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글

파장 / 법정스님

덕 산 2022. 6. 24. 13:56

 

 

 

 

 

파장 

 

시골에서 장이 서는 날은 흐뭇한 잔칫날이다.

날이 갈수록 각박해가는 세상임에도

장터에는 아직 인정이 남아 있다.

도시의 시장에는 차디찬 질서는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미가 없다.

 

하지만 시골 장터에 가면 예전부터 전해 오는

우리네의 포근한 정서와 인정이 넘친다.

백의민족의 자취를 오늘 우리들은 찾을 길이 없지만,

시골 장터에서는 우리가 아직도 백의민족임을 확인하게 된다.

 

언젠가 정부에서 시골의 장이 소비적이고 비능률적이라는 이유로

없애버린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몹시 아쉽고 안타까웠다.

유통(流通)이 더딘 궁벽한 산간벽지나 시골에서는

닷새에 한 번씩 서는 장이

생활필수품을 사고파는 유일한 기회일 뿐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소식을 전하거나 알아오는,

그리고 우체국과 면사무소 같은 데 들러

볼일을 보게 되는 날이기도 하다.

 

어디 그뿐인가.

수십 리 밖에 있는 일가친척을 그날 만나볼 수 있고,

성글었던 사이끼리 주막에 마주 앉아 회포를 푸는가 하면,

미적미적 미루던 혼사(婚事)를 매듭짓게 되는 그런 날이기도 하다.

 

소비적이고 비능률적인 거야

도시의 백화점이나 상가가 더하면 더했지

시골 장보다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비인간적으로만 굳어가는 요즘의 풍토에서

시골의 장이 없어진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유일하게 남은 인간적인 터전마저 막혀 버리는가 싶었기 때문에

그토록 서운하고 안타까웠던 것이다.

차디찬 질서보다는 질서 이전의 그 훈훈한 인정이 그리워,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시골 장날을 즐겨 찾는다.

 

장구경은 아무래도 파장이 제격이다.

아침 초장은 먼 곳에서 모여드느라고 활짝 펼쳐지기 전이라

좀 싱겁다.

마치 본 경기에 들어가기 전에

조무래기들이 치르는 오픈 게임 같아서다.

그리고 한창 때의 장은

너무 소란스럽고 붐벼서 구경할 만한 여백이 없다.

 

 

 

 

 

 

 

하지만 파장은 듬성듬성 자리가 나서 이곳저곳 기웃거릴 만하다.

장꾼들이 한낮에 비해 뜸해졌고,

더러는 주막에서 혀 꼬부라진 소리가 오고간다.

장돌뱅이들은 장이 기우는 걸 보고

그저 헐값에 떨이를 한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친다.

 

그 소리를 듣고 순진한 시골 사람들은

무슨 횡재라도 잡은 듯이 모여든다.

한쪽에서는 눈이 번쩍거리는 사내 몇이서 돈 놓고 돈 먹으라고

넌지시 미끼를 보이면서 야바위를 시작한다.

 

재작년이던가,

이른 봄에 남도(南道) 쪽으로 행각을 할 때였다.

하동 쌍계사에서 화엄사로 가기 위해 화개에서 버스를 탔다.

섬진강을 끼고 40리쯤 거슬러 올라가면 화엄사 입구에 닿는다.

절 쪽으로 길을 잡으려다가 구례읍에서 흰옷 입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무리 지어 오는 걸 보고,

아하 오늘이 구례읍 장날이구나 싶어 장 구경을 가기로 발길을 돌렸었다.

 

그야말로 가던 날이 장날이었던 것이다.

보아하니 장은 이미 기울고 있었다.

장꾼들이 한물 빠져나간 뒤인 듯

여기저기 지푸라기며 신문지 쪽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펼쳐놓은 전 마다 시들해 보일 정도로 생기를 잃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오랜만에 보는 장이라 흥겹기만 했다.

거기에다 15, 6년 전 이 장터를 찾아다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쌍계사 탑전(塔殿)에서 지내던 시절,

한 달에 한 번씩 이 장터에서 장을 보아다 먹었었다.

그 시절 산골에는 버스도 다니지 않던 때라

장날이면 트럭이 절 동네 어귀에서 장터까지 다녔었다.

어둑어둑한 새벽, 덮개도 앉을 자리도 없는 트럭 위에 올라

차가운 강바람에 얼굴을 할퀴면서 장터에 내리면,

그때를 맞추어 여기저기 움막에서 물씬물씬 김이 서려 올랐다.

 

빈속이라 팥죽을 두어 그릇 비우고 나면

얼었던 몸이 풀리고 노곤한 졸음이 왔다.

돌아가는 길에는 다시 그 트럭 위에

붐비는 짐짝과 함께 실려 가곤 했었다.

 

 

 

 

 

 

 

생기를 잃고 기울어가는 파장 한쪽에서

왁자지껄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웬일인가 하여 그쪽으로 가보았더니

구경거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건강하게 생긴, 예의 돈 놓고 돈 먹으라는

야바위꾼과 장꾼 사이에 시비가 붙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수룩하게 생긴 시골 장꾼이

불량하게 생긴 세 사람의 야바위꾼한테 몰렸다.

들리는 곡절인즉,

야바위꾼이 속임수를 쓰다가 발각되어

장꾼이 잃은 돈을 내놓으라는 데서 시비가 시작된 모양이었다.

 

세 사람의 야바위꾼들은 핏발 선 눈을 굴리면서

언제 속임수를 썼느냐고 때릴 듯이 대들었다.

곁에서 판단하기에도 그들이 속임수를 썼음이 분명한데,

그쪽에서 도리어 큰소리를 치며 대드는 바람에

어수룩한 장꾼이 비슬비슬 물러서려는 참이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장꾼들이 모여들어

저 날강도들을 이번에는 그대로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고 고함들을 쳤다.

지난 장에도, 저 지난 장에도 저 패거리들이 속임수로

아무개 아무개의 돈을 몽땅 털어갔다고 야단야단이었다.

처음에는 기세등등하게 불량을 떨던 야바위꾼도

여기저기서 모여드는 장꾼들을 보고 드디어 기가 꺾이고 말았다.

 

이때였다.

둘러섰던 장꾼들이 우르르 몰려들면서 야바위꾼들을 치고받았다.

한참 동안 얽혔던 덩이가 풀리는가 했더니,

어느새 야바위꾼들은 저만치 달아나고 있었다.

그때의 그 광경이 나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수룩한 시골 사람들한테서

어떻게 그 같은 용기와 투지력이 나왔을까?

새삼스레 인내에도 한도가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대낮에 번번이 속임수를 써서 사람의 눈을 속이고도

오히려 큰소리치던 그 몰염치한 날강도들은

그저 어수룩하고 선량하기만 한 시골 사람들을

힘없는 겁쟁이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네의 행패에 두려워하는 그 공포심을 이용하여

멋대로 속임수를 부린 것이다.

 

그러나 어수룩하고 무력한 듯한 겁쟁이들도 인내의 극에 달하면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필사적으로 맞서게 된다는 사실을,

불의와 횡포도 능히 물리칠 수 있다는

생명의 오묘한 이치를

나는 그날의 파장에서 거듭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잔치는 끝났더라

마지막 앉아서 국밥들을 마시고

빠알간 불사르고

재를 남기고

포장을 걷으면 저무는 하늘

일어서서 주인에게 인사를 하자

 

결국은 조금씩 취해가지고

우리 모두 다 돌아가는 사람들

 

모가지여

모가지여

모가지여

모가지여

멀리 서 있는 바닷물에서

난타(亂打)하여 떨어지는 나의 종소리.

 

파장을 보고 화엄사로 들어가면서,

‘잔치는 끝났더라,

잔치는 끝났더라,

마지막 앉아서 국밥들을 마시더라’하고,

 

미당(未堂)의 시 <행진곡>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외웠다.

 

- 법정스님의 “서 있는 사람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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