭감독이 메가폰을 잡아서 더욱 멋진 영화가 되었지요.

그토록 젊고 단단한 근육질이었던 커크 더글라스는 백세를 넘긴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어 가끔씩 외신에도 등장을 합니다만

그래요. 건강 100세를 훨씬 넘어서 건강 110세의 모습을 보여 주기를 응원합니다.

 

 

 

 

 

 

 

다시 눈물을 이야기로 돌아와 본다면 저는 먼저 저의 어머니의 눈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때 벌써 환갑

즈음이 되셨고 못된 병 중풍으로 한 쪽 손발을 잘 쓰시지 못하셨던 어머니가 그 어눌해진 말투로 저에게 무엇인가를

시키셨는데 저는 오직 귀찮다는 이유로 매몰차게 거절을 하였던 것이지요. 어머니는 저와 잠깐 눈을 마주치셨는데

이내 고개를 돌리셨고.. 우시는 것이 분명하였습니다. 저는 휭하고 대문으로 나가려고 하다가 너무 마음이 아파서

다시 어머니에게 가서는 알았어요.. 내가 가서 그렇게 할 께요..” 하였던 것입니다.

 

그때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는데 두 눈에 눈물자국이 선명하였지만 저의 그 말을 들으시면서 애써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으시며 그래.. 그럼 고맙지..” 하시던 젖은 목소리를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휴 얼마나 다행입니까.. 만일 그 때 제가

그렇게라도 돌이켜 순종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가슴을 치면서 지울 수 없는 슬픔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이 세상의 자녀들이여 어머니 말씀에 순종합시다.

그래요. 부모님 말씀에 순종합시다. 그것이 물론 좋은 일이지만 또한 곧 나의 평안을 만들어 놓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도 꼭 그리하여야 합니다.

 

그러고 보면 주로 여자의 눈물 그리고 역시 여자인 어머니의 눈물 흘림 등이 그 감동과 효험이 큰 것 같습니다. 그래요..

아무래도 남자들 보다는 여자들이 눈물이 많고.. 그래서 상기한 졸업생 여학생도 그러한 공적인 자리에서도 주체치

못하는 눈물을 쏟아낸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눈물은 상대의 마음을 파고들며 감동과 변화를 일으키기도 하고

누구에겐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남겨주기도 하지요. 아마 모르기는 해도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들께서도 그러한

눈물의 추억들이 최소한 한 두 개씩은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번 오랜만에 돌아보세요..

 

벌써 반세기도 훨씬 전 초등학교 시절에 숙제를 안 해온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회초리로 손바닥을 다섯 대씩 맞은 적이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남자아이들은 그 아픔에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낑낑 눌러 참는 모습들이 역력하였지만 함께

맞은 한 두 여자아이들은 엉엉 목을 놓아 울어서 수업이 잠시 중단 된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무엇보다도 여자로서

다른 친구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부끄럽고 창피한 일을 당한 것에 대한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분함과 억울함과

슬픔이 복합된 모양이 분명합니다.

 

 

 

 

 

 

정신분석학의 대가 프로이트에 의하면 여자는 3살 정도만 되어도 성별을 분명히 구분하고 여성으로서의 자기 방어적

기재를 형성하여 갖는다고 했는데 그때 아이들은 7~8살 때이니까 더 분명하였을 것이라고도 생각됩니다. 허허. 그 역시

여자의 눈물인데 역시 그 눈물로 인하여 이제는 근 60년 가까이 된 당시의 사건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게 된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주로 여자들의 눈물에서 여러 가지 힘(!)의 발생이 증명되어지고는 있지만 드물게 흘리는 남자들의 눈물

역시도 입술과 손발이 해내지 못하던 일을 능히 해내곤 하는 경우를 종종 보여주곤 하지요. 우리나라 속담에는 남자는

평생 세 번 울어야만 한다는 것이 있는데 저는 아니 백 번 쯤 울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싶군요. 남자

아이들은 누구나 울보’ ‘징징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하여서 꾹꾹 눌러 참고 또 남자는 우는 게 아니다라는 말들이

남자들의 영웅심을 부추기는 경우들이 많이 있는데 아니, 남자도 그 적재적소에서 펑펑 울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적재적소는 지금 우리 주변 사방에 얼마든지 널려있습니다.

 

눈물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항상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으며 능력을 실어옵니다. 물론 그것을 의도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바로 악어의 눈물같은 모양이 되어버리겠지만 내 마음 속 깊은 곳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진정이라는 이름의

두레박을 타고 올라오는 눈물은 나의 삶을 변화시키고 타인을 선도하기도 하는 것으로 우리 사회에 유익을 주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습니다. .. 익히 아시겠지만 지금은 눈물이 말라도 너무 마른 시대입니다.

 

반세기 전 미워도 다시 한 번이나 스잔나같은 영화들을 보면서 손수건을 적셨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들과

언니들의 순수하고 순전하며 그렇듯 나하고는 별 상관없는 누군가의 형편과 처지 그리고 그 사정까지 보듬어 주며

함께 펑펑 울어주던 그 때의 모습이 결코 못나고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금은 감히 넘볼 수 없는 모든 마음의 풍성함과

때 묻지 아니한 마음과 정신의 건강함 때문이었다는 것을 이제 와서야 새삼 다시 더 깨닫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마구잡이 울보는 물론 되지 말아야 하지만 눈물의 힘만큼은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하고 또 그러할 때에 우리 사회가

선한 양심으로 달려가는 동력으로 얻을 수 있고 또 그렇게 삼음이 마땅하다고 생각되어 애써 서투른 글로 옮겨 보았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 산골어부 202012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