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가
- 이 육 사 -
구겨진 하늘은 묵은 얘기책을 편 듯
돌담울이 고성(古城)같이 둘러싼 산기슭
박쥐 나래 밑에 황혼이 묻혀오면
초가 집집마다 호롱불이 켜지고
고향을 그린 묵화 한 폭 좀이 쳐.
띄엄띄엄 보이는 그림 조각은
앞밭에 보리밭에 말매 나물 캐러 간
가시내는 가시내와 종달새 소리에 반해
빈 바구니 차고 오긴 너무도 부끄러워
술래 짠 두 뺨 위에 모매 꽃이 피었고.
그네 줄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더니
앞 내강에 씨레나무 밀려 나리면
젊은이는 젊은이와 뗏목을 타고
돈 벌러 항구로 흘러 간 몇 달에
서릿발 잎 져도 못 오면 바람이 분다.
피로 가꾼 이삭에 참새로 날아가고
곰처럼 어린놈이 북극(北極)을 꿈꾸는데
늙은이는 늙은이와 싸우는 입김도
벽에 서려 성애끼는 한겨울 밤은
동리의 밀고자인 강물조차 얼어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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