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말고, 네 얼굴 / 임찬일
옛 친구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함께 다녔던 국민학교를 들추어내고
그때 가까이서 어울렸던 친구의 이름도 떠올리고
그제서야 자기가 아무개라며 나에게 묻는다
기억이 나느냐고
이것저것 지난 세월에 묻은 흔적을 증거삼아
비로소 서로를 확인하는 이 낯선 절차
그래, 물 같은 세월 흘렀으나 거기에
비추듯 남아 있는 우리들의 코 묻은 얼굴과
남루했던 시절
흑백사진처럼,
아니 아니 눌눌하게 빛 바랜 창호지처럼
다소 낡은 모습으로 떠오르는 그 무렵의 일을
이제는 옛날이라고 싸잡아
네 이름처럼 불러야 되는구나
친구야, 오랜만이다 애들이 몇이고?
그래, 나랑 똑같구나 딸 하나 아들 하나라니 !
이 한통의 전화가 걸려 오기까지
삼십 년이나 걸려야만 했단 말이냐
서로 연락도 하고 언제 한번 만나자며
전화를 끊었지만 우리들의 기약은 다시 아득해지고
무슨 꿈결처럼 잊혀져서 나는 또
가물가물한 너의 얼굴을 영영 놓쳐 버릴지도 모른다
남은 것이라곤 적어 놓은 너의 전화번호
연락처를 알았으니 가끔 전화라도 하마
만나자, 만나자, 하다보면 그 말이 씨가 되어
이 세상 어느 한구석을 차지하고서
끊어진 것들 가슴속 이야기로 이을 날이 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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