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러나
김홍우(khw***) 2020-08-31 10:45:35
“이 또한 지나가리라.”
는 말은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우리 사회에 자위(自慰)와 자위(自衛)의 말로써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재기와
회복의 힘을 북돋아 주는 말이었지만.. 그러나 작금의 코로나19 사태를 놓고서 이 말도 말하는 이도 거의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지금이 이 말이 가장 필요한 때가 아니던가요.. 그런데 왜..
아마도 너무나도 급급한 우리 모두의 현재이기 때문인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똥 모양으로 다른 겨를이 없이 급하게 어서 꺼야 하는 일이므로 빨리 떨어내고 털어내기에 바쁘며 물을 찾고 약을 찾아
꺼내와야 하는 일에 바쁜 탓으로 가만히 앉아 바라보면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고 있는 모양은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은 약간은 마음과 시간에 여유가 있을 때에 먼 하늘 또는 멀리 지평선 모양 등을 바라보면서 깊은 한숨 중에 하는 말로서 어울리는 말이고 지금처럼 시급을 다투는 급한 문제에 당면하여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안절부절 못하는 상황에서 나오게 되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일이란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고 바라보면서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이 있는가 하면 지금 당장 ‘빨리 털어내고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있음을 알 수 있지요. 그리고 우리 모두는 지금 몇 살이 되었든지 지금까지 그러한 와중을 날마다로 살아왔습니다.
천천히 하여야 할 일, 시급히 하여야 할 일과 여유를 가지고 하여도 될 일 그리고 조급함으로 빨리 해야만 하는
일과 그렇게 했던 일 등입니다. 그래서 생각나는 어릴 적 일이 있습니다. 아마도 저만 그랬을까.. 방학 때가 되면 근 한 달이라는 여유시간이 있다고 생각되어 방학숙제 같은 것은 차일피일 미루다가 꿈결 같이 신나고 재미있던 방학기간이 거의 다 지나갈 무렵에서야 비로소 정신이 들어서는 미루어 놓았던 숙제들을 꺼내 놓고 하기 시작
하였는데 결국 다하지 못하고 개학 후에 선생님의 회초리 세례를 받게 되지요.
그리고 그날 그 시간에 나와 똑 같은 모습으로 방학기간을 지냈기에 불려 나와서 손을 들거나 엎드려뻗쳐의 모습으로 기꺼이 나와 함께 하여준 ‘의리의 동료들’과 손바닥에 불이 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앞줄부터 당하며 보여주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친구들의 얼굴들과 비명소리 신음소리들이 점점 더 나의 순서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는 이빨을 사려 무는 각오의 모양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지만 그 때도 마음속으로는 “이 또한 지나
가리라.” 하였으니 혹시 제가 그 어릴 적부터 사물과 상황에 대한 철학개념의 성숙한 기초를 놓아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허허.
그때 선생님들의 나이가 마흔 살 즈음이 되셨던 것 같으니 반세기 이상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분들이 다 돌아가셨을 것이지만 저는 이렇게 그때 선생님들의 나이를 훨씬 넘어선 모습으로 옛날을 추억하고
회상하고 있으니.. 과연 그 또한 ‘모든 것이 지나간 모양’ 되었음입니다. 그래.. 모든 일들이 그렇게 지나가고 나
또한 ‘지나가는 사람’으로 현재를 걷고 있으며 크게 오래지 않아서 나의 후손들과 후세들 에게 ‘지나간 사람’이
되어 버리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자면 매우 우울하고 쓸쓸하여지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가 단 한 명의 열외 없이 나란히 줄을
서서 가는 길이니 만큼 순응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지만..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감사한가! 지금도 계속 걷고 있다는 것과 중간에 멈추어진 사람이 되어 그렇듯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둘러메어져서 그 대열에서 이탈하여
나오지 않고 있는 것 말이지요.
오래전 인간지옥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혀있던 유태인들은 그야말로 여자 남자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뼈에다가 가죽을 초벌한 모양으로’ 살아있는 중에도 어떤 사람이 어디로 불려나갔다가 나중에 다시 돌아오기라도 하면
그렇게 감사하고 축하하며 기뻐하였다고 하지요.. 후하고 불어버리면 모두가 한 순간에 꺼져버릴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는 아주 하찮은 목숨들이었지만 ‘지금 살아있음’의 귀중함과 기쁨을 아주 놓아버리는 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쯧쯧..
생명은 이같이 소중하고 또한 ‘내가 만들어 내가 가진 것’도 아니며 그런즉 그것을 내게 주신 이의 뜻과 의지에
따라야 하기에 내가 내 것처럼 ‘포기’를 하여서도 안 되는 것이지요. 물론 사람들은 그러한 신과의 관계 이유가
아니더라도 생명을 소중히 알고 그래서 날마다 ‘살기 위한 발버둥’을 고비마다에서 연달아 치고는 있지요.
그래요,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야’하고 ‘살아나야만’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이것이 가장 큰 가치이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주어지고 보전하여 나가야만 하는 현실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은 인생에 유익과 보탬을 주는 좋은 말이며 나름 심오한 사상을 함축하고 있기도 한
인생양식으로서의 명제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 말 안에서 지나가는 것들이 나와는 상관도 없이 어디로 멀리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것들이 아니라 그렇게 ‘지나간’ 것이 나의 ‘현재’를 이끌고 있는 동력이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간단한 예로 내가 지금 ‘먹는 일’은 곧 지나가지만 그렇듯 이전에 ‘먹은’과거의 결과는 여전히 남아서
나의 기운이 되어 나의 지금을 움직이게 하고 있다는 것과도 같지요.
그래서 ‘지나감’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흔적도 없이’멀리 가버린 것이 아니라 지금 나의 몸과 마음에 마치 옷처럼 덧입혀져 있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은 ‘지나간 것들을 현재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주며 또 염려케 하는 작금의 코로나 바이러스도 결국은 ‘지나가는’것이 될 확률이 높겠지만 우리는 그 지나가는 모양과 흔적들 속에서 ‘우리들의 옷’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서 갖추어 입을 줄 알아야 하지요. 지금도 수고하고 땀을 흘리고 있는 코로나 퇴치 및 백신을 연구하고 있는 연구진들에게 그래서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거기 그 세월 속에 발 딛고 서있는 나 또한 지나가게는 되겠지만 그저 무작위로 휩쓸려
내려가는 모양으로 아무의 손도 잡아보지 못하고 또 누구의 손도 잡아주지 못하는 이들이 되지는 맙시다.
하는 취지에서 여기까지 글을 썼습니다.
- 산골어부 2020830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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