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우리 아버지
- 이 대 흠 -
엊그제까지는 몸도 못 뒤집더니
오늘은 뒤뚱뒤뚱 어쩜 이리 잘 걸으실까
통통통 바닥을 퉁기며 다섯 발짝이나 걸었네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걸음마 잘 하시네
오른발 왼발 오늘은 걸음마를 떼었으니
내일은 방 한 바퀴 돌아봐야지
아이고 이뻐라
헤벌쭉 헤벌쭉 웃는 우리 아버지
말 배우려는지 못 알아들을 소리로
무어라 혼자 종알거리고
또 꼼지락거리고
화냈다가 흐느끼다가 혼자서 마구 웃는
어여쁜 우리 아버지
그래 그래야지
이제는 아들 얼굴도 알아보고
딸한테도 알은체를 하시네
쥐엄쥐엄 하면 쥐엄쥐엄 잘 따라 하시고
밥 달게 잡수더니 똥도 미끈하게 잘 싸셨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우리 아버지
오줌 똥 못 가려 기저귀 찼어도
과자 주스 먹을 땐
절반쯤은 흘려서 옷이 다 버려도
오물오물 밥 씹는 소리만 들려도 오져라
환하게 웃으면 온 집안이 밝아지는 우리 복덩어리
말도 잘 못하고
혼자서는 잘 걷지도 못하는 어린 우리 아버지
내 살을 갈아서라도 키워야 할
여리고 작은 내 새끼,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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