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부 부 / 최석우

덕 산 2012. 6. 18. 16:29

 

 

 

 

세상에 이혼을 생각해보지 않은 부부가 어디 있으랴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못 살 것 같던 날들 흘러가고


고민하던 사랑의 고백과 열정 모두 식어가고

일상의 반복되는 습관에 의해 사랑을 말하면서

근사해 보이는 다른 부부들 보면서 때로는 후회하고

때로는 옛 사랑을 생각하면서


관습에 충실한 여자가 현모양처고

돈 많이 벌어오는 남자가 능력 있는 남자라고

누가 정해 놓았는지

서로 그 틀에 맞춰지지 않는 상대방을 못 마땅해 하고

그런 자신을 괴로워하면서


그러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귀찮고 번거롭고

어느새 마음도 몸도 늙어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아


헤어지자 작정하고

아이들에게 누구하고 살 거냐고 물어보면

열 번 모두 엄마 아빠랑 같이 살겠다는

아이들 때문에 눈물짓고


비싼 옷 입고 주렁주렁 보석 달고 나타나는 친구

비싼 차와 풍광 좋은 별장 갖고 명함 내미는 친구


까마득한 날 흘러가도

융자 받은 돈 갚기 바빠 내 집 마련 멀 것 같고

한숨 푹푹 쉬며 애고 내 팔자야 노래를 불러도

열 감기라도 호되게 앓다보면

빗길에 달려가 약 사오는 사람은

그래도 지겨운 아내, 지겨운 남편인 걸


가난해도 좋으니

저 사람 옆에 살게 해달라고

빌었던 날들이 있었기에

하루를 살고 헤어져도

저 사람의 배필 되게 해달라고

빌었던 날들이 있었기에


시든 꽃 한 송이

굳은 케익 한 조각에 대한

추억이 있었기에

첫 아이 낳던 날

함께 흘리던 눈물이 있었기에


부모상(喪) 같이 치르고

무덤 속에서도 같이 눕자고

말하던 날들이 있었기에

헤어짐을 꿈꾸지 않아도

결국 죽음에 의해 헤어질 수 밖에 없는

날이 있을 것이기에


어느 햇살 좋은 날

드문드문 돋기 시작한 하얀

머리카락을 바라보다

다가가 살며시 말하고 싶을 것 같아


그래도 나밖에 없노라고

그래도 너밖에 없노라고...


- 최석우 시인의 시집 "가슴에 묻지도 못하고"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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