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할아버지도 때로는 가출하고 싶다

덕 산 2016. 7. 5. 15:00

 

 

 

 

 

 

 

 

 

공서환(ksh***) 2016.07.04 23:19:46

 

골바람에 텐트가 울렁거립니다.

걸어놓은 랜턴이 덩달아 흔들리고 텐트 벽에 드리운 내 그림자가 물귀신처럼 흐느적거립니다.

아직 떨어지기엔 젊디젊은 나뭇잎이 비바람을 견디지 못해 가지와 생이별 하고 텐트위에 떨어져 누워버렸습니다.

지금 밖에서 바람은 윙윙거리고 비는 내리고 계곡물은 바윗돌을 굴리며 내달리고 이 소리들이

모두 뒤엉켜 하동장터 만큼 시끄럽습니다.

 

장맛비가 지척거리는 오늘아침, 세수를 하고 물기를 닦으려고 수건으로 얼굴을 덮었습니다.

당연히 눈을 감고 수건질을 하는데 갑자기 비속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집사람은 대전 큰 아들네 집에 다녀오겠다고 새벽같이 나갔으니 잔소리 들을 일도 없겠다

창고에 넣어 두었던 야영장비 챙겨서 차에 싣고 냅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로 들어섰습니다.

 

아버님은 나를 잘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큰아들 데리고 다니며 심부름시키기가 만만하셨던지

낚시를 가시면 꼭 나를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지금이야 낚시가면 자기차 가지고 장비를 트렁크에 싣고 낚시터 코앞까지 들어가지만

50년 전에는 대나무 낚싯대를 둘둘 말이 갑바(이걸 지금은 뭐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음)싸고

대나무 엮은 고기통에 나무상자 지렁이통, 밤낚시용 케미라이트가 없었으니 카바이트에

물 부어 불 밝히던 간데라( candlelight의 일본발음)에 밥해 먹을 냄비까지 싸가지고 시외버스나

기차타고 가서 다시 걸어서 낚시터까지 가야하니 오가는 시간이 낚시하는 시간보다 더 걸릴 때도 허다했습니다.

그럴 때 나는 아버님의 만만한 짐꾼이며 심부름꾼이었고 말벗이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 아버님은 친구 분이 사신다는 경북 영양군 수비면으로

낚시를 가신다면서 나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을 방학 때 낚시 간다고

일주일씩 데리고 가는 배짱이 두둑한 아버지는 없겠지만 그때는 방학은 무조건 놀아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청량리역에서 밤열차를 타고 새벽녘에 어느 작은 역에 내렸는데 무슨놈의 역이 전기불도

안 들어와 대합실엔 호롱불이 켜져있고 역무원도 호롱불을 들고 다녔습니다.

그 역이 지금은 관광지로 변신한 바로 분천역이었습니다.

 

분천역에서 다시 산길을 걷고 또 걸어 일월산이 자락에 겨우 집 몇 채있는 산골마을에 도착했는데

무슨 그림에 나오는 동네 같았습니다.

맑디맑은 개울물이며 울창한 소나무 숲이며 싸리나무 담벼락에 초가집은 그 당시 이발소에

하나씩 걸려있던 그림 속의 동네 모습이었습니다.

 

 

 

 

 

 

내비게이션을 우선 춘양으로 목적지 설정을 하고 비오는 고속도로를 타고 오다가 제천에서 국도로 나왔습니다.

놀러가는 길은 고속도로보다는 국도가 좋고 4차선보다는 2차선 지방도로가 더 좋습니다.

어차피 혼자가는 길이니 쉬엄쉬엄 게으름 피운다고 닦달할 이도 없고 비오는 시골길에 뒤차

눈치 볼 일도 없으니 마음 편히 시골길 눈요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오후 두시가 넘어서야 춘양에 도착하였습니다.

터미널근처 중국집에서 자장면으로 허기를 채우고 슈퍼에 들러 저녁거리를 마련했습니다.

캠핑하면 감자, 호박, 두부 썰어 넣고 된장 고추장 풀어서 끓인 찌개에

고추 몇 개 된장에 찍어 불 조절 잘못해서 누렇게 탄 밥을 먹어야 제격입니다.

구마계곡, 20 년 전인가 말년과장시절에 과원중 한명이 고향이 춘양인데 좋은 계곡이 있다고 해서

과원 전체가 12일 떼핑(떼거지로 가는 캠핑)을 간적이 있는데 태백산 오지 중에 오지라

계곡물이 정말 섬섬옥수였고 한여름이었는데도 밤에는 추워서 텐트 한가운데 모닥불을 피워놓고 잤었습니다.

 

그 구마계곡을 오늘 비오는 날 다시 찾아왔습니다. 지금은 길도 다 포장되었고 오는 길에 보니

물놀이장도 만들어져 있고 모텔이며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었지만 계곡 끄트머리 상류 쪽은

펜션이 몇 채 들어선 것 외에는 그때 그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아직은 휴가철도 아니고 평일에 장맛비까지 내리니 계곡에서 야영하는 이는 나 밖에 없는 듯 합니다.

예전과 달리 야영지가 잘 다듬어져있고 화장실 까지 마련된걸 보면 이젠 이곳도 사람 손을 많이 탄듯합니다.

그래도 지금은 나 혼자 이 긴 계곡을 차지하고 빗소리 바람소리 박자 안 맞는

계곡물 소리까지 독차지하고 있으니 행복합니다.

 

이글을 쓰는 조금 전 마누라가 전화를 했습니다.

"여보! 당신 오늘 가게 문 닫고 어디갔수?"

" , 당신 박영식이라고 내 고등학교 동창 알지?"

" 누구? 박영식이가 누구유?"

", 왜 작년에 서산으로 낚시 왔었지, 머리 허옇게 쉬고 안경 쓴 애 , 목동사는애 말이야"

 

"그렇다 치고 그 친구가 왜?"

", 그 애 마누가가 갑자기 죽었어. 심장마비래.

그래서 지금 거기 왔어, 내일 발인보고 갈 거야"

" 아이고, 부인이 몇 살인데?"

"아마 당신이랑 비슷할걸."

" 쯔쯔 어쩌냐? 아직 죽을 나이는 아닌데.."

"그러게 말야..."

 

"알았어요, 비오는데 춥지않게하고 있어요"

"걱정마"

박영식이란 이름을 갖은 내 친구는 없습니다.

밤새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의 예찬 / 안병욱  (0) 2016.07.19
발톱 깍던 날  (0) 2016.07.07
홋카이도 여행  (0) 2016.06.30
아프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으랴?  (0) 2016.06.27
비를 기다리며  (0) 2016.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