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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개똥벌레 / 고은영

덕 산 2022. 5. 31. 10:28

 

 

 

 

 

6월의 개똥벌레 

                - 고 은 영 -

 

 

열일곱 그 여름 염천에 고구마밭 긴 고랑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김을 매던 가난도

이다지 서럽지는 않았다

조 밭에 김을 맬 때도 잡초보다

조를 더 뽑아내던 내 아둔함

 

바다에 나가 우뭇가사리며 바다 해초들을

내 딴에는 하루 온종일 죽을힘으로 뜯어 담고

얼추 찬 바구니를 보며

오늘만큼은 할머니 칭찬을 받아 보려고 집으로 달려오면

영악하고 발 빠른 동생은 나보다 더 많은 양의

해초들을 쏟아 놓고 할머닌

동생보다 못한 게으른 년이라 바다에 나가서도

옷까지 죄 적셔 온다고 서슴없는 구박에 파르르 떨 던

그 시절도 나이를 먹은 지금만큼 서럽고 슬프지 는 않았다

 

 

 

 

 

 

어디를 가나 나를 마중하는 것이 있다

외. 로. 움 그리고 만삭 된 고. 독

헛헛하기만 한 그것들의 고요한 눈빛

아, 견딜 수 없이 노출되는 비루하고 추한 내 모습

가엽기만 한 인생과

목숨이 붙어 있는 것들의 고독과 나의 실어증

살다 보니 상처뿐인 가슴을 그만 들켜버리고

나는 새가 되고 싶어라

 

그러고 보면

생명이 있는 것들은

언제나 고독해 보이고 불쌍해지더라

사랑은 아무리 불러도 그저 그만하고

그 어디에도 인생의 정답은 존재하지 않더라

고독은 유월의 강가에서 개똥벌레로 부화하여

가상의 어둠 속을 날고 오월에도 춥더니 유월도 나는 춥다

나만 이런가

집에서는 겨울 스웨터를 껴입고 언제부터인가

개똥벌레를 가슴으로 비비면

배설하지 못하는 뭉툭한 슬픔 들이

지독한 발정으로 암 냄새를 풍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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