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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베다 / 이 수

덕 산 2012. 7. 2. 19:26

 

 

 

가을을 베다

               - 이 수 -

 


뉘엿뉘엿한 해 거름에 억새밭으로 갔다.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를 뒤로하고 허리를 접는다. 

억새의 가느다란 그리움 한 움큼 잡아 쥐고

가슴에 숨겨놓았던 낫을 꺼내어 모질게 베어본다.


가을을 벤다.

가을이 푸드득 푸드득 낙엽으로 떨어진다.     

추수秋收, 

가을을 베는 것,

사랑을 거두는 것

문득 허리를 펴 하늘을 바라보니

저녁노을에 젖은 서쪽 하늘이 마냥 슬프기만 하다.


가을은 자리에 드러누운 채 벤 상처를 쓰다듬고 있다.

가을은 벌써 아프다.

사랑도 아프다.

울고 있는 가을을 한 아름 가슴에 담아보았다.


세상에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가을 사람들은 모다 억새가 된다.

억새지 못한 가을은 혼자 울고 있다.

그리워하다가 슬퍼하다가 벤 아픔을 안고 드러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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