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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천(炎天) / 마경덕

덕 산 2024. 6. 19. 08:48

 

 

 

 

 

염천(炎天) / 마경덕

 

산기슭 콩밭에 매미울음 떨어진다

울음을 받아먹은 밭고랑 열무 바짝 약이 올랐다

상수리 그늘에 앉아 쓰르 쓰르

속 쓰려, 쓰려

혼자서는 속 쓰려 못산다고

짝을 찾는 쓰르라미 울음이 대낮 콩밭보다 뜨겁다

이놈아 그만 울어!

불볕에 속곳까지 흠뻑 젖은 할망구

등 긁어줄 영감 지심* 맬 딸년도 없어 더 속이 쓰리다

호미 날에 바랭이 쇠비름 명아주 떨려 나가고

청상으로 키운 아들이 죽고 콩밭짓거리**로

김치 담궈 올린 외며느리에게서 떨려 나온 할멈도

쓰름쓰름 다리 뻗고 울고 싶은데

그동안 쏟아버린 눈물이 얼마인지, 평생 울지 못하는

암매미처럼 입 붙이고 살아온 세월

슬픔도 늙어 당최 마음도 젖지 않고

콩 여물듯 땡글땡글 할멈도 여물어서

이젠 염천 땡볕도 겁나지 않는다

팔자 센 할멈이나 돌밭에 던져지는 잡초나

독하긴 매한가지

살이 물러 짓무르는 건 열이 많은 열무

손끝만 스쳐도 누렇게 몸살을 탄다

호랭이도 안 물어가는 망구도 살이 달고

열무같이 풋내 나던 시절이 있었던가

폭염 같은 세월에 쪼글쪼글 졸아붙은 할망구

생전에 영감도 못 본 엉덩이를 훌러덩 까고 앉아

밭고랑에 쫄쫄쫄 오줌을 눈다

오줌발에 발등이 젖은 참나무숲은

산그림자 따라 슬금슬금 콩밭으로 내려오고

쓰르……쓰르……쓰르…

호미 날에 울음이 뚝 잘렸다

해는 식어도 고랑 고랑 펄펄 끓고

하루치 울음을 퍼낸 뒷산이 적막하다

 

* 지심 - `풀(草)`의 전라도 사투리

** 콩밭짓거리 - 콩밭 고랑 사이에 심은 야채, 주로 김칫거리를 말함 . 전라도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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