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자타령
김홍우 2020-10-30 20:27:15
“사주팔자 보아 드립니다. 당신의 사주를 확인하고 팔자를 고쳐보세요.”
라고 약간은 조잡하게 쓰여진 천을 대나무 깃대에 걸어놓고 길가에 앉아서 ‘점’을 보아주는 사람이 있고 자신의 점괘에 신경을 쓰며 그 앞에 앉아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심각하고 불안한 얼굴로 앉아있고 어떤 이는 웃는 얼굴로 일어서기도 합니다. 허허. 지금도 여전히 도심 길변이나 장이 열리는 장소 같은 곳 또는 조금 하적하고 조용한 동네 집들 사이에서도 어렵잖게 볼 수 있는 ‘길거리 점집’ 풍경입니다.
팔자(八字)는 사람의 한평생의 운수를 일컫는 말이라고 하지요 또 운수(運)는 사람에게 정해진 운명의 좋고 나쁨. 곧,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천운(天運)과 기수(氣)라는 사전설명입니다. 그런데 왜 구(九)자도 아니고 십(十)자도 아닌 팔(八)자를 이어가면서 ‘팔자’라고 하였을까.. 어떤 이는 팔(八)의 모양이 사람의 팔다리가 늘어진 모습과 비슷해서 그렇게 되었다고도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하자면 더 펴진 상태로 대(大)가 마땅할 텐데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물론 알려진 바 정답은 중국의 사주학에서 간지의 여덟 글자를 일컫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 같이 이 방면에 문외한인 사람은 우선 여덟 팔(八)자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면서 생각하기를 혹시 팔(八)자의 ‘늘어진’ 모양에서 삶의 고단한 모양을 떠올린 것일까요.. 반대로 편안함으로 늘어진 모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혹 그쪽일까요.. 쯧, 하긴 그래서 어느 쪽으로든 ‘팔자가 좋다 나쁘다’ 하는 말들을 하는 것이겠지요 라고 말이지요.
저와 같은 우리 기독교인들은 팔자라는 말은 쓰지 않고 대신 ‘은혜’라는 말을 쓰지요. 또 은혜란 팔자와 달라서 잘 된 것이든 안 된 것이든 같이 씁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개입하여주심에 의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은 지금 당장의 모습이나 형편으로 볼 것이 아니고 결국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유익한 좋은 길과 결과로 이어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평안합니다.
세상에서는 염려와 걱정 근심이 없는 사람을 일컬어 ‘팔자가 늘어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팔자(八字)면 팔(八)자이지 ‘늘어진 팔(八)자’의 모양은 또 어떤 것일까요.. 허허 말꼬리를 잡는 것이 아니라 팔자(八字)의 팔(八)자가 조금은 한가하고 여유로운 모양인 것 같기도 하여서 인데 그렇게 보아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요.. 또 ‘늘어지다’라고 하는 말에서는 한 여름 더운 날에 시원한 아카시아 나무 그늘 아래 나무 평상에서 대(大)자의 모습으로 드러 누어서 드르렁 낮잠을 청하는 모양을 연상케도 하는데 뭐.. 다 이유가 있고 형편의 사정도 있겠지만 아무튼 여유 있고 한가한 모습이라서 보기 좋고 또 편안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이들의 곁을 지나가는 지인들이 “팔자 좋다” 하면서 우스개 놀림소리를 하곤 하지요. 그러면서 “난 언제나 저렇게 누워 보나”하는 말들도 하는 것을 보면 그러한 여유와 한가함이 부러운 것이기도 한 것이 분명합니다. 한창 일을 하여야 하는 여름날 대낮 시간에 그렇듯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서 한가롭게 누워있는 사람은 그래서 ‘팔자 좋은’ 사람의 대명사입니다. 물론 그렇게 누운 사람도 깊은 속사정으로서의 내몰림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일반인들은 ‘사주팔자’나 ‘토정비결’ 같은 이름들에는 익숙하지만 사주학의 십이간지 등의 분류나 특색 등에는 별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팔자’라는 말에는 익숙한데 저 역시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많이 들어와서 익숙합니다. ‘타령’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악(樂)) 조선 때, 음악 곡조의 한 가지./ 광대의 판소리나 잡가(雜歌)의 총칭. 이라고 먼저 되어있지만 그 뒤에는 “어떤 사물에 대해 자꾸 이야기하거나 뇌까리는 일.” 이라고도 합니다. ‘새타령’ 같은 노래도 있지만 ‘돈 타령’ ‘옷 타령’ ‘처지나 형편 타령’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 타령의 대부분은 주로 자기 자신의 현재에 대한 불만을 원망의 마음이나 말로 토로할 때에 섞여 나오는 것으로 이를테면 ‘팔자타령’입니다. 허허
팔자타령이라.. 제가 보고 들은 여러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부부싸움을 격하게 하다가 동네 사람들이 뜯어 말리자 “어이그 내 팔자도 더럽지 저 딴 걸 마누라(혹은 남편 지애비 등)라고 만나서 이 고생을 하고 있지.” 하면 상대 쪽에서는 “야 내가 할 말이다 내가 할 말!!”이라고 악을 쓰며 소리치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모습을 두 어 번 본 적이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갈라 설 듯이 욕설을 퍼부어대며 씩씩거리기는 하지만 며칠 뒤에 보면 서로 팔짱을 끼고 시장을 가는 등 언제 싸웠느냐 하는 즐거운 모습들로 이어집니다. 쯧, 그래서 부부싸움을 칼로 물베기.. 라고 하지요.
쯧, 간지 여덞 글자이던 타령의 모양이든지 일단은 자기 자신의 지나온 삶과 나아가야 할 삶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돌아보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지만 ‘앞서 알아본다.’라고 하는 것에는 많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한 마디로 말하자면 사람은 자신의 앞날을 알 수 없고 소망하며 예측하기는 하지만 맞게 떨어지는 일은 극히 드물고 또 우연입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고 우주를 종횡하는 시대라고 하여도 ‘나의 내일’을 알 수 없고 알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사람입니다.
그러나 또한 그래서 참 다행입니다. 만일 사람이 자신의 내일 일을 알 수 있다면 또한 거기에 얽혀있는 다른 이들의 내일과도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미리 안다면 바꿀 수도 있는 것이며 바꾼다면 거기에서 바뀌어지는 것이 ‘나의 앞날’ 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관계로 물리고 물린 ‘사람들의 삶’ 속에서 각 사람이 자신에게 유리한대로만 나아가고 바꾸어 놓으려고 한다면 그 혼란과 다툼을 지옥의 모양이 될 것입니다.
누구든 내일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100살 넘게 살 수도 있습니다.. 그 어느 쪽이 될 것인지는 명백히 알아낼 수 없지만 사람들은 자기 좋은 쪽으로 희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더욱 노력하고 수고하고 애를 쓰며 건강도 지식도 경험도 챙깁니다. 또 그것으로 많은 부분의 내일의 모습과 모양이 보장되고 거기에 맞추어지기도 합니다. 게으르지 아니하고 부지런히 나의 삶을 사랑하고 계속적으로 그 가치를 부여하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잊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궂은 일, 미운 사람, 나를 궁지에 몰았던 일들을 잊는 연습이며 훈련 말이지요. ‘잊지 말고 양식을 삼으라’는 이들도 있지만 일단은 미움과 원망의 모양은 잊어야 양식을 삼을 수 있는 것이며 이러한 이들이 다 되어서 ‘팔자(八字)에 연연해 마시고’ 늘 영육 간에 현명함과 지혜로움으로 더욱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 산골어부 20201030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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