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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4월 / 이시영

덕 산 2023. 4. 19. 10:54

 

 

 

 

 

아, 4월  / 이시영 

 

감자 대를 뜯다가도 나는 너를 기다렸다

오늘도 동냥 나가 나는 너를 기다렸다.

강 건너 버들잎 날리면

보리밭 둑을 타고 너는 오리라

뒷산에 진달래 붉게 울면

목발을 짚고 너는 오리라

땀에 젖은 얼굴 빛나는 함성

그날의 총탄 속을 뚫고

너는 다시 오리라

거친 땅이 낳은 아들 문둥이 아들

누더기 속에 간 오히려 깨끗한 사랑

두 팔에 덥석 안을 날은 오리라

아아 몇몇 해던가

먹구름을 몰아내면 또 같은 먹구름

소나기를 피하면 더 거센 소나기

너는 오지 않고 쉽사리 오지 않고

종살이에 지친 누이들

칡꽃이 희게 울 때 또 다른 주인 찾아 몸 팔러 갔네

종달이 빈 밭에 날 때

힘깨나 쓰는 동생들 서울 가 떠돌이가 되었네

애비 같은 비렁뱅이 되었네

아아 몇몇 해던가 기다림의 나날

한번은 박차고 나아가 맞이해야 할 날

가난하지만 자랑스럽게 우리가 우리 차지해야 할 날

크나큰 슬픔의 날 별빛 해방의 날 오리라

바로 너는 오리라 꽃수레 타고

가랑잎만 굴러도 나는 너를 기다렸다.

다리 밑 움막 열고 나와 나는 너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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