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을 켜 들고 서 있는 한파 / 정민기
뒷골목과 어울리는 깡패처럼 눈을 부라리며
밤늦어도 가로등을 켜 들고 서 있는 한파
귤빛 나는 서러움으로 얼음을 꽁꽁 덮고
오늘은 몸이 아프다고, 햇빛 드리우며
낚시질하는 사람을 문전 박대하는 저수지
부록에도 기록되지 않을 역사가 꿈틀거린다
찬 바람에 발목 잡힐 일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데
개가 물고 사라진 슬리퍼 한 짝처럼 개집 위에 떠 있는
잔뜩 겁을 먹은 것처럼 웅크린 달을 보고 있다
건조한 날씨는 지루할 정도로 계속되고
사과 한 알처럼 머리를 굴리며
골똘히 생각에 반쯤 잠겨 으스스 떨리는 겨울날이다
가뭄이라도 좀처럼 마르지 않는 어둠이
거리를 노래하듯 경쾌하게 흐르느라 정신없다
너에게 가는 길목에 차갑게 서서
앙상한 빈손을 처량하게 흔드는 나무 한 그루
즐겁지 않아도 즐거움을 꼭꼭 씹어 먹고
슬프지 않아도 슬픔을 꼭꼭 씹어 먹고
비 오는 날에 밤하늘이 되어 달을 한 알 삼킨다
고독하더라도 나는 폭탄처럼 터지지 말자는
화석처럼 단단히 굳은 각오가 한 장 구름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이리저리 떠다니고 있다
한파라서 춥긴 해도 지난 추억 한 잔 마시며
차가운 바람의 외마디 소리 음악처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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