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서환(ksh***) 2016.07.06 21:16:03
베란다 문턱에 올라앉아 무릎에 턱괴고 멍하니 넋 놓고 한참을 앉아있었습니다.
문득 고개를 드니 집 뒤에 옥녀봉이 내리는 는개 때문에 곱낀 눈으로 보이듯 뿌옇게 퍼져 보입니다.
이곳 서산에 짐을 풀어 30년이 다 되가는데 나는 바로 집 뒤에 있는 저 옥녀봉을 한 번도 올라가 보지 못했습니다.
기지개를 켜고 일어서려는데 제법 자란 발톱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 발톱을 깎아야하겠구나. 그러고 보니 나는 발톱을 일 년에 서너 번 밖에 깍지 않는 듯 합니다.
손톱이야 눈에 잘 띠니 쉽게 고개만 숙이면 깎고 다듬어 줄 수 있지만 발톱은 양말에다 신발로
이중포장 되어있으니 맘먹고 들여다보기 전에야 얼마나 자랐는지 알 수도 없거니와 손톱은
걱정할 때마다 자라고 발톱은 웃을 때만 자란다하신 내 조상님들의 웃을 일 없던 고달픈 삶의
유전자가 아직 내게 남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찬찬히 발톱들을 내려다보니 이놈들은 전부 손톱보다 생김새가 좀 거시기 합니다.
손톱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날렵하게 생겼지만 발톱은 그저 두루뭉술하니 시골 선머슴아
머리통모양 둥글 넓적합니다. 더욱이 새끼발톱은 발톱이랑 발가락의 경계가 모호하여
어디 까지가 발가락이고 어디서부터가 발톱인지 잘 구분도 가지 않습니다.
생김새도 한쪽으로 치우쳐 자라 구박받은 모양새입니다.
하긴 육십 몇 년을 내 몸뚱이 무게를 지탱하며 살아왔으니 오죽이나 힘들고 괴로웠겠나 싶습니다.
손이야 하루에도 몇 번을 비누로 씻어주고 뽀송한 수건으로 닦아주고 말려주고,
그것도 모자라 여자들은 몇 만원을 주고 손톱까지 치장을 해주지만 발이야 저녁에 한번
그것도 세수하고 남은 물 한바가지 덜렁 붓고 손도 아닌 오른 발바닥으로 왼 발등 쓱쓱
몇 번 문지르고 발바꿔 또 몇 번 문지르고 수건도 아닌 걸레로 대충
닦아내고 땡치니 차별도 이정도면 비정규직 이상입니다.
전쟁 후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그때는 운동화가 참 귀했습니다. 내 또래의 아이들은
사내놈들이던 계집 아이던 대부분 고무신을 신고 다녔습니다. 여름에 고무신을 신고 다니면
발에 땀이 찹니다. 발바닥은 물론이고 발등 신발 테까지 땀이 차고 여기에 흙먼지가 끼어서
고무신 테두리와 맞닿은 발등은 까맣게 흙테가 쳐집니다. 걸으면 발바닥 땀 때문에
찔거덕거리는 소리가 나기도 합니다. 애들이랑 공차기라도 할작시면
공보다 고무신이 먼저 벗겨져 날아갑니다.
초등학교 일학년 때인가 골목길에서 친구들과 공차기를 하다가 여지없이 고무신이 훌러덩 벗겨지고
공대신 돌부리를 걷어찼습니다. 어째서 아픔은 꼭 오밤중에 시작되는지 욱신거리는 아픔에
자다 깨서 엉엉 울었습니다. 옆에서 주무시던 할머니가 깜짝 놀라 일어나서 발가락을 살피시더니
찬물을 대야에 떠와 담그게 하셨습니다. 엄지발가락이 벌겋게 부어올랐습니다.
지금 같으면 얼른 병원에 데려가서 소염진통제 주사 한방이면 해결될 걸 그때는 병원은
죽을 만큼 아파야만 가는 줄 알았던지 몇 날을 꿍꿍대며 앓았습니다.
어느 날 저녁 할머니가 실패에서 이불 꿰맬 때 쓰는 돗바늘을 꺼내시더니 바늘 끝을 당신머리에
쓱쓱 몇 번 문지르셨습니다. 그리고는 엄마에게 날 꼭 안고 있으라시고는 곪아서 누렇게 변한
엄지발가락을 그 바늘로 땃습니다. 나는 죽는다고 발버둥을 쳤지만 할머니는 인정사정없이
엄지발가락을 눌러 고름을 짜내셨습니다. 얼마나 아팠던지 지금도 잊히지 않는 통증이었습니다.
얼마큼 고름을 짜내고 할머니는 내 발가락을 당신 입으로 빨아 당기셨습니다.
아이고, 이번에는 발가락이 빠져나가는 아픔이었습니다. 얼마나 발버둥을 쳤던지 날 끌어안고 있는
엄마는 땀이 홍건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몇 번 입을 헹구시며 내 발가락에서 고름을 빨아내셨습니다.
그 난리를 치고 얼마가 지나니 발가락 통증이 거짓말처럼 가라앉기 시작했고 그날 밤은 쌔근거리며 잘 잤습니다.
이제 모두 돌아가시고 내가 대신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어쩌다 몸이 불편해 누워있으면
아플때면 꼭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주시던 내 할머니의 비릿한 냄새가 눈물겹게 그립습니다.
나도 내손자 고름을 입으로 빨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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