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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우리 아버지 / 이대흠

덕 산 2016. 6. 16. 14:29

 

 

 

 

 

 

 

 

 

어린 우리 아버지

                - 이 대 흠 -

 

 

엊그제까지는 몸도 못 뒤집더니

오늘은 뒤뚱뒤뚱 어쩜 이리 잘 걸으실까

통통통 바닥을 퉁기며 다섯 발짝이나 걸었네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걸음마 잘 하시네

오른발 왼발 오늘은 걸음마를 떼었으니

내일은 방 한 바퀴 돌아봐야지

 

 

아이고 이뻐라

헤벌쭉 헤벌쭉 웃는 우리 아버지

말 배우려는지 못 알아들을 소리로

무어라 혼자 종알거리고

또 꼼지락거리고

화냈다가 흐느끼다가 혼자서 마구 웃는

어여쁜 우리 아버지

 

 

 

 

 

 

 

 

그래 그래야지

이제는 아들 얼굴도 알아보고

딸한테도 알은체를 하시네

쥐엄쥐엄 하면 쥐엄쥐엄 잘 따라 하시고

밥 달게 잡수더니 똥도 미끈하게 잘 싸셨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우리 아버지

 

 

오줌 똥 못 가려 기저귀 찼어도

과자 주스 먹을 땐

절반쯤은 흘려서 옷이 다 버려도

오물오물 밥 씹는 소리만 들려도 오져라

환하게 웃으면 온 집안이 밝아지는 우리 복덩어리

 

 

말도 잘 못하고

혼자서는 잘 걷지도 못하는 어린 우리 아버지

내 살을 갈아서라도 키워야 할

여리고 작은 내 새끼,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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