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을 지탱하는 힘.
박천복(yor***) 2020-06-01 09:53:00
사람은 그게 누구든 반드시 나이 들어 늙게 된다.
지금의 젊은이도 결국은 노인이 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며 여기에 예외는 없다.
그래서 노년을 생각하는 일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지금은 평균수명이 길어졌기 때문에 더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노인이 되면 몸과 마음이 약해진다.
약해진다는 것은 의지 할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노인들 중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분들이 있고, 여자노인들 중에는
보행용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분들도 있다.
말하자면 지팡이와 유모자체 의지해서 걷는 것이며 이때 지팡이와
유모차는 그들을 지탱해주는 기능을 한다.
지탱이라는 말은 어떤 물체가 쓰러지지 않도록 받쳐주거나
안정을 유지해 준다는 뜻이 있다.
노년을 건전하고 건강하게 살기위해서는 자기를
지탱해 주는 수단과 힘이 필요하다.
그 유무에 따라 삶의 질은 아주 달라진다.
같은 연배의 노인이면서도 그 사는 모습이 천차만별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통로에 사는 동년배가 여러 번 강권해서
아파트단지 노인정에 가본 일이 있다.
그때 비로소 뜻밖에 우리 단지 안에 노인이 많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한쪽에서는 바둑을 두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장기를 두고 있었는데 훈수꾼들이 더 요란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십원짜리 화투를 치고 있었고, 응접세트주변에
모여 있는 노인들은 정치권 욕하기, 할망구의 잔소리규탄, 아들 며느리에
대한 핀잔, 그리고 자기가 앓고 있는 병과 여러 가지
약에 대한 정보를 요란한 목소리로 교환하고 있었다.
점심때가 되자 부녀회에서 끓여주는 국수를 한 그릇씩 먹었고 커피도 마셨다.
오후일과도 오전과 똑같았다.
그 이후 나는 다시는 노인정에 가지 않았다.
그 노인들은 모두가 나와 같은 동년배들이고 좋은 분들 이었다.
그런데 그곳엔 '생산성' 이 전혀 없었다.
소비와 소진만 있고 창의성도 없었으며 글자 그대로
소일(消日ㅡ 하는 일 없이 세월을 보내는 것)만 있었다.
그건 내 생활방식과는 맞지 않았다.
의사인 아들이 집에오면 늘 하는 소리가 있다.
'두 분은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기 때문에 건강한편이고
그만큼 동년배의 노인들에 비해 액티브하게 사시는 편이다.'
그러면서 지금의 패턴을 잘 지켜나가라고 당부한다.
active 하다는 것은 활발하고 적극적이라는 뜻이다.
아들의 말대로 우리부부는 누가 봐도 동년배들에 비해 상당히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사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봤다.
내가 액티브하게 사는 데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조건이 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일까.
우선 정신적 인면을 생각해봤다.
정신이 맑고 튼튼해야 삶이 건전해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지적호기심(知的好奇心) 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80대중반인 지금까지 이 호기심에 변화가 없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호기심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호기심이란 무엇인가
색다르거나, 신기하거나, 이상한 일이나 그 대상에 끌려 그 정체나
내용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내가 독서광이 되고 평생학문으로 문화사를 공부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적호기심 때문이다.
지적호기심은 공부와 직결된다.
내게는 그게 문화사이며 문화사와 연관된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는
열심이 그래서 생긴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부를 통해 몰랐던 것을 알고
배울 때의 기쁨은 놀라운 것이다.
우리 집 가까이에는 내가 자주 가는 가정의학과가 있다.
그곳 차트에는 오랫동안의 내 병력이 모두 기록되어 있으며
원장은 저절로 내 주치의가 된 셈이다.
그분이 자주하는 말이 있다.
'어르신께서는 동년배에 비해 아주 건강하신 편입니다.'
사실 나는 나이 들어 생기는 전립선비대증 외에 큰 지병은 없다.
건강은 노년을 지탱해주는 결정적이고 중요한 힘이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다.
나는 내 건강의 기초가 반평생하고 있는 걷기운동에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은퇴전 목동아파트에 살았을 때 우리 집은 14층에 있었다.
출근하거나 외출할 때는 승강기를 타고 내려가지만 밖에서 돌아올 땐
반드시 14층까지 계단을 걸어서 올라갔다.
14년을 그렇게 했다.
직장에 다닐 때도 3정류장 앞에서 내려 회사까지 걸어갔으며 올 때도 그랬다.
지금은 일주일에 5일 기준 60분에 6키로를 걷는다.
성이남자의 평균 걷는 속도가 시속3.2키로인 것을 감안하면
대단히 빠른 속도가.
노인이 되어 할 수 있는 운동 중 걷기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의사들이 하는 말이 있다.
'노인이 자기 두발로 걷기만 해도 건강한 것이다.'
정서(情緖)라는 말이 있다.
주변의 사물이나 어떤 일을 만날 때 기쁨, 슬픔, 노여움, 괴로움, 사랑,
미움 따위를 느끼는 마음의 작용이나 그 기능이다.
남여불문, 노인이 되면 표정이 없어진다.
정서적으로 메말랐기 때문이다.
노년은 자칫 무미건조하게 살수도 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지탱해 주는 힘이 필요하다.
내게는 그게 음악이다.
서양고전음악을 접했을 때, 초기에는 주로 교향곡과
여러 악기들의 협주곡을 많이 들었다.
물론 아름다운 소품들도 많이 들었다.
그 과정이 지나자 실내악들을 열심히 듣게 되었고
마지막엔 무반주 독주악기의 연주를 듣게 된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고 악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노년에도 악기를 할 수 있다.
내가 첼로를 시작한 게 나이 70일때다.
현악기는 관악기에 비해 훨씬 어려웠지만 좋아하기 때문에 극복할 수 있었다.
음악은 노년의 나를 정서적으로 지탱해주는 큰 힘이다.
어떤 사람은 인간이 육체와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 정신이 곧 이성(性)이며 이 이성이 철학을 탄생시켰다.
또 다른 사람은 인간이 육체와 정신뿐 아니라
영적(的)인 기능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영은 영혼(魂)의 준말이며 영혼은 육체를 지배하고 정신현상의 근원이
되며 육체가 없어져도 존재할수 있다고 믿어지는 대상이다.
그래서 영은 종교의 영역이 되었다.
지난 3월,
빌 게이츠는 '코로나19는 정녕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라는 글에서
그 첫머리에 '저는 세상의 모든 일에는 선이든 악이든 어떤 영적인 뜻이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라고 쓰고있다.
나 역시 영적인 힘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크리스챤이다.
그러나 조직종교, 제도종교, 사람이 만든 모든 교리에서 자유로운, 오직
예수에게만 접근하는 크리스챤이다.
나는 그분의 말씀을 더 정확하게 듣기위해 헬라어를 배웠다.
정상적인 수준의 신앙생활은 인간을 성찰케 하고 근본을 생각하게하며
선 과악, 그리고 정의를 알게 하는 지혜를 준다.
신앙은 나를 인격적으로 설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또 하나의 큰 힘이다.
아무도 노년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노년을 지탱해주는 힘이 충분하다면 전혀 새로운 삶이 될 수도 있다.
노년은 모든 인간적인 집착과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새 시간이다.
정말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 볼 수 있다.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자기라는 한 인간이 처음으로 자기를 위해,
자기의 뜻대로 살 수 있는 게 노년이다.
그만큼 그 노년을 지탱해주는 힘도 중요해진다.
자네 늙어봤나, 난 젊어봤네.ㅡyorowon.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스크 세상.. (0) | 2020.07.08 |
---|---|
그동안 잊고 지내던 고마운 것들 (0) | 2020.06.09 |
황혼의 마음 (0) | 2020.05.27 |
노년일기. (0) | 2020.05.20 |
미래의 드림에 도전해본다 (0) | 2020.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